김창덕 남서울대 교수
[김창덕 남서울대 빅데이터콘텐츠융합학과 교수]미래항공교통은 비행 장면이 아니라 개발 현장의 증거로 완성된다.
도심항공교통(UAM)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먼저 미래적인 장면을 떠올린다. 도심 빌딩 옥상에서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가 이륙하고, 승객이 지상의 교통 혼잡을 피해 하늘길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흔히 말하는 ‘에어택시’의 이미지다.
그러나 항공산업의 현실은 이러한 이미지보다 훨씬 냉정하다. 기체가 한 번 하늘에 뜨는 것과, 그 기체가 인증을 받고 양산되어 매일 안전하게 운항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항공은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산업이 아니라, 안전을 반복해서 증명하는 산업이다.
최근 독일의 첨단항공교통(AAM) 기업 릴리움(Lilium)의 붕괴는 이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릴리움은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eVTOL 산업에서는 한때 유럽을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았다. 독일 뮌헨을 기반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전기로 움직이는 수직이착륙 항공기 개발을 목표로 했고, 독특한 기체 형상과 추진 방식으로 투자자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릴리움이 개발한 릴리움 제트(Lilium Jet)는 일반적인 멀티콥터형 eVTOL과는 다른 개념의 기체였다. 기체 앞쪽의 보조날개인 카나드(canard)와 주익에 다수의 덕트형 전기팬을 배치하고, 수직이착륙 이후에는 날개의 양력을 활용해 전진비행을 하는 방식을 지향했다.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이착륙하되, 일정 고도에 오른 뒤에는 항공기처럼 앞으로 날아가는 구조였다.
이 구상은 기술적으로 분명 매력적이었다. 덕트형 팬은 소음 저감과 안전성 측면에서 장점을 기대할 수 있고, 날개를 활용한 순항비행은 단순 멀티콥터형 기체보다 중장거리 이동에 유리할 수 있다. 그래서 릴리움은 도심 내부의 짧은 이동뿐 아니라 도시와 도시, 공항과 지역 거점, 관광지와 광역권을 연결하는 광역형 첨단항공교통(AAM) 시장까지 염두에 둔 기업으로 평가 받았다.
따라서 릴리움의 실패를 단순히 “기술력이 부족한 회사의 실패”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릴리움은 eVTOL 산업에서 새로운 설계 방향을 제시한 기업이었다. 덕트형 전기추진, 분산추진, 전환비행, 저소음, 첨단항공교통이라는 여러 키워드를 하나의 기체 개념 안에 담아냈다. 실제로 릴리움의 기술 자산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아처 항공(Archer Aviation)은 릴리움의 약 300건 규모 특허 포트폴리오를 1,800만 유로, 한화 약 300억 원대에 인수했으며, 이 특허에는 고전압 시스템, 배터리 관리, 비행제어, 전기추진, 덕트팬 관련 기술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항공우주 스타트업 릴리움의 전기 수직 이륙 eVTOL 제트기. 사진=AFP연합뉴스
좋은 기체 개념은 산업의 출발점일 뿐이다.
문제는 기술의 우수성과 산업화의 성공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항공산업에서 좋은 설계는 출발점일 뿐이다. 좋은 설계가 실제 산업이 되려면 인증, 양산, 정비, 운항, 보험, 인프라, 자본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릴리움은 이 긴 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2024년 자금난 속에 독일 내 주요 자회사들이 지급불능 절차에 들어갔고, 이후 회생을 위한 자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로이터는 릴리움이 eVTOL 기술 개발에 15억 달러, 한화 약 2조 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결국 자금난과 인증·상용화 장벽을 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릴리움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 회사는 허황된 상상만을 내세운 기업이 아니었다. 기체 개념도 분명했고, 기술적 차별성도 있었으며, 시장의 관심도 컸다. 사우디아라비아 항공사 사우디아 그룹은 2024년 릴리움과 최대 100대 규모의 eVTOL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계약은 순례객 이동, 관광, 대형 행사 수송 등 첨단항공교통 수요와 연결된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럼에도 릴리움은 상업운항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UAM 산업의 본질을 보아야 한다.
릴리움 전기 수직이착륙기. 사진=릴리움 홈페이지
UAM은 기체 한 대가 아니라 전체 운항 시스템의 문제다.
UAM은 전기추진 시스템, 배터리 열관리, 비행제어 소프트웨어, 수직이착륙 과정의 소음과 하강풍, 지상 안전, 비상착륙 시나리오가 함께 검증되어야 하는 복합 시스템 산업이다.
특히 릴리움처럼 기술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선택한 기체는 장점과 부담을 동시에 가진다. 덕트형 팬과 전환비행 구조는 순항 효율, 소음 저감, 지역 이동 가능성이라는 매력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더 많은 시험과 해석, 더 복잡한 인증 논리를 요구한다. 추진장치의 수가 많아질수록 제어와 정비의 복잡성도 커진다. 전환비행은 수직비행과 고정익 순항비행 사이를 안정적으로 연결해야 하므로, 비행제어와 안전성 입증이 매우 중요해진다.
항공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의 성능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서로 충돌하는 요구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다. 항속거리를 늘리려면 배터리 용량이 필요하고, 배터리가 늘어나면 무게가 증가한다. 무게가 늘어나면 이착륙 추력과 구조 강도가 다시 문제가 된다. 소음을 줄이려 하면 추진계 설계가 달라지고, 추진계가 달라지면 열관리와 비행제어 조건도 달라진다. 성능은 하나씩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항속거리, 중량, 소음, 안전성, 정비성, 양산성, 비용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항공 인증은 형식적인 서류 절차가 아니다. 현장의 증거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부품 시험, 지상 시험, 환경 시험, 피로 시험, 비상상황 시험, 비행시험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안전할 것 같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고장이 발생했을 때 어떤 설계와 절차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지 데이터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항공산업이 다른 모빌리티 산업보다 느리고, 비싸고, 까다로운 이유다.
양산은 또 다른 벽이다. 시제품 한 대를 만드는 능력과 같은 품질의 항공기를 반복 생산하는 능력은 다르다. 시제품은 우수한 엔지니어의 손끝에서 만들어질 수 있지만, 양산은 치공구, 공급망, 품질관리, 검사체계, 생산인증, 정비 매뉴얼, 부품 추적 체계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항공기는 “잘 만든 한 대”가 아니라 “같은 기준으로 계속 만들 수 있는 체계”가 있을 때 산업이 된다.
정비와 운항도 핵심이다. UAM이 상업 서비스가 되려면 기체는 매일 운항되어야 한다. 비행 후에는 배터리 상태를 확인하고, 모터와 인버터의 열 이력을 점검하며, 비행제어 로그를 분석하고, 구조부와 추진계의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정비 시간이 길어지면 가동률이 떨어지고, 가동률이 떨어지면 수익성도 악화된다. 결국 UAM의 경제성은 기체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비 주기, 부품 수명, 충전 시간, 운항 회전율, 인력 운영이 함께 결정한다.
하늘을 주행 중인 릴리움 기체. 사진=릴리움 SNS
상업운항은 비전이 아니라 인증·양산·정비의 실행력으로 완성된다.
이 때문에 eVTOL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아이디어의 크기가 아니라, 인증과 양산의 긴 시간을 견디는 실행력에 있다. 투자 유치 발표, 선주문 계약, 화려한 렌더링 이미지는 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상업운항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업운항은 인증기관을 설득할 수 있는 데이터, 반복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공정, 정비사가 따를 수 있는 매뉴얼, 운항자가 관리할 수 있는 절차, 보험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관리 구조 위에서만 가능하다.
릴리움의 실패가 UAM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산업 재편의 신호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자본력이 약한 기업은 정리되고, 기술과 특허는 더 강한 실행력을 가진 기업으로 이동한다. 아처가 릴리움의 특허를 인수한 것은 실패한 기술의 단순한 폐기가 아니라, 산업 자산이 생존 가능한 기업 중심으로 재배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시장은 더 이상 가장 미래적인 기체 형상만을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인증 일정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실제 비행시험 데이터가 얼마나 축적되었는지, 생산라인을 준비하고 있는지, 정비 체계가 설계되어 있는지, 배터리 안전과 열관리를 어떻게 입증하고 있는지, 버티포트와 운항관리 체계가 함께 준비되고 있는지를 볼 것이다.
한국의 UAM 정책과 산업도 이 지점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UAM은 단순한 기체 개발 사업이 아니다. 기체, 공역, 통신, 전력, 버티포트, 정비, 조종 인력, 보험, 지역 수요가 동시에 맞물려야 하는 산업이다. 특정 기체의 시험비행 성공만으로 상용화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운항 시나리오, 인증 전략, 정비 기준, 버티포트 운영 절차, 지역별 수요 모델, 비상대응 체계가 함께 준비되고 있는가이다.
릴리움은 실패한 기업이지만, 무의미한 기업은 아니었다. 이 회사는 eVTOL 산업이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동시에 좋은 기체와 큰 투자가 곧바로 상업운항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그 점에서 릴리움의 추락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의 대상이다.
릴리움이 남긴 질문은 단순하다. 좋은 기체는 왜 곧바로 산업이 되지 못하는가. 그 답은 항공산업의 본질에 있다. 항공은 꿈을 빠르게 그리는 산업이 아니라, 안전을 오래 증명하는 산업이다. UAM의 미래도 결국 그 증명의 시간을 견디는 기업과 국가의 몫이 될 것이다.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공학연구원 교수, 동대학원 산학협력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 남서울대학교 대학원 빅데이터콘텐츠융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UAM(도심항공교통) AAM(첨단항공교통) 과학기술과 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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