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국빈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로마의 한 호텔에서 화상으로 수석보좌관회의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화상으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주권 정부의 첫 1년이 내란의 혼란을 수습하고 전체 국정의 설계도를 그리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2년 차 국정은 핵심 과제들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문턱이 닳을 정도로 여당과 야당을 찾아다니며 입법 속도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당부했다. 사진=공동취재
6·3 지방선거 이후에 대통령이 부쩍 포용과 통합의 책임 여당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는 해외 순방 중에 막스 베버까지 인용하며 엑스(X·옛 트위터)에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치적 책임’이라는 강령 수준의 글을 올렸다. 이미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여당은 싸우는 야당과 달리 바다와 같은 포용과 통합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야당 출신 합류 인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일부의 배타적 태도와 그에 따른 총선 실패를 지적하는 발언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이어진 대통령의 ‘포용 여당론’은 이재명 정부 집권 여당의 현실과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과연 이 대통령이 명실상부하게 포용과 통합의 국정 운영 기조를 지향하고 있는지, 배타적 패권 정치를 주도해 온 여당이 포용과 통합, 개방의 바다와 같은 정당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전쟁의 정치라 할 정도의 극단적인 진영 대결의 정치다. 물론 그 정치의 주도 세력은 집권 여당이다.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 리스크 관련 입법, 내란 청산, 조작 기소 특검 및 공소 취소 추진 등 대결적 정치 쟁점을 주도했다. 위헌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상대적으로 대통령은 이런 입법 활동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고 국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헌 논란을 부를 정도의 심각한 사안, 더구나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들을 여당이 대통령의 뜻에 반해 추진할 수 있을까. 기자회견의 질의응답 등에서 보았듯 검찰의 보완수사요구권 정도만 당정 사이에 미묘하게 논의되고 있을 뿐 청와대와 여당은 역할 분담하면서 정국을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다. 포용을 말한 이 대통령도 지난 지방선거 국면에서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르면서까지 사실상 야당을 겨냥한 ‘저질의 그들’을 심판해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의 일관된 포용과 통합의 국정 운영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취임 1주년을 맞으면서 달라진 것일까, 그냥 상황에 따른 그때그때의 발언일까.
◇ “국정 주도 세력, ‘큰 바다’ 돼야”
어느 쪽이든 야당일 때와 다른 여당의 역할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국정을 주도하는 세력으로서 차이를 경계하는 배타적 태도보다는 모든 물이 모이는 ‘큰 바다’가 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정언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깨고 나가야(돌파)한다면 깨지는 이들에 대한 배려, 공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경쟁자를 불가피하게 공격할 때는 헝겊으로 감싼 펜싱을 했다”고 비유했던 독일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2018년 기민당 대표 퇴임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메르켈은 실제 그런 ‘엄마리더십’으로 평가받았다.
어느 친여 정치학자는 대통령의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치적 책임’을 인용하며 그를 우리 시대의 정조라고 추켜세웠다.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는 한때의 발언과는 결이 달라 보이긴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새롭게 정비한 정치 철학이든 시대적 환경의 도움을 받아 쓴 것이든 포용의 여당론과 바다와 같은 자세는 새겨둘 만한 정치적 강령이다.
문제는 현 집권 민주당의 풍토가 포용의 여당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다는 점이다. 정권에 대한 비판 세력은 내란 동조 프레임으로 가두거나 배제하고, 내부의 비판마저도 ‘수박’ 등의 멸칭으로 봉쇄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스스로를 민주 개혁 또는 민주 진보 세력이라 자임하지만 구호와 무관한 권력 카르텔이 돼버린 지 오래다. 민주를 내세우는 세력이 스스로는 반민주적인 전체주의와 패권적 태도를 보이는 부조리의 정치 시대다. 공공의 대의나 염치는 실종되고 정치를 권력 투쟁의 게임으로만 보는 정치 문화가 지배한다.
싸우는 여당과는 다른 여당의 역할로 포용과 책임을 말했다.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그러나 여당의 역할 변화에서 빠트리지 않아야 할 인식은 스스로가 그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야당 시절 비판의 대상은 상대 집권 세력이었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그 권력이 된 것이다. 물론 야당과의 권력 투쟁이라는 정치 현실에서 비판의 화살은 상대를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비판했던 명제가 집권 세력 이후에 사라져 버린다면 정권 교체의 의미도 민주주의도 살아나지 않는다. 야당 시절 비판적으로 내걸었던 명제들을 이제는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정치다.
역대 집권 세력을 보면 야당 시절 그렇게 비판하던 행태를 재현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마주하게 된다. 더 심한 경우들도 종종 있다. 물론 상대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스스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세상사다. 그런 만큼 역설적으로 권력 스스로에 대한 성찰, 권력의 절제는 집권 세력이 새겨야 할 명제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모두를 위한 포용과 개방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진심이라면 먼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부터 포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은 정 대표가 6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안 관련 발언을 하던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 “다수당, 정치 개혁 주체이자 개혁 대상…‘카르텔 권력’”
사실 현재 민주당은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최고의 기득권 세력이다. 정치 개혁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정치 개혁의 대상이다. 그런데 권력 기득권 세력이면서 수십 년 전 민주화 운동 시절의 소명을 담지한 정의로운 세력인 양 착각하거나 자기기만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권력 집단이 정의 독점의 사고를 갖는 순간, 독재가 된다.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그들의 권력은 책임의 대의 권력이 아니라 이미 특권의 카르텔 권력으로 변질돼 있다. 하기야, 권력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공적 권력의 사적 특권화가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유하는 특권을 마치 공적인 헌신처럼 기만하기 때문에 더 문제다.
사실 최근 선관위 부실 사태에 대한 2030 세대의 분노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참정권 훼손이 부른 것이지만, 수년간 독주해 온 자칭 민주 세력의 횡포에 대한 반감도 내포하고 있다.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양 오만한 권력의 형편없는 실상을 보면서 그동안의 짓눌린 침묵이 폭발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편승 또는 합류한 태극기 부대의 문제는 별도 사안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재명 정권은 박근혜, 윤석열 정권 시절 이들을 비판했던 야당이었고 이 대통령은 당시 비판 야당의 중심 인물이었다. 권력의 오남용을 비판했고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기소에 한정된 것이라 주장하면서 혐의가 있을 경우 대통령의 강제수사까지 가능하다며, 공적 권력의 특권화를 경계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책임을 물어 두 대통령은 결국 탄핵됐고,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대체하며 집권했다.
박근혜·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여소야대라는 권력 구조가 견제력을 발휘하고 헌정 위기를 탄핵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 헌정 체제와 민주주의가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견제되지 않는 패권 권력의 오남용은 그 치유의 기제마저 작동하지 않은 채 자칫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로 치닫게 할 수 있다.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독점 체제에서는 그만큼 권력의 자기 절제와 헌정 체제에 대한 존중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야당 시절 그토록 비판했던 정권의 권력 오남용 금지는 잘 지켜지고 있는가. 이재명 정부의 집권 세력은 대통령 권력뿐 아니라 입법 권력까지도 압도적으로 장악한 견제되지 않는 권력으로 민주화 이후 최고의 패권 세력이다. 절제보다는 패권에 의한 일방주의가 두드러진다. ‘사법3법’ 제개정에서 최근 ‘조작 기소’ 특검 발의에 이르기까지 사법 리스크와 관련된 특별 조치들을 위헌 논란에도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대통령의 강제수사도 가능하다고 소리쳤던 세력이 자신들의 재판은 중지하고 특별법을 동원해 공소 취소도 도모하려 한다. 막스 베버까지 인용하며 강조한 책임 윤리가 부끄럽다.
◇ “지선 결과에 ‘겸손’ 언급했지만…태도 전환 불분명”
대의 권력의 대표적 책임 윤리는 정책적 성과 이전에 그 권력의 토대가 되는 헌정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야당 시절 권력 비판의 근거가 헌정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헌정의 원칙과 법치주의는 대의 권력의 책임 윤리이자 민주주의 체제의 보편적 신념 윤리다.
민주당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겸손과 낮은 자세를 반성적 자세로 다짐했다. 겸손과 낮은 자세를 말했지만, 어떤 태도의 전환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지방선거 이전 강경 기조로 밀어붙였던 내란 잔재 청산과 검수완박을 당면 과제로 제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내란 청산 프레임과 공소 취소 전략을 그대로 안은 채 포용과 통합의 여당 정치가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대통령이 말하는 바다와 같은 포용의 여당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집권 세력은 구호나 주장이 아닌 냉철한 균형 감각에 의한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 대통령은 자신의 X에 올린 글에서 역설했다. 그런 점에서 사실 대통령의 포용적 여당론은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실행으로 보여줘야 할 과제다. 배타적 진영 정치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판적으로 제기하는 포용적 여당론은 평론가나 제3의 정치 세력이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여권의 구심점인 대통령은 포용적 여당, 바다와 같은 통합의 정치, 상대를 배려하는 공감의 정치를 실행하고 선도해야 한다.
결국 포용적 여당의 길은 대통령과 민주당 모두 정치 전략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차기 당권 경쟁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거세지고 있지만, 이 문제는 쟁점화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도 독주가 흔들리는 초유의 상황을 맞으면서, 진영 정치에 대한 호소를 넘어 대전환을 제기할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의 ‘포용 여당론’이 오는 전당대회의 테제이자 집권 2년차의 국정 기조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현학적으로 던진 공허한 문구에 불과하게 될지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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