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데르발스 반도체 질화붕소(BN)를 비틀어 적층해 형성한 모아레 양자우물 모식도
기존 반도체 기술로는 구현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졌던 심자외선(Deep UV) 영역에서 고효율로 빛을 내는 신소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특히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강력한 살균력을 가진 특정 파대역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향후 상시 방역 시스템 구축에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김종환 교수와 기초과학연구원(IBS) 조문호 단장 연구팀이 반데르발스 반도체 소재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모아레 양자 우물(moiré quantum well)’ 구조를 구현, 기존 소재 대비 심자외선 방출 효율을 20배 이상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심자외선(200~280㎚ 파장)은 세균과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능력이 탁월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큰 주목을 받아왔다. 기존에는 질화갈륨(GaN)에 알루미늄을 섞은 '알루미늄질화갈륨(AlGaN)' 반도체를 주로 사용해왔으나, 파장이 240㎚ 이하로 짧아질수록 광원 효율이 1% 미만으로 급감하는 기술적 난제가 존재했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반데르발스(van der Waals) 층상 구조를 가진 질화붕소(BN)에 주목했다. 질화붕소는 원자층 사이의 결합이 약해 층을 쉽게 분리하거나 쌓을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연구팀은 두 개의 질화붕소 결정을 서로 미세하게 비틀어 적층(Twist stacking)할 때 계면에서 전자를 강하게 가둘 수 있는 나노미터 크기의 공간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모아레 양자 우물’이라 명명했으며, 이 구조를 통해 심자외선 영역의 빛 방출 효율을 기존 AlGaN 대비 20배 이상 끌어올렸다.
질화붕소(BN) 모아레 양자우물을 이용한 심자외선 LED 소자와 발광 특성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인체에 안전한 심자외선 광원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현재 상용화된 260㎚ 대역의 자외선은 인체 노출 시 피부암이나 시력 손상을 유발해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반면, 연구팀이 효율을 극대화한 200~230㎚(Far-UVC) 파장 대역은 피부 최외곽의 각질층을 통과하지 못해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병원균 제거 능력은 유지하는 특성을 가진다.
그동안 이 대역은 광원 효율이 너무 낮아 실용화가 어려웠으나, 이번 기술 개발로 병원, 학교, 대중교통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에서 ‘사람이 있어도 상시 가동할 수 있는 차세대 살균 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간 반데르발스 물질 연구는 주로 그래핀과 같은 얇은 2차원 박막 중심이었으나, 이번 연구는 3차원 벌크 결정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양자 현상을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김종환 교수는 “반데르발스 물질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모아레 양자물리 현상을 2차원에서 3차원 물질로 확장하는 개념적 전환”이라며 “이 연구는 향후 새로운 양자 물질 설계와 차세대 광소자 개발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구혁채 제1차관은 “김종환 교수는 과기정통부 기초 연구 사업을 통해 지난 10년간 한 분야를 꾸준하게 연구해온 연구자”라며 “연구자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간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향후 이번 기술을 바탕으로 고효율 LED 소자 제작 및 전기 구동 효율을 높이기 위한 후속 연구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한편, 과기정통부 ‘기초 연구 사업(중견연구)’, ‘기초과학연구원 지원사업’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3월 20일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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