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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획] 26조 '전쟁 추경' 의결, 3580만 명에 최대 60만 원…고유가 응급...

재원은 반도체 경기 호황과 증시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 25조 2000억 원에 기금 여유 재원 1조 원을 더해 마련했다. 추가 국채 발행은 없으며, 오히려 1조 원은 국채 상환에 투입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51.6퍼센트에서...

[기획] 26조 '전쟁 추경' 의결, 3580만 명에 최대 60만 원…고유가 응급...

중동전쟁 한 달, 역대 최단 19일 만에 편성된 초대형 추경

비축유 스와프·석유 최고가격제·피해지원금 동시 가동에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여전

[공감신문] 정재은 기자=정부가 중동전쟁 발발 한 달 만에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다. 소득 하위 70퍼센트 국민 약 3580만 명에게 1인당 10만~60만 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차등 지급하고,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재원 5조 원을 보강하며, 비축유 스와프라는 전례 없는 원유 수급 대응책까지 꺼내 들었다. 역대 최단기간인 19일 만에 편성된 초대형 추경이다. 정부는 적자국채 없이 초과 세수만으로 재원을 마련했다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지만, 야당과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6·3 지방선거를 앞둔 '매표용 현금 살포'라는 비판과 물가 자극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이 한 번의 추경으로 버틸 수 있는지, 그리고 현금 지급이라는 처방이 구조적 에너지 위기 앞에서 실효적인 해법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3월 31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중동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추경이다. 총 규모 26조 2000억 원 가운데 고유가 부담 완화에 10조 1000억 원, 민생 안정에 2조 8000억 원, 산업 피해 최소화·공급망 안정에 2조 6000억 원, 지방재정 보강에 9조 7000억 원이 각각 배정됐다. 재원은 반도체 경기 호황과 증시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 25조 2000억 원에 기금 여유 재원 1조 원을 더해 마련했다. 추가 국채 발행은 없으며, 오히려 1조 원은 국채 상환에 투입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51.6퍼센트에서 50.6퍼센트로 1퍼센트포인트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의결 직후 "중동 지역 긴장 심화에 따른 파도가 우리 국민과 경제에 미치기 전에 지체 없이 견고한 제방을 쌓아야 한다"며 국회의 신속한 의결을 촉구했다.

추경의 핵심은 고유가 부담 완화 3대 패키지에 집중된 10조 1000억 원이다. 첫째, 소득 하위 70퍼센트 국민 약 3580만 명에게 4조 8000억 원을 투입해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한다. 지급 방식은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동일하게 신용·체크카드 또는 지역화폐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금액은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에 따라 정교하게 차등화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85만 명은 수도권 55만 원, 비수도권 60만 원을 받으며, 차상위·한부모 가정 36만 명은 45만~50만 원을 받는다. 나머지 소득 하위 70퍼센트에 해당하는 3256만 명은 수도권 10만 원, 비수도권 15만 원, 인구감소 특별지역 20만 원, 우대지역 25만 원으로 지방 거주자일수록 지원 폭을 넓혔다. 지급은 2단계로 나뉘어 기초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 먼저 1차 지급하고, 이후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대상을 확정해 2차 지급을 진행한다.

둘째,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 등에 5조 원이 투입된다.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정부가 정한 상한가 이하로 석유 제품을 판매하고, 원가와의 차액을 정부가 사후 보전하는 구조다. 약 6개월 운영을 기준으로 예산이 편성됐으며, 상반기 접수 물량은 7~8월, 하반기 물량은 11~12월에 지원될 전망이다. 셋째, K-패스 환급률을 한시적으로 최대 30퍼센트포인트 상향하는 대중교통 환급 지원에 877억 원이 배정됐다. 일반 이용자 환급률은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저소득층은 53퍼센트에서 83퍼센트로 대폭 올라간다. 등유·LPG를 사용하는 저소득층 20만 가구에는 에너지바우처 5만 원이 추가 지원되고, 시설농가와 어업인에게는 유가연동 보조금이 한시 지급된다.

추경 발표와 동시에 가동된 비축유 스와프 제도는 이번 위기 대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정책 실험이다. 기존의 비축유 '방출'이 재고를 줄이는 일방향 조치였다면, 스와프는 정유사가 해외에서 대체 원유를 확보한 것을 전제로 비축유를 먼저 빌려주고 대체 물량 도착 후 상환받는 교환 구조다. 산업통상부는 3월 31일부터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으며, 국내 정유 4사 모두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4~5월 신청 가능 물량은 2000만 배럴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고, 한 정유사는 이미 200만 배럴 규모의 계약을 추진 중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 지역에 발이 묶인 국내 초대형 원유운반선은 7척, 약 1400만 배럴 규모로 집계됐다. 대체 원유 도입에는 호주산 약 14일, 중동산 20일, 미국산 최대 50일이 소요돼 시간 공백이 불가피한데, 스와프는 이 공백을 메우는 완충 장치로 설계된 셈이다. 정부는 비축유 방출과 스와프를 병행하면 최소 6월까지는 원유 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 대규모 재정 투입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느냐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추경 처리 일정에는 합의했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현금 살포나 재정 살포로 돈을 풀면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더 나아가 "물가 불안을 부채질할 지역화폐식 민생지원금에 예산을 쏟아붓는 행태는 6·3 지방선거를 겨냥한 매표용 현금 살포"라고 비판했다. 재정학계의 우려도 적지 않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김우철 교수는 "유가가 높은 것은 맞지만 지금 상황이 당장 대규모 현금 지원이 필요할 정도인지 의문"이라며 "현금 지급은 효과도 제한적이고 재정 운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현금 지급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취약 계층과 특정 업종에 충격이 집중된 상황에서는 직접 지원 방식이 보다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는 단기적으로 소비 진작 효과를 낸 바 있다. 정부도 이번 추경이 성장률을 0.2퍼센트포인트 끌어올리고, 지역화폐 형태의 지급이 자금을 지역 내에서 순환시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매출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다만 물가 자극 효과에 대해서는 "성장률이 낮은 상황에서 재정 투자로 물가가 자극될 위험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번 추경을 둘러싼 더 근본적인 질문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 번의 추경으로 충분한가에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정부부채는 1년 사이 9.8퍼센트 급증했고, 국가총부채는 2025년 3분기 기준 6500조 원을 돌파했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48.6퍼센트로 1년 전보다 5퍼센트포인트 상승한 상태다. 초과 세수라는 일회성 재원에 의존해 26조 원을 한꺼번에 집행한 뒤, 전쟁이 계속되면서 세수가 줄고 추가 추경 수요가 발생하면 그때는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해진다. 중동 전쟁 한 달 만에 성장률 전망치가 1.7퍼센트로 꺾이고 물가 전망치는 2.7퍼센트로 치솟은 현실에서, 이번 추경은 응급 지혈대일 뿐 구조적 수술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야는 4월 2일 추경 관련 시정연설, 7~8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 및 부별 심사를 거쳐 4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다만 국민의힘이 일정에만 합의했을 뿐 추경 내용에 대해서는 면밀히 심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피해지원금 규모와 지급 대상, 석유 최고가격제의 정유사 보전 방식 등을 놓고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에너지 정책 분야에서 20년 이상 경력을 쌓아온 국책연구기관 소속 선임연구위원은 "비축유 스와프나 석유 최고가격제는 단기 수급 안정에는 유효하지만, 결국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와 정유 설비의 구조적 전환이 병행되지 않으면 같은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추경은 시간을 버는 처방이고, 그 시간 안에 구조 개편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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