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나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 그를 보고 괴물이라고 부르는 순간 괴물이 되는 걸까.
수원시립미술관의 패트리샤 피치니니 전시 ‘킨쉽(Kinship)’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생명체들이 산다. 인간 같기도 동물 같기도 한 몸엔 핏줄과 주름, 털까지 돋아 있다. 처음엔 징그러워 슬쩍 몸을 뒤로 물리고 싶어진다. 그런데 오래 바라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저게 뭐지 하다가 문득 저걸 안으면 어떤 기분일지가 궁금해진다. 어쩌면 피치니니의 예술은 바로 그 몇 ㎝의 이동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고백한다. 어디서나 타향살이하던 자신의 가족이 호주로 이주한 후 어린 자신의 영혼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어딘가에 속하는 것’이었다고. 그래서인지 그가 만든 괴물들은 좀처럼 혼자 있지 않다.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고 서로 기대거나 누군가의 품에 있다. 괴물에게도 가족을 만들어준 거다.
열세 살 무렵 어머니가 암에 걸리자 어린 피치니니는 과학을 기다렸다. 과학이 더 빨리 발전하면 엄마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에게 생명공학은 차갑고 무서운 미래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지 모르는 희망이었다. 그러다 묻게 됐다. 인간이 그 과정 속에서 전에 없던 새 생명을 만들었다면 그 생명은 누가 돌볼 것인가.
200여년 전에 같은 질문을 던진 이가 있었다. 메리 셸리다. 시체와 동물의 장기를 모아 거대한 생명체를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기가 만든 창조물의 모습에 질려 도망쳤다. 돌보지 않았고 외롭게 방치했다. 피치니니는 정확히 이 비극을 뒤집는다. 그도 전에 없던 다소 흉측해 보이는 생명체를 만들지만 결코 버리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를 만들어주고 서로를 안게 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도 이들이 피하고 버려야 할 괴물처럼 보이냐고.
그런 질문을 품고 미술관 밖으로 나오면 하필 수원이다. 또 하나의 ‘괴물’ 이야기가 있는 곳. 아버지 영조에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 그의 폭력까지 품을 수는 없지만, 한 인간이 어떻게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갔는지는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괴물을 ‘아버지’라고 부른 왕이 있었다. 1789년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겼고, 그 일로 수원 읍치를 움직였다. 정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장과 농업 기반을 만들고 새 기술을 받아들여 화성을 쌓았다. 아버지의 한 맺힌 죽음에서 시작된 일이 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도시 실험으로 변했다. 230여년 뒤 그 도시 미술관에 피치니니의 낯선 가족들이 와서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전혀 다른 별에서 태어난 낯선 존재들이 서로를 돌보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수원화성을 걷다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레이스와 로키가 떠올랐다. 인간 그레이스와 ‘신발 속 돌멩이’처럼 생긴 외계 생명체 로키가 서로를 길들이고 돌보다 끝내 서로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너무도 애틋하게 보았던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해합니다. 친족 돌보기에도 바쁜데 성가신 ‘돌멩이’까지 상대하는 일에 문득 화가 난다는 거. 하지만 돌멩이들이 뭉치면 수원화성처럼 새로운 시대를 지켜주는 아름답고 튼튼한 성벽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함부로 털라 마라 하지 마세요. 소용없어요. 돌멩이들이 벌써 서로를 알아보고 뭉치기 시작했거든요. 그것도 매우 발랄하게요. 사랑스러운 돌멩이 로키들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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