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항 땅을 시민에게, 그 땅에 팹과 숲을
이철갑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광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2026년 10월 11일(일) 22:00
광주 군공항 부지에 반도체 팹 4기를 건설하여 전남광주의 미래를 바꿀 첨단 반도체 산업단지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지역의 오랜 숙원이던 대규모 일자리가 눈앞에 왔다. 적극 환영한다.
다만 직업환경의학 의사로서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공장이 들어선 뒤에는 이전의 환경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을 유치하는 지금이야말로 시민의 건강과 자연을 지킬 조건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시민의 건강을 지킬 조건은 착공 전에만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 팹은 물과 전기와 화학물질을 한곳에 모으는 시설이다. 팹 4기에는 하루 65만 톤의 물이 드는데, 이는 광주시 수돗물 공급량의 1.3배이고, 가뭄이 들면 팹과 시민이 같은 댐 물을 나눠 써야 한다. 필요 전력 6.3GW는 영광 한빛원전 6기의 설비용량(5.9GW)보다 크고, 광주시 전체가 쓰는 전기의 최대 6배에 이른다. 쓴 전기는 결국 열이 된다. 필자가 속한 연구진의 추정으로는 공장 반경 1km의 여름밤 기온이 최대 1.8℃ 올라 열대야가 지금의 두 배 가까이 늘 수 있다. 광주시 평균으로는 0.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영향’이 공장 옆 동네에는 ‘길어진 여름밤’이 된다. 여기에 잘 분해되지 않는 과불화화합물(PFAS)과 독성가스 사고의 위험이 더해진다. 부지 반경 3km 안에는 지금도 5만 7000명이 살고, 클러스터가 완성되면 10만 명 안팎이 공장 가까이 모여 살게 된다.
세계의 경험은 분명하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40년째 지하수를 정화하고 있다. 일본 구마모토는 TSMC 공장이 가동된 뒤에야 하천의 PFAS를 재기 시작했고, 가동 전 값이 없어 공장의 몫을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기준이 없으면 초과도 없고, 기준선이 없으면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착공 전 기준선과 감시에 드는 비용은 수십 년의 지하수 정화, 원인을 가리지 못하는 소송, 건강 피해 보상에 비하면 아주 작다.
그런데 우리 제도는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 환경영향평가의 건강 항목은 사업자가 작성하는 예측일 뿐, 주민의 실제 건강과 환경 배경농도를 독립적으로 재는 절차는 없다. 공장 폐열과 열섬에는 평가 기준조차 없다. 그런데도 정책은 인허가 기간을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광주공항 부지를 전남광주특별시에 이양하라. 이 땅은 수십 년 동안 전투기 소음을 견뎌 온 시민들이 지켜 낸 땅이다. 공항이 떠난 뒤 남는 약 8.46㎢의 국유지를 특정 기업에 매각하면 그 땅은 공공이 개입하기 어려운 사유지가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특별시에 4년간 최대 20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지원의 한 축을 현금이 아닌 공항 땅으로 해 달라는 것이다. 특별시가 땅을 소유하고 기업에는 50~100년 장기 임대하면, 기업은 초기 토지 매입비를 덜고 시민은 소유권을 지킨다. 무엇보다 폐수 처리와 물 재이용률, 냉각탑 배치, 계약 종료 때의 토양·지하수 원상회복 같은 환경 조건을 임대 계약에 담아 지키게 할 수단이 남는다. 임대료의 일부는 환경보건기금으로 적립해 주민 건강 감시와 피해 지원에 쓰자. 땅을 팔면 관리 수단을 잃고, 빌려주면 조건을 지킬 수단이 남는다.
둘째, 그 땅에 백만 평의 숲을 만들자. 약 3.3㎢, 부지의 40%다. 숲은 반도체의 반대편이 아니라 반도체를 받아들이는 조건이다. 공장과 주거지 사이의 건강 완충지대가 되어 대기오염과 소음, 사고의 영향을 거리로 줄인다. 서쪽 바람길을 열어 폐열과 냉각탑 수증기가 동네에 머물지 않게 한다. 빗물을 머금어 지하수를 채운다. 구마모토가 공장이 퍼 올린 지하수를 다시 땅에 채우는 함양 대책을 함께 내놓은 것도 같은 이유다. 숲은 또 바로 옆 장록습지와 함께 황룡강과 영산강이 만나는 저지대의 홍수를 늦춘다. 숲 안에 상설 측정소를 두면 시민이 직접 감시하는 장소도 된다.
두 제안은 따로가 아니다. 땅이 공공의 것이어야 숲의 면적을 지킬 수 있고, 숲이 있어야 공장 옆의 삶을 지킬 수 있다. 여기에 착공 전 환경 기준선 조사와 주민 건강 추적 체계가 더해져야 한다. 청년의 일자리와 시민의 건강, 다음 세대가 누릴 숲을 함께 남길 때 통합은 삶을 바꾸는 정책이 된다. 반도체와 숲이 공존하는 광주, 그 미래를 착공 전에 결정하자.
우리는 반도체 공장을 환영한다. 다만 환경과 건강의 조건을 함께 갖추며 가자는 것이다. 그 조건은 공사가 시작되기 전, 바로 지금만 확보할 수 있다.
/이철갑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