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라이센스뉴스 = 김성수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역사를 전쟁의 기록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절반의 해석에 불과하다. 특히, 삼국 시대를 단순한 충돌과 정복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그 이면에서 작동했던 복잡한 질서를 놓치게 만든다.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가 공존하던 시기는 단순한 전쟁의 시대가 아니라, 경쟁과 협력, 견제와 균형이 동시에 작동하던 하나의 구조적 체제였다. 이는 오늘날 기업들이 속한 비즈니스 생태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삼국은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하면서도 완전히 고립시키지는 않았다.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외교적 교섭은 이어졌고, 문화와 기술의 흐름은 단절되지 않았다. 이처럼 삼국 간 관계는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구조였다. 오히려, 이들은 경쟁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키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를 만들어냈다.
각 국가가 선택한 전략 또한 서로 달랐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과 방어 체계를 기반으로 한 하드파워(Hard Power) 중심의 전략을 구사했다. 광대한 영토와 기동력 있는 군사 조직은 외부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동시에, 주변 국가에 강한 압박을 가하는 수단이 되었다. 반면, 백제는 문화와 외교, 해상 교류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파워(Soft Power) 전략을 펼쳤다.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술과 문화를 교환하며 영향력을 확장했다. 신라는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초기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외교와 동맹을 적극 활용했다. 특히, 당나라와의 협력을 통해 군사적 균형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삼국은 동일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구축했다. 중요한 것은 이 전략들이 단순히 개별적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체 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전략 변화는 다른 국가의 대응을 유도했고, 이러한 상호작용이 지속되면서 삼국 간 균형이 형성되었다.
이 구조는 오늘날 비즈니스 생태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현대 기업들은 단순히 독립적으로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수행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 IT 산업을 보면, 플랫폼 기업들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특정 영역에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운영체제, 앱 생태계, 하드웨어 공급망 등은 서로 얽혀 있으며, 완전한 단절은 오히려 시장 전체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 산업 역시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기업들은 기술 경쟁에서 치열하게 맞서면서도, 동시에 공급망을 공유하고 산업 생태계를 함께 유지한다. 특정 기업이 독점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히려 다양한 기업들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전체 시장을 확장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시장 점유율을 두고 경쟁한다. 그러나, 충전 인프라나 표준화 문제에서는 협력이 불가피하다. 경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 전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비즈니스 생태계는 단순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라,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동적 구조라는 점이다. 기업들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함께 시장을 키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삼국 시대 역시 동일한 원리가 작동했다. 세 국가는 서로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랜 기간 공존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일정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국가가 지나치게 강해질 경우, 다른 국가들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연합하거나 전략을 수정했다. 이러한 균형 구조는 삼국 체제를 오랜 기간 유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 점은 기업 전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장에서 경쟁자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유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다양성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오히려, 적절한 경쟁이 유지되는 환경이 더 큰 성장을 만들어낸다. 경쟁자는 위협이면서 동시에 시장을 함께 확장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또한, 삼국의 사례는 ‘포지셔닝(Positioning)’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다른 강점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구축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 국가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기업에게도 중요한 전략적 시사점이다. 모든 기업이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려 한다면, 결국 가격 경쟁이나 소모적인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각자의 강점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전략을 취할 경우, 경쟁 속에서도 공존이 가능해진다.
결국, 삼국의 역사가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완전한 적도 없고, 완전한 동지도 없다. 상황에 따라 경쟁과 협력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다.
비즈니스 생태계는 정적인 구조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속에서 기업들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기존 관계를 재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단순히 강한 기업이 아니라,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균형을 읽고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이다.
삼국 시대는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역사적 사례다. 세 국가는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질서를 형성했고,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과 성장을 이어갔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제 판단의 기준은 분명해진다. 당신의 기업은 경쟁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경쟁 속에서 협력의 가능성까지 읽고 있는가? 당신의 전략은 상대를 배제하는 데 집중되어 있는가? 아니면, 시장 전체의 구조를 활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이 차이가 결국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김 성 수
現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외부 필진 칼럼(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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