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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용훈 칼럼] 성과급은 누구의 것인가

진짜 비극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나 IT 라인의 일시적 멈춤에만 있지 않다. 대기업 노조가 머리띠를 매고 파업을 통해 과도한 보상을 쟁취해 내는 모습은 산업 생태계 전반에 고스란히 학습된다. "대기업도 노조가...

[김용훈 칼럼] 성과급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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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훈 객원 논설위원

정부는 1963년 제도 도입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단 4번, 국민 경제가 통째로 마비될 위기에서만 제한적으로 뽑아 들었던 최후통첩 카드인 긴급조정권을 손에 쥐고 삼성전자 파업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 선언과 연쇄 쟁의 움직임은 과거 부도 위기의 조선소나 물류가 마비되었던 항공사 사태 때와는 그 결이 전혀 다르다. 배고픔을 해결해 달라거나 부당한 근로 조건을 개선하라는 생존 투쟁이 아니다. 동종업계(SK하이닉스)의 역대급 보상을 바라보며 생겨난 "옆집만큼 우리도 달라", "우리는 왜 안 되냐"는 비교 심리와 상대적 박탈감이 촉발한 보상 투쟁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성과급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본래 성과급(Incentive)은 기업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얻은 경영적 결실과 근로자의 노동 생산성이 결합해 이윤이 남았을 때 나누는 유연한 보상 체계이다. 즉, 경영 리스크에 대한 사후적 분담이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조합은 성과급을 당연히 쟁취해야 할 고정적 권리로 오인하고 있는 듯하다. 삼성 사측이 안타까움을 표하며 지적했듯, 적자 사업부에까지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의 일괄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자본주의 경영 원칙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성과가 없어도 파업을 무기로 보상을 짜내야 한다면, 그것은 성과급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 재투자를 가로막는 '확정 채무'이자 기득권의 강요에 불과하다. 진짜 비극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나 IT 라인의 일시적 멈춤에만 있지 않다. 대기업 노조가 머리띠를 매고 파업을 통해 과도한 보상을 쟁취해 내는 모습은 산업 생태계 전반에 고스란히 학습된다. "대기업도 노조가 뭉치니까 주더라"는 감정적 비교 심리가 2차, 3차 협력사와 재정적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기업으로 확산되는 순간, 대한민국 경제는 파멸의 도미노를 마주하게 된다. 지불 능력이 없는 하위 생태계 기업들에게 보상의 상향 평준화 요구는 곧 연쇄 도산과 고용 축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보상 요구가 역설적으로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협력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가장 먼저 위협하는 파괴적 낙수효과를 낳는 셈이다.

과거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당시 단 사흘 만에 정부가 개입했던 것처럼, 반도체 생산 라인의 마비가 가져올 국가적 타격은 즉각적이고 치명적이다. 국가 경제 보호라는 명분 앞에 노조가 가처분 신청 등으로 저항하더라도 그 효력을 정지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로 파업을 중단시키는 긴급조정권의 발동은 노사 모두에게 상처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경제의 신뢰도와 대외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부끄러운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의 경쟁력은 단기 분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에서 만들어진다. 오늘의 성과가 다음 세대의 투자와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 때 성과급 역시 건강한 보상 체계로 기능할 수 있다. 타사와의 단순 비교에 매몰되어 우리도 달라는 식의 상시적 쟁의가 멈추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성과가 나도 파업, 안 나도 파업'을 하는 고위험 경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성과급은 현재의 보상을 넘어 기업의 미래 투자와 산업의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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