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통합론자들 범주와 차원이 다른 용병술과 합동성 구분 못해
육사 화랑대 산자락, 해사 옥포만 바다, 공사 활주로는 ‘제3의 교육 터’
자군 전술이란 확실한 밑천(직업 기술) 없는 상태서 합동성은 영(0)일 뿐
“전장 누빌 99% 야전 승부사 양성 사관학교 4년을, 1% 행정 지원 기술
가르치겠다고 통째로 허물겠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기만극”
“각 군 사관학교 간 원격 공동강의, 교차 학점 인정, 교환 생도 확대 등 유연한
소프트웨어 개혁만으로도 타 군에 대한 기초 이해는 충분히 달성 가능“
용병술과 합동술의 차이점 비교. 사관학교 통폐합론자들은 이 둘의 본질과 성장 단계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기초와 완성을 뒤섞는 자해적 우를 범하고 있다. 오상봉 예비역 대령 제공
용병술과 합동성은 그 범주와 차원이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전자가 거친 현장에서 적을 격멸하는 ‘장인의 독보적 직업 기술(전술 전문성)’이라면, 후자는 그 기술들이 상호 충돌 없이 최대의 위력을 내도록 연결해 주는 ‘지휘통제 인프라와 관제·조율의 기술’이다.
그러나 사관학교 통폐합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둘의 본질과 성장 단계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기초와 완성을 뒤섞는 자해적 우를 범하고 있다.
1.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와 80년 사관학교의 ‘터’가 평생의 전술 인격을 만든다
한 아이가 자라면서 뛰놀던 고향 동네의 전경과 골목길의 감각은 평생의 인격과 신체 감각을 형성한다. 군인 역시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울 물리적 전장 환경에 신체와 정신을 동화시키는 시간은 길고 일상적일수록 좋다.
사회에 나가 배우는 지식과 행정 기술은 시대에 따라 바뀌지만, 한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는 근본 바탕이 되는 인격, 품성, 무의식적 행동 동기는 어린 시절 제 동네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기질과 태도에서 나온다.
군인에게 있어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부하를 이끌게 만드는 힘 역시, 생도 시절 자군의 흙먼지와 바다, 하늘에서 체득한 고유의 야전성과 호국 혼이다.
이런 점에서 80년 간 피와 땀의 역사를 이어온 현재 사관학교의 ‘터’는 강의실 활자보다 백배 강력한 ‘제3의 교육’이다. 육사의 화랑대 산자락, 해사의 옥포만 바다, 공사의 활주로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 대간첩작전에서 산화한 선배 전사자들과 호국영령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역사의 맥락이다.
교육심리학의 정설인 상황학습이론에 따르면, 참된 전문성과 직관적 결단력은 강의실의 활자 암기가 아니라 실제 직무가 수행되는 구체적인 맥락과 물리적 환경 속에 깊이 노출돼 훈육될 때 비로소 체화된다.
해사 생도의 조함 감각과 해양 기질, 공사 생도의 중력가속도 적응과 영공 감각은 바다의 짠내를 매일 맡고 활주로의 제트 엔진 굉음을 4년 내내 호흡할 때 뼛속에 각인된다. 육사 생도 역시 험준한 산악의 가혹한 흙먼지를 마시며 참호를 파고 기동해봐야 산악 전술의 감이 선다.
80년 호국의 성지를 허물고, 물 한 방울 활주로 하나 없는 대전 내륙 분지 강의실로 생도들을 몰아넣겠다는 것은, 마른 모래사장에서 교본만 읽히며 수영 국가대표를 기르겠다는 교육학적 무지의 극치다.
오상봉 예비역 육군대령. 전 삼성반도체 예비역 여단장. 육군 신지식인. 오상봉 대령 제공
2. 다영역 세상이라도, 결국 나를 살리는 것은 ‘내 무기’ 하나다
통합론자들은 미래 전장이 지상·해상·공중·우주·사이버가 뒤엉킨 ‘다영역 작전(MDO)’ 환경이므로 생도 시절부터 한 교실에 모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참으로 현실을 모르는 문외한의 발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 역시 지상, 해상, 항공, 우주, 사이버망이 실시간으로 얽힌 거대한 다영역 사회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다영역 세상에서 한 인간이 당당히 자립하고 평생을 버텨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자신만의 확고한 ‘직업 기술’이다. 외과의사는 칼끝 하나로 사람을 살리고, 목수는 대패질 하나로 건물을 올린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한 네트워크로 돌아가도, 인간은 결국 자기가 손에 쥔 확실한 전문 기술 하나로 평생을 살아남는다.
군대 역시 완벽히 똑같다. 현대전이 아무리 다영역 네트워크 전장이라 해도, 최종적으로 적을 격멸하고 승리를 매듭짓는 물리적 실체는 보병의 소총과 전차포, 해군의 함포와 어뢰, 공군의 정밀유도폭탄이다. 4년간 자기 손에 쥔 주특기 무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장교가 상급 제대의 다영역 네트워크를 기웃거린들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군 전술이라는 확실한 밑천(직업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합동성을 읊어봐야 그 결과는 영(0)일 뿐이다.
전장을 꿰뚫는 용병술의 안목과 결단력, 능숙한 합동성은 20~30년 야전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무르익는 원숙한 통찰의 영역이다.
이를 스무 살 생도들을 한데 모아 4년 앉혀놓으면 뚝딱 만들어지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이다. 사관학교 4년은 그런 고수들의 통찰을 흉내 내는 곳이 아니다. 훗날 거장이 되기 위해 소총 한 자루, 조함 감각, 비행 감각이라는 처절한 ‘기본기’를 뼛속에 새기는 시간이다.
3. 99%의 ‘야전 승부사’와 여건을 조성하는 1%의 ‘합동 기술관’
그렇다면 국가 사회 인프라를 운용하고 조율하는 ‘합동전문가’의 진짜 역할은 무엇인가?
군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재는 전선에서 직접 전투 장비를 몰고 부하들과 함께 적진을 돌파해 승리를 쟁취하는 99%의 ‘야전 승부사’다. 그리고 합동작전전문가는 이 99%의 야전 승부사들이 가장 유리한 여건에서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상급 사령부에서 타 군 화력을 연결하고 공역과 시간표를 정밀하게 맞춰주는 1%의 ‘여건조성 지원관’에 불과하다. 이 1%는 결코 계급이 높거나 우월한 엘리트가 아니라, 야전 승부사들의 전투를 돕기 위해 사령부 지휘소에 배치된 극소수의 기능적 기술 참모일 뿐이다.
사회에서도 비행기를 몰아보지 않은 자가 관제 정책을 짤 수 없고, 화물차를 몰아보지 않은 자가 물류망을 조율할 수 없다. 현장에서 최소 10~15년 이상 비행기를 몰고 배를 탄 베테랑 중에서 선발된 인원이 상급 관제청으로 들어가듯, 군 역시 전방 지상전투, 함정, 조종석에서 10년 넘게 뼈를 깎아 자군 전술의 달인이 된 영관장교 시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합동참모대학에 입교해 타 군을 조율하는 법을 배운다.
초급장교는 최전방에서 소대를 이끌기에도 벅차며, 애초에 합동작전을 기획할 권한 자체가 없다. 훗날 1%의 지원 기술관으로 일할 인원조차 야전 감각이 뼛속까지 박힌 베테랑이어야 비로소 제 몫을 하는 법이다. 그런데 전장을 누빌 99%의 야전 승부사를 길러내야 할 사관학교 4년을, 고작 1%의 행정 지원 기술을 가르치겠다고 통째로 허물겠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기만극이다.
4. 사회 인프라(물류·관제·조율)로 풀어낸 합동성의 3대 본질
합동성은 교실 책상머리에서 책으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인프라 구축, 작전지휘체계, 숙달 훈련’의 영역이다. 이는 국가 사회 인프라를 운용하는 원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 인프라 구축과 물류망: 물류 트럭 기사가 물건을 전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직접 고속도로를 깔거나 통신 케이블을 묻을 필요는 없다. 국가가 표준화된 8차선 고속도로와 5G 통신망이라는 ‘인프라’를 깔아두면 그 위를 달리면 된다.
군의 합동성 역시 상급제대가 구축해 놓은 단단한 C4I 지휘통제망, 표준 데이터링크, 규격화된 주파수라는 ‘기술적 인프라’ 위에서 물리적 전투력이 물류처럼 막힘없이 흐르는 것이다.
▲ 작전지휘체계와 관제 시스템: 전국의 수만 대 차량과 항공기가 엉키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은 운전자들이 동창이어서가 아니다. 관제센터의 신호체계와 통제에 100% 복종하기 때문이다.
군의 합동성 역시 합참의장의 단일한 군령권 아래, 상급 지휘소에서 떨어지는 엄격한 명령과 복종이라는 ‘작전지휘체계(관제)’로 움직인다. 신호체계가 고장 나면 동창생끼리 운전대를 잡아도 대형 참사가 날 뿐이다.
▲ 숙달 훈련과 현장 조율: 복잡한 인터체인지를 뚫고 전국 물류를 적재적소에 배차·조율하는 능력은 교실에서 교통 법규 책을 암기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현장에서 실제 운전대를 잡고 도로 연수를 거치며 몸으로 익히는 ‘숙달의 영역’이다.
군의 합동성도 사관학교 강의실의 교양이 아니다. 자군 전술을 체화한 영관장교들이 상급 사령부의 지휘통제망 위에서 초 단위로 폭격을 유도하고 함포 사격을 조율하며 피땀 흘려 몸에 새기는 ‘실전 기능 숙달’의 영역이다.
5. 자군 전문성이 강해야 합동성 시너지가 폭발한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뛰어난 직업인이 많을수록 국가 물류와 경제가 번영하듯, 군 역시 자군 전문성이 독보적인 장교가 많을수록 합동성의 시너지는 극대화된다.
종합병원을 보라. 외과의사, 내과의사, 마취과 의사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환자를 살리는 ‘협진(합동성)’ 시너지가 터져 나온다.
고속도로(합동 인프라)가 아무리 8차선으로 넓고 관제 시스템이 정밀해도, 그 위를 달리는 차량(각 군 전투력) 엔진이 부실하면 국가 물류는 마비된다.
보병이 산악을 틀어쥐고, 해군이 파도를 뚫으며, 공군이 폭격창을 정확히 열 줄 알아야, 비로소 관제소(합참)의 지휘 아래 웅장한 오케스트라 화음이 완성되는 법이다.
6. 맺음말: 사관학교 통합은 완벽히 불필요하다
결국 사관학교 통합은 군사적으로도, 교육학적으로도 전혀 추진할 이유가 없는 불필요한 사업이다.
15년 뒤 각 분야의 베테랑으로 만나 합동참모대라는 종합병원에서 협진과 관제를 배우면 될 장교들을 두고, 스무 살 시절의 고유한 야전성 형성 터전마저 거세해 버리겠다는 사관학교 통합은 지극히 엉뚱한 행정 폭력이다.
성인이 돼 사회에서 협력해야 하니 어릴 때부터 전국의 아이들을 한 동네에 몰아넣고 키우자는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얼마 전 국방부 장관 청문회에서 후보자는 미래 전장이 중첩되고 우주·사이버까지 연결되니 다양성을 갖춘 인재를 위해 ‘통합교육의 가치’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정작 그 거창한 통합 캠퍼스에서 스무 살 생도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지는 단 한 줄의 알맹이도 제시하지 못했다. 기껏 내놓을 교육 내용이라는 것도 타 군 교리와 무기체계에 대한 기초적 이해 수준일 텐데, 이는 현 체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각 군 사관학교 간의 원격 공동 강의, 교차 학점 인정, 교환 생도 확대 같은 유연한 소프트웨어 개혁만으로도 타 군에 대한 기초 이해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자기 손에 쥔 무기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반쪽짜리 기능공을 양산하겠다는 국방부의 3조 원짜리 통합 계획은, 국군의 뿌리를 뽑고 장교단의 야전성을 말살하는 희대의 교육 파괴이자 위험천만한 안보 자해극이다.
오상봉 예비역 육군대령. 前 삼성반도체 예비군 여단장·육군 신지식인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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