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졸 신화' 외투 벗고 '야전'에서 쓴 첫 정치 자서전
'수직적 사다리' 해체하고 '수평적 존엄'을 설계하다
기회소득, '기본사회' 향한 전략적 징검다리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일"…동지의 언어로 건넨 손김동연 경기지사의 네 번째 저서 '나답게 사는 세상' 표지. 더봄출판사 제공
34년 차 경제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기지사가 자신을 칭송하던 '고졸 신화'라는 낡은 외투를 스스로 벗어 던졌다.
지난 3일 발간된 저서 '나답게 사는 세상'에서 김 지사는 "나는 교만했다"고 고백한다. 2022년 경기지사 당선이 오롯이 자신의 유능함 덕분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오판이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책에 담긴 그의 낮은 자세는 현실 정치를 접한 정치인의 현실적인 결론이다. 그동안 '기술관료' 또는 '제3지대 인사'로 여야의 영입 1순위였지만, 거꾸로 그런 이미지는 김 지사가 민주당 내 주류 세력과 결합하는 데 있어 늘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김 지사가 '유능한 기술관료'에서 '민주당의 가치를 품은 정치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음을 알리는 신호탄 성격을 갖고 있다.
그간의 저서가 수직적 사다리를 오르는 '개인의 성공'에 방점이 찍혔다면 현실 정치를 경험한 뒤 쓴 이번 책은 '나답게 사는 세상'을 말한다. 여기서 '나답게'란 단순히 개인주의적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경쟁과 비교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개인이 불안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조건과 속도에 맞는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기회'와 '안전망'을 보장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이 개념은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개천의 용' 서사를 스스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남들보다 높이 올라가는 수직적 성공이 아니라 서 있는 자리에서 존엄을 유지하는 수평적 삶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정책적 명분은 '기회소득'이다. 시장이 외면한 가치를 국가가 보상한다는 이 논리는 성공의 정의를 사유화하지 않고 사회화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김동연 경기지사 저서에 드러난 철학적 궤적의 변화
김 지사는 무조건적 지급이라는 '기본소득'의 이상과 재정적 한계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기회소득을 끌어들인다. 당장 전 국민에게 보편적 소득을 지급하기엔 재정적 합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예술가나 장애인처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에게 먼저 소득을 보장해 정책의 효능감을 증명하겠다는 계산이다.
"예술 활동은 노동인가?" 혹은 "장애인의 자활 노력은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동안 시장이 평가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노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하지 않는 자에게 왜 돈을 주는가"라는 대중적 거부감을 넘어서고 시장 밖의 활동을 '가치 있는 기여'로 인정받게 함으로써 향후 기본소득이 도입될 때 필요한 심리적 저항선을 미리 무너뜨리는 일종의 '가치적 예방접종'인 셈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소득과 전통적 노동의 분리'를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기회소득과 기본사회의 접점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동정으로 일방적으로 혜택을 주는 시혜적 복지를 '당당한 권리'로 치환하려는 기본사회의 가치를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경로로 구체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2일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 '나답게 사는 세상 – 김동연의 경기도 비전'에서 관객들에게 큰 절을 하는 모습. 더봄출판사 제공
현실 정치의 쓴맛을 본 뒤 비로소 '동지'의 언어를 채득한 김 지사가 숫자로 증명하던 관료의 길을 지나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그는 책 말미에 자신의 처지와 반성, 결심을 이렇게 토해냈다.
"성과로 평가받는 자리에 오래 서 있다 보니 '잘 해내는 사람'이 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경기도정을 맡으며 깨달았다. 지키고 싶은 것은 평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라는 사실을. 일상은 특별해서가 아닌 지켜내지 않으면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다. 이 길은 민주당이 지켜온 가치와 닿아 있다."
'고졸 신화' 외투 벗고 '야전'에서 쓴 첫 정치 자서전
'수직적 사다리' 해체하고 '수평적 존엄'을 설계하다
기회소득, '기본사회' 향한 전략적 징검다리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일"…동지의 언어로 건넨 손김동연 경기지사의 네 번째 저서 '나답게 사는 세상' 표지. 더봄출판사 제공
34년 차 경제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기지사가 자신을 칭송하던 '고졸 신화'라는 낡은 외투를 스스로 벗어 던졌다.
지난 3일 발간된 저서 '나답게 사는 세상'에서 김 지사는 "나는 교만했다"고 고백한다. 2022년 경기지사 당선이 오롯이 자신의 유능함 덕분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오판이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고졸 신화' 외투 벗고 '야전'에서 쓴 첫 정치 자서전
이 책은 김 지사가 현실 정치에 뛰어든 뒤 내놓은 사실상 첫 번째 '정치 자서전'이다. 이전의 저작들이 정치를 향한 '준비'와 '선언'을 담은 이론서에 가까웠다면 이번 신간은 경기도정이라는 거친 야전에서 직접 부딪히며 쓴 실전 기록이다.책에 담긴 그의 낮은 자세는 현실 정치를 접한 정치인의 현실적인 결론이다. 그동안 '기술관료' 또는 '제3지대 인사'로 여야의 영입 1순위였지만, 거꾸로 그런 이미지는 김 지사가 민주당 내 주류 세력과 결합하는 데 있어 늘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김 지사가 '유능한 기술관료'에서 '민주당의 가치를 품은 정치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음을 알리는 신호탄 성격을 갖고 있다.
'수직적 사다리' 해체하고 '수평적 존엄'을 설계하다
철학적 궤적도 이 책을 기점으로 변화했다. 김 지사의 철학적 궤적은 '개인의 실력과 반란'(있는 자리 흩트리기, 2017)에서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대한민국 금기깨기, 2021·분노를 넘어, 2022)를 거쳐, 이제는 '국가의 책임과 개인의 존엄 또는 행복'으로 이동하고 있다.그간의 저서가 수직적 사다리를 오르는 '개인의 성공'에 방점이 찍혔다면 현실 정치를 경험한 뒤 쓴 이번 책은 '나답게 사는 세상'을 말한다. 여기서 '나답게'란 단순히 개인주의적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경쟁과 비교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개인이 불안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조건과 속도에 맞는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기회'와 '안전망'을 보장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이 개념은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개천의 용' 서사를 스스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남들보다 높이 올라가는 수직적 성공이 아니라 서 있는 자리에서 존엄을 유지하는 수평적 삶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정책적 명분은 '기회소득'이다. 시장이 외면한 가치를 국가가 보상한다는 이 논리는 성공의 정의를 사유화하지 않고 사회화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김동연 경기지사 저서에 드러난 철학적 궤적의 변화
기회소득, '기본사회' 향한 전략적 징검다리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재명 대통령의 브랜드인 '기본사회'와의 접점이다. 김 지사는 기회소득을 기본사회로 가기 위한 '현실적 징검다리'로 명명한다. 단순한 용어의 통합이 아니다.김 지사는 무조건적 지급이라는 '기본소득'의 이상과 재정적 한계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기회소득을 끌어들인다. 당장 전 국민에게 보편적 소득을 지급하기엔 재정적 합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예술가나 장애인처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에게 먼저 소득을 보장해 정책의 효능감을 증명하겠다는 계산이다.
"예술 활동은 노동인가?" 혹은 "장애인의 자활 노력은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동안 시장이 평가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노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하지 않는 자에게 왜 돈을 주는가"라는 대중적 거부감을 넘어서고 시장 밖의 활동을 '가치 있는 기여'로 인정받게 함으로써 향후 기본소득이 도입될 때 필요한 심리적 저항선을 미리 무너뜨리는 일종의 '가치적 예방접종'인 셈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소득과 전통적 노동의 분리'를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기회소득과 기본사회의 접점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동정으로 일방적으로 혜택을 주는 시혜적 복지를 '당당한 권리'로 치환하려는 기본사회의 가치를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경로로 구체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2일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 '나답게 사는 세상 – 김동연의 경기도 비전'에서 관객들에게 큰 절을 하는 모습. 더봄출판사 제공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일"…동지의 언어로 건넨 손
지난 2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김 지사가 관객에게 한 큰절과 "나를 도구로 써달라"는 호소는 그가 이제 '유능한 행정가'라는 무난한 평가 뒤에 숨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비치는 이유도 이같은 배경에서다.현실 정치의 쓴맛을 본 뒤 비로소 '동지'의 언어를 채득한 김 지사가 숫자로 증명하던 관료의 길을 지나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그는 책 말미에 자신의 처지와 반성, 결심을 이렇게 토해냈다.
"성과로 평가받는 자리에 오래 서 있다 보니 '잘 해내는 사람'이 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경기도정을 맡으며 깨달았다. 지키고 싶은 것은 평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라는 사실을. 일상은 특별해서가 아닌 지켜내지 않으면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다. 이 길은 민주당이 지켜온 가치와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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