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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수첩] 숫자보다 중요한 건 '나누는 방식'

테크 산업 가운데서도 특히 반도체 기업은 인프라와 연구개발(R&D), 인재 투자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회사들이 공장에 인력을 줄이고 자동화 솔루션 도입을 확대하는 추세이지만, 반도체 생산 현장을 단숨에...

[기자수첩] 숫자보다 중요한 건 '나누는 방식'

삼성전자 노사 갈등 배경은 ‘탐욕’이 아니라 ‘분배 설계의 실패’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을 노조의 탐욕으로만 간주해 비판하는 의견들이 많다. 억대 연봉의 대한민국 최고 대기업 직원들이 뭐가 아쉬워서 45조원 성과급을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판의 이면에 다수 직장인의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1% 미만의 최상위 집단에 속하지 못했다는 데서 비롯된 경제적 소외감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하물며, 한 공무원이 익명의 게시판에 토로한 “세금을 내는 전 국민도 이들의 반도체 호황 성과를 다같이 누려야 한다”는 푸념까지 기사로 나와 이슈가 되기도 했다.

노조의 과한 요구와 파업이 삼성전자를 넘어 한국 최대 수출 산업인 반도체 경쟁력을 저해하는 반국가적인 집단행동이라는 강한 질타도 쏟아진다. 산업통상부 장관도 직접 나서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고 업계 특성상 대규모 투자가 지속돼야 하는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파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조는 오히려 이런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번 파업이 단순한 사내 노사 갈등을 넘어 국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회사가 그 무게에 걸맞은 태도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그간 좀처럼 표면화되지 않았던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이 지금처럼 사회적 화두로 떠오게 된 배경이 뭘까? 단순한 ‘탐욕’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를 어떻게 나누고 그 기준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분배 설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이라는 경이로운 실적을 달성했다. 업계에선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300조~350조원대에 이를 수 있단 전망까지 나온다. 이는 애플과 엔비디아에 이어 글로벌 최상위권에 드는 수준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까지 합산하면, 두 회사가 코스피 상장사 전체 연간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노조는 사측에 영업이익 15%를 성과급의 재원으로 활용해달라는 것과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연 300조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같은 노조의 요구를 모두 반영한다면 연간 45조원이 임직원의 성과급으로 지급된다.

외부에선 45조원의 성과급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지만, 노조는 300조원 영업이익에서 45조원이 구성원 성과급으로 나가더라도 255조원이 남는다고 말한다. 노조는 이 점을 중점으로 내세우며 회사에 성과급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지속하기 위해선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중요하단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인재 투자 역시 과거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테크 산업 가운데서도 특히 반도체 기업은 인프라와 연구개발(R&D), 인재 투자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회사들이 공장에 인력을 줄이고 자동화 솔루션 도입을 확대하는 추세이지만, 반도체 생산 현장을 단숨에 완전 무인화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웨이퍼 한장이 완성되기까지 초미세 공정 제어, 장비 간 표준화 한계, 예기치 못한 각종 변수에 대한 대응 등 고도의 현장 판단과 관리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도 SK하이닉스 이상 수준으로 대우하겠다며 성과급 산정 근거를 영업이익 13%로 올리고, 때에 따라서 다른 사업부도 경영성과가 개선될 시 최대 75%까지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며 나름 파격적인 안건을 내밀었다. 노조 입장에서도 역대 최대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올해 기준으로만 봤을 땐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그러나 노조는 성과급 산정기준의 투명성과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과반 조합 달성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삼성전자의 변화 요구하는 직원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요구해온 노사 합의가 근로자를 대표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노조가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강하게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쟁사 이상의 대우’라는 선언적 약속만으론 부족하고, 성과급 상한제 폐지라는 명확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 제한 없이 더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어야 인재 이탈을 막고 동기부여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실제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성과급 상한제를 폐지한 이후, 삼성전자에서 SK하이닉스로 이동한 인력이 상당했다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 과거에는 국가 발전과 회사의 성장이 개인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공동체적 인식이 강했다면, 이제는 각자가 자신의 몫을 지키고 극대화해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계산이 더 앞선다.

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사상 초유의 의료 공백 사태를 빚었던 의료계의 사례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의사 공급이 늘어날 경우 소득과 지위가 흔들릴 수 있는데, 그 부담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가 없다면 반대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는 인식이 작용한 셈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문제 삼는 지점도 결국 여기에 있다. 회사가 초과이익을 노동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업이익이 언제 또다시 정점에 오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제도화하지 못하면 향후 기업 이익이 임금으로 제대로 환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회사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얼마 없다. 삼성전자 임직원들과 국민들은 그들의 지혜로운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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