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산’ 이란의
지식 인프라가 사라진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인해 이란 내 과학 인프라가 해체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의 MIT에 비견되는 샤리프공과대를 비롯해 100년 역사의 파스퇴르 연구소, 샤히드 베헤슈티대 레이저·플라즈마 연구소, 이란 과학기술대(IUST) 등 30여 개 대학과 연구 기관이 피격됐다. 55개 도서관과 56곳의 문화유산과 유적지도 피해를 입었다.
<네이처>는 지난 4일 「연구실과 도서관, 자유를 잃은 이란 과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참상을 상세히 전했다. 또한 지난달 7일 아랍권 대표 방송사인 <알 자지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문화와 교육에 어떻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와 「미국·이스라엘 공격, 이란의 발전과 AI 학습을 겨냥했다고 최고 대학 관계자가 주장」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번 전쟁은 대학과 연구소, 도서관까지 겨냥하고 있다.
특히 샤리프공과대의 피해는 상징적이다. 지난달 6일 공습으로 인공지능 센터를 포함한 여러 건물이 파괴됐고, 대학 웹사이트와 온라인 서비스도 중단됐다. 마수드 타즈리시 총장은 “적들이 우리가 AI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이 대학은 지난 2년간 페르시아어 AI 모델을 개발해 수백 개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에브라힘 아자데간 샤리프공과대 교수(철학)는 1천 권이 넘는 장서와 평생의 연구 노트, 학생 논문, 미완성 원고가 한순간에 불탔다고 전했다. 그는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탄했다. 개인의 상실을 넘어, 이란의 학문 공동체의 위기다.
현장의 연구자들은 공습만이 아니라 정부의 인터넷 차단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스파한공과대의 입자물리학자인 아비데 자파리 교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대형강입자충돌기(LHC)의 CMS(Compact Muon Solenoid: 강한 자기장 속에서 뮤온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입자 검출기) 연구를 담당하는 부팀장이다. 하지만 전국적인 인터넷 차단으로 CERN 데이터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테헤란 국립과학정책연구소의 하메드 비카란-베헤슈트 교수도 해외 공동 연구자와 연락이 끊기고 국제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의 심사 진행 상황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전했다.
독일 뮌스터대의 신경과학자 알리 고르지 교수는 테헤란의 셰파 신경과학 연구센터가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1일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는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다”라며 “하지만 대학 공격이 일상이 된다면, 앞으로 그 어떤 어리석은 전쟁에서도 그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남성이 이란 국기를 들고 지난달 7일,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분쟁으로 피격된 샤리프 공과대학교 건물 잔해 사이를 걷고 있다. 사진=테헤란 WANA 연합뉴스
1천400여 명 학자 서명…민간 지식 기반 보호 촉구
이란 내 시위 탄압 여파까지 겹치며 학계 위기 증폭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3월 28일 이란 과학기술대학교(IUST)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표적 공습을 받았다. 이번 공습으로 인한 피해 규모와 사상자 수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 대학의 한 연구 센터가 폐허로 변했고, 다른 부서들도 피해를 입었다. 이 시설은 국산 위성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하루 뒤, 이란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 위치한 한 대학은 전쟁 발발 이후 두 번째로 미·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교직원 4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4월 4일, 테헤란 북부에 위치한 샤히드 베헤슈티대의 레이저 및 플라즈마 연구소가 미·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을 받았다. 이 대학은 성명을 통해 “이번 적대 행위는 학자들의 안전과 국가의 과학적 환경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이성, 연구, 사상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며, 국제 학계에 유사한 공습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것을 촉구했다.
호세인 시마이 사라프 이란 과학·연구·기술부 장관은 이란 과학자들이 수십 년간 표적이 되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5년 6월 12일 전쟁 당시 샤히드 베헤슈티대 교수 여러 명이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당했음을 지적했다.
벙커 버스터 사용해 샤리프공과대 폭격
이란의 민간 인프라에 대한 폭격으로 대학과 연구시설이 피해를 입는 가운데, 국제 사회의 대응과 전쟁 이후의 파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이란 제1부통령은 미국이 샤리프공과대를 공격하기 위해 ‘벙커 버스터’ 폭탄을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백악관 대변인과 이스라엘 군 대변인은 각각 <네이처>에 민간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왜 테헤란의 샤리프공과대와 100여 년 전 의약품과 백신 연구를 위해 설립된 이란 파스퇴르 연구소 시설들이 폭격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러한 공격으로 인해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는 미국과 이스라엘과 연계된 대학들을 ‘정당한 공격 대상’으로 선언했다. 반면, 모하마드 호세인 오미드 테헤란대 총장은 4월 첫째 주에 15개 주요 대학 총장들을 대표해 IRGC에 서한을 보냈다. 다른 대학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주길 촉구한 것이다. 테헤란이 고등교육 시설을 ‘인류와 세계 유산’으로서 어디서든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후 그는 현지 강경파 언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입장을 바꿔, 이에 상응하는 보복 공격을 요구했다.
현재 1천400명 이상의 국제 학자들이 유엔 관계자와 분쟁 당사국 정부에 보낸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민간 학술·보건·연구 인프라에 대한 폭격을 규탄한 것이다. 성명서는 “우리 학자, 연구자, 학생, 그리고 전 세계 학술 공동체 구성원들은,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무단 침략 과정에서 실험실, 대학교, 병원, 기타 과학 기관들을 파괴한 최소 21건의 공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학은 군사 표적이 아니다. 대학과 연구소는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 측은 민간 시설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실제 피해 시설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서명에 참여한 대학과 연구소 로고들이다. 1천400명 넘는 국제 학자들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내 대학·병원·연구시설 공격을 규탄하며 “과학은 군사 표적이 아니다”라는 공개서한을 유엔과 각국 정부에 전달했다.
이란 내 사회적 긴장도 과학계 불안 키워
그런데 전쟁 이전부터 이어진 이란 내 사회적 긴장도 과학계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최근 전쟁이 발생하기 전, 많은 학생과 학자들이 더 큰 민주주의, 인권,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란 정부는 지난 1월 시위를 강경 진압했으며, 사망자 중에는 많은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는 대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학자들은 전쟁이 끝나면 정부가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비판 세력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과학자 개인의 삶 역시 전쟁의 또 다른 전선이 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수감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들은 정치적 이유로 억류되었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반정부 시위 또는 간첩 혐의와 관련된 형량을 선고받아 이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이들 중 다수는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들이 인질이나 정치범으로 억류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는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 소속의 스웨덴-이란계 재난의학 연구자 아흐마드레자 잘랄리, 그리고 샤리프공과대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자 2018년 베이징 국제천문·천체물리학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인 알리 유네시가 포함되어 있다. 잘랄리는 2017년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유네시는 2022년 전복 활동 혐의로 16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역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지난해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12일간에 걸친 1차 공격으로 피격된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 잘랄리의 아내 비다 메라니아는 “우리는 세 달 동안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처형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잘랄리는 현재 에빈으로 돌아왔지만, 메라니아는 대부분의 교도소 직원들이 다시 표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 떠났다고 전한다. 교도소 내 매점도 문을 닫았다.
유네시의 형 레자 유네시는 이렇게 말한다. “상황은 지금 훨씬 더 나빠졌다. 식량, 생활 환경, 의료 면에서 모두 그렇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탈출할 가능성도 없이, 사방에서 폭탄과 비행기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해외에 있는 연구자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모교가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며 얼마나 슬픈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샤리프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아미르타하 타에비의 말이다. 그는 현재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의 리하이대 생명공학자이다. 타에비는 IT 건물이 피격되면서 교직원과 학생들의 이메일 접속부터 데이터 저장소,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까지 모든 것이 마비되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그는 샤리프공과대가 “매우 높은 수준의 학문적 환경”을 갖춘 곳이라며, “연구실이나 건물에서 밤을 새워 작업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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