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재 사줘 CFO.
매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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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코딩을 잘 하면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개발자를 양성하는 부트캠프를 운영했고 대학교에서도 컴퓨터 공학과가 유래 없는 영광을 누렸다. 5년 전만 해도 그랬다. 당시 신입생들은 지금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테다. 과연 지금도 코딩 실력 하나만 보고 유수 기업에서 ‘모셔’갈지 생각해 본다. 결코 아니다.
열심히 다니던 컨설팅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와 일맥상통했던 것 같다. 언젠가 토요일 밤에 주니어 직원 없이 혼자 제안서를 한 번에 세 개를 쓰고 있었다. ‘오늘도 밤을 새겠구나’ 생각하던 차였다. 당시 바이럴되고 있던 인공지능(AI) 도구를 속는셈치고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필수 서비스처럼 이야기되고 있는 각종 AI 툴들이 지금처럼 성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는 ‘밑에 팀원들 없어도 혼자 쓸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도 느꼈다. 내 위의 누군가도 나를 그렇게 취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줘’라는 스타트업에 CFO로 합류했다. AI를 활용해 해외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경험을 한국에서 사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회사다. 전세계 직구 시장은 1조 달러 수준으로 지금도 매해 20%씩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 마니아의 영역처럼 보인다. 막상 주변을 살펴보면 해외에서 직접 물건을 사는 이는 많지 않다.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사이트검색-상품검색-회원가입-배송에 이르는 과정을 외국어로 진행해야 한다. 배송 대행을 맡기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 배송비와 관세가 얼마나 붙을지는 물건을 보내 봐야 알게 된다. 내가 생각한 금액의 몇 배를 내게되는 경우도 있다.
사줘는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고 있다. 일본 서비스를 예로 들자면, 자체적으로 라쿠텐, 메루카리 등 주요 플랫폼 입점 상품에 대한 검색을 지원하고 다른 쇼핑몰 상품도 페이지 URL을 입력하면 구매할 수 있다. 사이트에서 결제만 하면 배송은 사줘 측이 현지에서 물건을 취합해 배송을 보낸다. 외에도 AI가 중고 물품을 구매할 때 판매자와 흥정을 해주거나 한정판 제품을 자동으로 구매해주는 기능을 개발하는 등 사용자 편의성을 지속 개선해나가고 있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서비스 또한 결국 빅테크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길마로 대표가 생각하는 청사진은 여타 앱서비스 기업과 다르다. 소프트웨어 기업에게는 없는 오프라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각종 AI 에이전트 서비스에 대체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사용자가 주문한 물건들을 검수하고 합포장해 보내는 일은 소프트웨어가 할 수 없다. 또한 사줘는 오히려 빅테크 기업들이 에이전틱 커머스를 일반화하는 세상을 대비해 전반적인 서비스를 AI 친화적인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다.
2023년에 일본에서의 한국 직구 서비스로 시작한 사줘는 작년에는 한국에서의 일본 직구 서비스도 론칭, 매달 30% 수준의 성장을 보이며 올해는 글로벌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는 길마로 대표의 치열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2개월 남짓 지켜본 우리 대표는 고민의 깊이가 깊은 사람이었다.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개발, 마케팅, 심지어 금융에 대한 지식까지도 흡수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15년 간 다양한 글로벌 기업에서 많은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한 내 입장에서도 그 식견에 놀랄 때가 많았다. 세상엔 역시 ‘고수’들이 많다는 점을 새삼 깨닫고 겸손해진다.
AI 시대의 도래를 목도하며 그동안 커리어 여정에서 느꼈던 막연한 불안의 실체를 비로소 마주한다. 그것은 바로 ‘대체 가능성(Replaceability)’이라는 화두다. AI의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이 문제를 냉혹하게 테이블 위로 끌어올렸다. 성역으로 여겨졌던 전문직의 영역조차 AI의 효율성에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고 있으며 컨설팅 펌의 역할도 데이터 플랫폼이 대신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할까. 그 답은 ‘고민하고 사유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정답을 출력하는 기계와 달리, 질문을 던지고 본질을 파고드는 인간만의 고유한 사유 프로세스다. 어쩌면 이 집요한 고민의 과정 자체가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생존 교본일지도 모른다.
AI는 질문한 내용에 답변을 해줄 뿐 우리 주변의 문제까지 알진 못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일은 당사자의 몫이다. 사업이나 일을 할 때 누군가는 적당한 해결책 정도로 만족하지만 누군가는 끈질기게 문제를 물고 늘어져 끝내 완전무결에 가까운 방법을 찾는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AI에 대체되지 않고 오히려 그 위에서 이를 도구로써 부린다.
스타트업은 그 특성상 한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업무량은 많을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업무 방식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직원을 채용해야 되겠지만, 우리는 갖은 AI 도구를 활용해 일인당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이제는 ‘뉴노멀’이 된 코딩AI는 물론이고, 비개발자들까지 어떻게 하면 루틴성 업무를 AI를 연동해 효율화할지 논의하는 걸 보면서 내가 이 팀의 일원이 된 것이 행운이라 생각한다. 관성에 젖어 ‘하던 대로’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요즘은 매일 ‘어떻게 더 영리하게 일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제 기업도 사람도 집요한 수준으로 고민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사줘 일동과 더불어 치열하게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표한 바를 이뤄내기를 바란다.
정희재 사줘 C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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