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기자칼럼]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비용’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5·18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겠다며 토론회를 개최한 후 6·25전쟁을 거론했다. 역사적으로 6·25가 더 큰 사건인데 이를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는 논의는 없다며 5·18이 성역화됐다는 것이다. 우선 6·25와 5·18은 본질부터 다른 사건이다.

[기자칼럼]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비용’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5·18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겠다며 토론회를 개최한 후 6·25전쟁을 거론했다. 역사적으로 6·25가 더 큰 사건인데 이를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는 논의는 없다며 5·18이 성역화됐다는 것이다. 우선 6·25와 5·18은 본질부터 다른 사건이다. 6·25전쟁이 국제정치적 대립과 이념 갈등에 빨려 들어간 동족상잔 비극의 역사라면, 5·18민주화운동은 독재 권력의 폭주를 막아내기 위해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이뤄낸 저항의 역사다. 헌법에 5·18 정신을 수록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한 이들의 정신을 기리겠다는 뜻으로 이미 수록된 4·19혁명의 정신처럼 우리 사회가 어떤 점을 지향하는지 가다듬겠다는 시도다.

이 의원은 5·18이 성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동의한다. 성역이 되는 역사는 없다. 그러나 이 의원 주장의 초점은 잘못됐다. 한국 사회가 5·18에 대한 다음 단계 논의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은 성역화돼서가 아니다. 5·18의 상처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을 의심하는 이 의원같은 사람들이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가로막고 있어서다. 토론회에 12·12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주도했던 신군부의 실세인 허화평이 참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학술적 토론은 이미 사회가 정리한 역사적 사실을 흔들기 위한 프레임일 뿐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의 부재는 또 발견된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영훈 교수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뤄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 학자다. 이 교수의 문제는 역사의 상처에 대한 명확한 인식 부족이다. 피해자들이 여전히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친일파 청산을 완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역사에도 공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한국에서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구조에는 이러한 흐름이 있다. 독재자들은 독재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고 학살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살을 부정했다.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 역시 진정하게 반성할 기미가 요원해 보인다. 더 할 필요가 없다고 할 때까지 진상규명을 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끝없이 지원하는 사회가 돼야 가해자의 논리나 당시의 성과를 따져볼 수 있는 거라면 과한 것일까.

최근 한 배우의 증조부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소동을 친일의 대가로 쌓은 경제·사회적 자본이 세대 간 격차로 고착화된 불공정함에 대한 대중의 반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하게 살고 친일파의 후손은 풍요롭게 사는 현실은 단순한 경제적 실리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공동체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헌신한 삶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회의 안위를 팔아넘긴 이들의 후손이 잘사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대우받고 공동체를 배신한 행위는 그에 맞는 부담을 진다는 기본적인 신뢰와 정의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결국 갈등과 비용으로 돌아온다.

임아영 정치부 차장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