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손가락질 받는다.
고유가 시대를 지나고 있는 국내 정유사들의 모습이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기름값이 요동치고 있다. 이틈에 정유사들이 가격을 올려 이익을 챙긴다는 시선이 뒤따른다.
하지만 기름값이 오르는 맥락을 잘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과연 기름값 상승의 원인은 정유사일까.
고유가엔 정유사들만 돈을 많이 번다고?
겉으로 보면 맞는 이야기다. 실제로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 GS칼텍스, S-Oil, HD현대오일뱅크)는 올해 1분기 약 4조원 이상의 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익의 상당 부분은 유가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효과다.
원유 가격과 제품 가격 차이인 크랙마진(정제 마진)이 확대된 데다, 보유 재고의 평가 이익까지 반영되면서 실적이 개선된 측면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실적의 40~50%가 이러한 유가 효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방향이 바뀔 때다. 정유사는 유가 변동 리스크에 사실상 그대로 노출돼 있다.
최근에는 장기계약을 통한 중동산 중질유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3월부터 4월 초까지 가격이 급등한 원유를 스팟시장(즉시 거래 시장)에서 프리미엄까지 얹어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여기에 아직 국내에 도착하지 않은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약 200만 배럴 적재) 수십 척에 실린 물량 역시 부담이다. 해당 원유들은 고가에 매입된 상태라, 운송 중 유가가 하락할 경우 그 손실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유가가 떨어지면 같은 구조로 그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정유사들이 1분기 호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다.
기름값은 정유사 마음 아냐?
원유 가격은 국제 유가와 글로벌 시장에서 수급에 따라 먼저 형성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원유를 한 방울도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필요한 원유를 전량 수입한 뒤, 이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으로 만든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곳이 국내 정유사들이다.
기름값의 가장 큰 비중은 원유 가격이다. 실제로 소비자가 내는 가격의 절반 이상이 원유 비용에서 결정된다. 나머지가 정제·유통·세금 등이 더해진다.
국내 정유사는 이 가격을 반영해 제품을 공급한다. 국제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여기에 원유를 사서 정제하고 운송해 판매되기까지의 시간도 있기 때문에 유가가 변해도 가격은 시차를 두고 반영해야 된다. 즉 기름값은 정유사 마음이 아니다.
유가 1달러에 수천억 왔다 갔다…외부 변수에 그대로 노출
정유 산업은 높은 수익을 내는 산업이 아니다. 지난 10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약 1.77% 수준이다. 최근 코스피를 이끌며 다시금 각광받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같은 기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각각 19.6%, 21.9%다.
두 회사가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동안, 이들의 반도체가 들어가는 휴대폰과 노트북 등 소비자 제품 가격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일례로 2016년 LG 그램 노트북의 플래그십 모델 출고가는 약 140만 원 수준이었지만, 2026년 현재는 30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가파른 가격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높게 오른 반도체 가격이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해당 기업들을 향한 비난은 쉬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정유 산업은 상황이 다르다. 유가가 오르면 소비자 가격이 곧바로 체감되기 때문에, 원인이 어디에 있든 비난이 정유사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유가가 1달러만 움직여도 정유사 손익은 수천억원 단위로 변한다. 환율까지 더해지면 변동성은 더욱 커진다. 외부 변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산업임에도, 그 결과에 대한 원망까지 온전히 떠안는 모습이다.
고유가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분명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 책임의 출발점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오늘경제 윤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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