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투자업계에서는 ‘투자보다 회수’가 더 큰 고민이 되고 있다. 스타트업에 자금을 공급한 벤처캐피털은 결국 회수를 통해 다시 투자에 나서야 하지만, IPO 시장 위축과 기술특례상장제도에 대한 신뢰 저하가 맞물리며 선순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최근 열린 ‘벤처투자 선순환을 위한 투자회수 구조 개선 토론회’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논의됐다. 토론회에서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제도가 벤처투자 회수시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동시에 제도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 역시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적자 상태라도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으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바이오·딥테크·플랫폼 기업 등 미래 성장산업 기업들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자본시장 진입 통로 역할을 해왔다. 실제 많은 벤처기업들이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고, 벤처캐피털 역시 IPO를 핵심 회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문제는 시장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상장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주가 급락, 상장 이후 잇따른 관리종목 지정 사례는 투자자들의 피로감을 키웠다. 기술평가의 객관성과 상장 심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특히 기술평가기관의 평가 결과가 실제 기업가치와 얼마나 연결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기술성 평가를 통과했지만 상장 이후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사례가 누적되면서 시장에서는 “기술특례가 아니라 사실상 성장특례 아니냐”는 냉소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제도 자체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국내 벤처생태계 현실에서 IPO는 여전히 가장 현실적인 투자 회수 통로다. 회수시장이 막히면 벤처캐피털은 신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초기 스타트업 자금경색으로 이어진다. 결국 기술특례상장 위축은 혁신기업 성장 둔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상장 숫자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심사 체계와 상장 이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 기술평가기관 책임성을 강화하고, 상장 이후 일정 기간 기술개발 현황과 사업화 성과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기술기업 특성을 고려한 중장기 평가 체계도 필요하다. 현재처럼 단기 실적 중심으로 시장이 반응하면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기술력과 산업 파급력을 장기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투자문화 역시 함께 형성돼야 한다.
벤처투자 생태계는 결국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투자자는 기술기업의 미래를 믿고 자금을 공급하고, 벤처캐피털은 회수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시 투자에 나선다. 기술특례상장제도가 지속가능한 회수시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상장 기업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기술력 검증과 상장 이후 관리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할 시점이다.
중기이코노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