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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반도체 산업 파킨슨병 산재로 오랫동안 투병하던 이화정님 부고를 들었다. 그 산재 소송에서 질병 업무관련성에 대한 전문가 의견서를 발급했다. 메탄올 중독으로 눈이 멀고 뇌를 다쳐 투병하다 숨진 이진희님의 사망소식이 떠올랐다. 2016년 메탄올 실명 집단 발생으로 알려진 그 사건 생존자들은 지금도 빛이 꺼진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때 임시건강진단을 수행하면서 무방비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청년 노동자들 눈을 쳐다보기가 너무미안했다. 직업병은 유해인자 노출을 줄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데, 결국 무관심과 무책임이 낳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근 울산의 한 배터리 공장 노동자들의 특수건강진단 결과가 논란이 됐다. 납·안티몬·황산 등을 취급하는 공정에 근무한 노동자 115명 중 99명의 혈중 납 농도가 10㎍/dL을 넘었고, 22명은 25㎍/dL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진단을 앞두고 일부 노동자에게 중금속 중독 치료제 킬레이션 주사를 반복 투여해 혈중 납 수치를 낮추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이는 관리 소홀을 넘어 산업보건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다.
납은 신경계와 신장, 심혈관계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 중금속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무기납 화합물을 발암 가능성이 큰 물질로 분류한다. 낮은 농도에서도 신장 기능 저하·혈압 상승이 보고된다. 노동자 다수에서 10㎍/dL 이상이 확인된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납은 혈액에서는 수주 내 감소할 수 있지만, 뼈에는 수년 이상 축적된다. 일시적으로 수치를 낮춘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안티몬도 발암 가능 물질(Group 2B)로 분류되며, 황산 미스트는 직업적 노출 시 후두암과의 관련성이 충분한 물질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노동자 안전·건강을 지킬 책임을 명확히 부여한다. 특수건강진단은 작업환경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하려는 제도다. 노출 원인을 줄이지 않은 채 건강진단 결과 수치만 낮추려 했다면 이는 제도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미국 질병관리청은 일반적으로 혈중 납 농도 45㎍/dL 이상에서 킬레이션 치료를 권고한다.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 반복 투여가 이뤄졌다면 의학적 타당성도 따져봐야 한다. 치료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수치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임시건강진단을 통해 전면적인 건강영향 평가를 실시해 직업병 발생 여부를 철저하게 가려야 한다. 둘째, 동종 업종 전반에 대한 작업환경 실태조사를 통해 유사 사례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환기·집진 설비 개선 등 공학적 통제가 우선이다. 셋째,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관리자 선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까지 살펴야 한다.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생물학적 노출 기준을 국제 수준에 맞게 강화하고, 특수건강진단기관 독립성을 높여 이해 상충을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작업환경 측정과 건강진단 결과를 노동자에게 직접, 투명하게 공개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 사업장의 문제를 ‘예외적 사건’으로 치부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산업현장의 유해물질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점검하고, 예방 중심의 산업보건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직업병으로 서서히 죽어간 이들과 생존자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현장을 들여다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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