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금욕주의자야? Z세대가 '도파민'을 버린 이유

지난해 청년 1,000명 중 71.7%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고물가·경기침체에 이들의 관심사는 주식·적금·앱테크·소액 투자로 옮겨갔다. 오픈서베이의 최신 Z세대 트렌드 리포트에서도 응답자의 71.6%가 절약...

금욕주의자야? Z세대가 '도파민'을 버린 이유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빠르게 주류 소비가 줄고 있는 한국. 5년 새 전국 주점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현 20대인 Z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술도, 유흥도, 사치도 하지 않는다. 이들이 ‘도파민’ 중심 문화에 지갑을 닫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돈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추적해 봤다.

“술보다는 제로콜라죠. 무알콜 맥주라는 선택지도 있고요.”

금요일 저녁, 한강 여의도공원 일대는 러닝복을 풀세트로 차려입은 젊은 남녀로 붐빈다. 종로 영어학원 일대나 동네 독서실, 헬스장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렇게 ‘갓생’을 사는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다. 같은 시각, 이태원·강남 클럽가와 신촌·건대 앞 술집 골목은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렵지 않다. 중간고사 시즌도, 방학도 아닌데도 그렇다.

25세 직장인 A씨는 “예전엔 술이 모임의 목적 자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만나더라도 밥집이나 카페를 더 가는 느낌”이라며, “원래 술을 안 마시면 분위기를 망치는 취급을 받았는데, 이젠 각자 컨디션에 따라 알아서 조절하는 게 당연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학가에서 ‘폭탄주 레시피’가 공공연하게 전파됐을 정도로 ‘폭음’이 자연스러웠는데, 이젠 지인 모임이나 학과 엠티,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는 풍경이 당연해졌다. 절제하며 가볍게 음주를 즐기는 이른바 ‘소버 라이프(Sober Life)’가 보통이 된 것이다.

실제로 국민 1인당 주류 소비량은 7.7ℓ로 55년 만에 최저를 찍었는데(2024년), 이를 견인한 건 ‘Z세대’다. 이들은 이미 2년 전부터 전 세대 중 월 술자리 빈도가 가장 낮았다. 20대의 하루 평균 주류 섭취량은 64.8g으로 40대(161.8g)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국민건강통계), 지난 3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누적 외식 술자리 횟수 2,812만 건에서 Z세대의 비중은 11.9%로 가장 낮았다.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가 술은 가장 덜 마시는 것이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Z세대의 연간 주류 소비 지출은 약 31억 달러로 베이비부머 세대(250억 달러)의 7분의 1 수준이었고, 맥주가 곧 국가 정체성이었던 독일은 지난해 32년 만의 판매량 최저치를 찍었다. 일본도 20대의 44%가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가 상당히 ‘Z세대’스럽다. “그냥 맛이 없어서”, “특별한 이유 없음”, “친구들이 안 마셔서”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호캉스·오마카세는 어디로?

여유 시간엔 자기개발, 쇼핑할 땐 ‘올다무’ 간다

술을 안 마시니 술집이 비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 2월 기준 전국 간이·호프주점 매장 수는 2만8443개로 전년 동기 대비 9.7% 감소했는데, 이는 코로나19가 가장 극심했던 2020~2021년 이후 가장 높은 감소율이다. 팬데믹에도 4만 개를 넘겼던 주점이 5년 만에 3분의 1 가까이 사라진 셈이다. 반면 무알콜·논알콜 맥주 매출은 2024년 3년 만에 약 70%나 오르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그러나 Z세대가 하지 않는 건 음주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연애도, 쇼핑도 하지 않는다. 돈이 나가는 물꼬를 아예 틀어버린 것이다. 지난해 청년 1,000명 중 71.7%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고물가·경기침체에 이들의 관심사는 주식·적금·앱테크·소액 투자로 옮겨갔다. 오픈서베이의 최신 Z세대 트렌드 리포트에서도 응답자의 71.6%가 절약·저축에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 세대는 과연 어디에서 지갑을 열까. 답은 ‘올다무’다. 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의 앞 글자를 딴 이 세 브랜드의 2025년 합산 매출은 11조8,581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년 만에 42.5%나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국내 백화점 3사 합산 성장률이 겨우 1.7%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보면 꽤나 상징적이다. 글로벌한 절약 트렌드에 힘입어 미국에서는 모든 품목이 5달러라는 ‘파이브 빌로우’가, 일본에서는 ‘다이소산교’와 ‘무지’가, 유럽에서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프라이마크’와 ‘플라잉 타이거’가 Z세대의 선택을 받았다. 합리적인 가격에 검증된 품질, 높은 접근성과 가장 중요한 빠른 트렌드 반영도에 Z세대는 굳이 발품을 팔아 더 비싼 선택지를 찾을 이유를 잃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틱톡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프루걸 시크(Frugal Chic)’는 절약(Frugal)과 세련됨(Chic)을 합친 신조어로, 검소함을 하나의 미학으로 실천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갖고 있는 물건을 오래 쓰고, 쇼핑 대신 독서·글쓰기·산책처럼 돈을 쓰지 않는 취미를 갖는 것. 절약이 더는 ‘짠내’ 나는 선택이 아닌, 근사한 태도가 된 것이다.

안 즐기는 게 아니라 ‘다르게’ 즐기는 것

Z세대의 소비 문법

이들이 유흥과 쇼핑, 즉 ‘도파민’을 의도적으로 멀리한다고 해서 금욕주의자가 된 건 아니다. 이들이 택한 건 ‘가치 소비’라는 정교한 삶의 균형이다. 다이소에서 5000원짜리 화장품을 사면서도 좋아하는 아이돌의 굿즈는 사 모으고, 논알코올 캔맥주로 혼자 저녁을 보내더라도 뮤지컬이나 여행 같은 취미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특별한 날에는 여전히 오마카세도, 호캉스도 즐긴다. 전반적으로는 절약하되,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의미 있는 것에는 과감해지는 것이다.

명품을 살 때도 ‘리셀(재판매)’을 염두에 둔 채 상품의 미래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세대인 만큼, Z세대는 충동구매를 자제하고, 지출을 통제하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무를 준비하는 ‘똑똑한’ 세대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이 진화를 ‘욜로 문화의 자정 작용’으로 봤다. 그는 “한껏 자랑하고 소비하고 나면 남는 건 빚과 채무뿐이던 시기가 반성의 계기가 됐다”며 “삼포·오포세대라는 말이 생겨나는 사회에서 자란 Z세대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찍 생겼고, 당장 달콤한 소비더라도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면 멀리할 줄 알게 됐다”고 해석했다. 즉, 자기를 ‘망치는 소비’를 멀리하고, 자기를 ‘쌓는 경험’에 돈을 쓰는 것이다.

저속노화 식단이나 마음챙김 같은 건강한 트렌드가 젊은 층을 주축으로 롱런하는 것처럼, 당장의 쾌감보다 장기적인 가치나 건강·멘탈 관리가 우선이 된 이들의 소비 패턴은 이제 이 사회에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Z세대의 선택에 따라 국내 산업도 크게 지각 변동을 할 것”이라며 “소비의 목적지가 달라진 만큼 그 달라진 목적지를 먼저 읽은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