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인간은 기회만 되면 외주 주려 하고,
나태와 비겁으로 미성숙 상태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AI를 교육에 써야 한다고 왜 굳이 주장하는 걸까
태도가 곧 성적 향상을 뜻하지는 않겠지만
자립 태도를 갖추는 게 지식 획득의 첫걸음이다
AI 앞에서 움츠러들어 교육마저 AI에 맡기려는
반계몽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위대한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미성숙은 매우 편안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좋아한다’는 통찰을 내놓았다. 무려 1784년에.
계몽이 무엇인지 답변하는 유명한 글에서 칸트는 말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일생토록 의타(依他)적인 상태에 머물고, 다른 사람이 그들의 후견인 노릇을 한다. (…) 의타적 상태에 머무는 것은 매우 편안하다. 책이 나 대신 지적인 활동을 하고, 성직자가 내 양심을 지키고, 의사가 내 건강을 위해 식단을 짜준다면, 나는 굳이 수고할 필요가 없다.” 계몽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는 의미다.
인간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일을 외주 주려 한다. 인간의 나태와 비겁에 기대는 경향을 지적하는 칸트는, 계몽을 “인간이 의타적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계몽은 ‘지식을 많이 갖춘 상태’라기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고자 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요컨대 지식이 계몽을 낳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계몽이 지식을 낳는다. 계몽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인공지능(AI)이 박사 수만명 분의 지식을 갖고 있으니, 배워서 무엇 하랴, 인간의 지식은 하찮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칸트의 견해를 이어가면 이런 ‘앎에 대한 허무주의’야말로 반계몽의 극단이다. 지식의 많고 적음보다 중요한 것은 ‘감히 알려고 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AI의 방대한 지식 앞에서 좌절한 채 더 이상 알려 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인류가 애써 닦아온 계몽을 거꾸로 돌리는 행동이다. 역사의 후퇴가 눈앞에 있다.
더 나아가 의타적 태도로 임할 때, AI는 지식을 늘리는 일, 즉 학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관찰과 연구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공개된 스톡홀름대학교 다비드 스트룀베리와 동료들의 논문 ‘생성형 AI를 이용한 학습의 대가(penalty): 중국 중등 교육의 증거’는 근래에 드물게 대규모 사례를 조사한 대표적 연구다. 연구진은 “교육 분야에서 널리 보급될 기술인 생성형 AI가 학생의 학습에 실질적인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고 결론 내렸다. AI가 당장의 과제 수행에는 도움을 주지만, 성적을 끌어올리지는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와 상반되는 결과를 내놓은 논문도 있었다. 왕진과 동료는 ‘챗GPT가 학생의 학습 성취, 학습 지각, 고차원적 사고에 끼치는 영향’(2025년 5월)에서 AI를 활용한 학습의 긍정적 효과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은 메타 분석 자체의 불일치로 문제가 돼 지난 4월22일 게재가 거부됐다(rejected). 동료평가 전 프리프린트였지만, 그전까지 40만번 넘게 조회되고 400번 넘게 인용되며 파장을 남겼다.
스트룀베리 연구진은 30개월 동안 중국의 중고등학생 약 2만7000명을 대상으로 생성형 AI를 자기 주도적으로 사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숙제에 걸린 시간은 30% 단축됐고 숙제 점수는 18% 향상했다. 여기까지는 성공담이다. 그러나 계산서는 나중에 날아왔다. AI 없이 치러야 하는 월례고사 성적이 약 20% 하락했고, 고입과 대입 시험 점수는 각각 24%, 18% 빠졌다. 그 대가가 드러나는 데는 약 2년이 걸렸다.
계몽 거꾸로 돌리는 ‘역사의 후퇴’
학습 손실이 숙제를 외주 준 AI 사용자 80%에 집중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AI 사용 방식에 따라 손실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AI를 사용했건 안 했건, 숙제에 50분 이상을 할애한 학생은 시간에 비례해서 시험 점수가 높았던 것으로 관찰됐다. 공부 시간을 통제하면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통제가 유지되지 않았다.
AI 활용과 성적 하락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분석도 있다. 3년마다, 그해 15세 학생을 상대로 과학, 읽기, 수학 시험을 치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의 2025년도 시험 결과 분석 보고서(PISA 2025 Results)가 지난 9월8일 공개됐다. 2025년 평가에는 전 세계 91개국에서 약 76만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한국의 언론 보도는 전 세계적인 읽기 능력 저하 문제를 대대적으로 다뤘지만, 나는 두 가지 사항에 주목했다.
하나는 쓰기 과제 초안 작성에 AI를 사용하는 빈도와 읽기 점수의 관계가 유의미하게 반비례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과학 학업에서 AI를 사용하는 빈도와 과학 수행 능력 평균값도 마찬가지로 반비례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AI와 학업 성취 간의 인과관계가 밝혀진 바는 없고 단지 상관관계를 보인 것뿐이라고 평가했다.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한 인과관계 해명이 과제로 남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 AI를 교육에 어떻게 사용할지를 모색한 ‘교육, 학습 및 연구 훈련에서의 AI 활용에 관한 MIT 특별위원회 보고서’(2026년 8월)도 눈길을 끈다. 먼저, MIT 보고서는 교육의 과정이 “생산적인 고투(productive struggle)”이며 교육의 가장 중요한 산물은 학점이나 학위가 아닌 “학생 자신, 즉 개인적 성장과 지적 성숙, 그리고 상상력과 통찰력, 판단력의 발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칸트가 말하는 계몽의 과정과 통한다. 보고서는 학생들이 AI로부터 “배움의 착각(illusion of learning)”과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한다. 후자는 “어려움의 낌새만 보여도 곧바로 AI에 의지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MIT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AI를 허용할지 금지할지 묻기에 앞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AI가 그 목적에 도움이 되는지 아는 것이다. MIT가 바라보는 교육의 목적은 지식, 행위, 가치로 요약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AI에 의존한 결과 “비판적 사고력 저하, 기억력 약화, 자신감 약화, 숙련도 저하 등 여러 심각한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AI 의존이 교육의 목적 달성을 막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AI 의존이 교육 목적 달성 막아
이런 최신 연구 경향과는 별도로, 뉴욕시는 지난 9월2일 2026~2027학년도에 만 2세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공립학교에서 학생의 생성형 AI 사용을 1년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 AI가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를 보지 못했다”면서, 기술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때만”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AI의 교육적 이점이 아직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고, 특히 학생이 인지적 활동을 AI에 의존할 때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나는 이 조치가 고등학생까지 확대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성년자가 의타적이지 않도록 하고, 스스로 고투하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이 미성년자를 계몽된 성인으로 이끄는 길이다.
다시 칸트의 명제를 보자. AI를 교육에 잘 사용하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 많다. 특히 AI의 설계(답을 주는 대신 힌트만 제공하기), 사용 방법 지도(의존하는 대신 생각 자극 도구로 쓰기), AI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시간 통제(일정 시간 이상 공부하기) 같은 것들이 보완책으로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보완책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더욱이 미성년자에게는 AI 사용을 자율에 맡길 수 없다. 미성년자는 말 그대로 미성숙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율성부터 훈련해야 한다.
칸트는 인간은 기회만 되면 외주 주려 하고, 나태와 비겁으로 미성숙 상태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그는 특히 지식보다 태도를 앞세웠는데, 앞에서 본 연구들은 인간이 AI 앞에서 의타적 성향이 발현되고, 그럼으로써 지식 습득이 막힌다는 점을 시사한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AI를 왜 굳이 교육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개별 맞춤 지도나 접근성을 이유로 도입하자는 견해도 있지만, 최신 연구들은 AI를 쓰건 쓰지 않건, 공부에 임하는 태도와 쏟아붓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시사한다. 태도가 곧 성적 향상을 뜻하지는 않겠지만, 자립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 지식 획득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AI 앞에서 움츠러들고 좌절한 나머지, 교육 영역마저 AI에 의타적으로 맡기려는 반계몽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교육 영역에서 절실한 것은 AI가 아니라 계몽이다.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