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과학어울림마당' 성황리에 마무리
대전 한빛탑~한밭수목원 '과학자의 길' 조성
故 최형섭·한필순 등 과학영웅 11인 재조명
시민들 선구자들 사명감 되새기며, 과학도시 뿌리 확인
‘과학자의 길’을 걷던 참가자가 국가 표준의 기틀을 세운 김재관 박사의 배너 앞에 멈춰 서서 내용을 살피고 있다.
"해외에서의 안정적인 커리어를 뒤로 하고 한국로 돌오셨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애국심이 우리 세대랑은 다르게 엄청 투철하신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최상원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석사과정)
지난 18일 오전, 대전 한빛탑광장 앞이 북적였다.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접수대 앞에 줄을 섰고, 철쭉과 진달래가 만개한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2026 시민과 과학기술인이 함께하는 과학어울림마당'이 열린 이날, 약 400여 명의 시민이 한빛탑에서 한밭수목원 원형광장까지 이어지는 '과학자의 길'을 함께 걸었다.
이번 과학어울림마당은 '2026 대한민국과학축제'와 연계해 '생각이 자라는 산책: 과학자를 만나는 길'을 주제로 기획됐다. 과학이 지식이 아닌 일상의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걷기라는 친숙한 활동 속에 대한민국 과학기술 선구자 11인의 이야기를 녹여낸 참여형 행사다.
시민들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천천히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나갔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역사가 곧 한국 과학의 역사임을 실감하며 대전이 왜 '과학도시'로 불리는지를 몸소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축사에서 "대전에는 27개 출연연구소와 박사급 과학자 2만 명, 대덕특구 종사자 9만 명이 있다"며 "다른 도시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과학 체험이 대전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대한 개척자들의 도시에서 아이들이 큰 꿈을 키워 그 정신을 이어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은 "과학어울림마당이야말로 과학이 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라며 "시의회는 시민들이 과학도시 대전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정우성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걷기라는 친숙한 활동을 통해서 과학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점이 너무나 인상적"이라며 "오늘 이 행사를 통해 대전이 대한민국 1위를 넘어서며 세계에 우뚝 서는 과학도시 대전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화창한 봄날, 엑스포 다리를 건너 ‘과학자의 길’로 향하는 400여 명의 참가자가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개막식 이후 시민들은 한밭수목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인 원형광장 주변에 다다르자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거인들을 소개하는 배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배너에 소개된 인물은 △최형섭 장관 △김재관 박사 △한필순 박사 △최순달 박사 △이경서 박사 △이태규 박사 △전길남 박사 △심상철 박사 △김충기 박사 △최기철·최남석 박사 등 11인이다.
텍스트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 내려가던 시민들은 우리가 누리는 기술적 풍요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발견하며 저마다의 감상을 쏟아냈다. 최상원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석사과정은 "같은 연구자로서 이분들처럼 애국심과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리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학생은 "과학자 배너 내용이 정말 흥미롭고 저에게 자극이 됐다"고 했다.
대전 법동에서 온 임창수 씨는 은퇴 후 다시 과학의 매력에 빠진 케이스였다. 화학을 전공하고 행정직으로 평생을 보낸 그는 정년퇴직 2년 전부터 과학에 대한 그리움을 느껴 다시 책을 집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물리, 화학, 생물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돌아가는 원리를 깨달을 때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며 "오늘 아침에도 나오기 전에 과학 공부를 하고 나왔는데, 현장에서 이렇게 훌륭한 과학자들의 업적을 정리해 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주식 투자를 하다가 원자력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한 주부는 "평소 카이스트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분들이 어떤 고생을 하며 기술을 지켜냈는지는 잘 몰랐다"며 "오늘 한필순 박사님이나 최남석 박사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나라 기술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됐고, 집에 돌아가면 관련 책들을 꼭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걷기대회는 대덕넷(HelloDD)이 주최·주관하고, 대전광역시가후원했다.
◇ 배너 속 11인은 누구?
이날 배너에 소개된 인물은 △최형섭 장관 △김재관 박사 △한필순 박사 △최순달 박사 △이경서 박사 △이태규 박사 △전길남 박사 △심상철 박사 △김충기 박사 △최기철·최남석 박사 등 11인이다. [사진=대덕넷]
△최형섭 박사
는 대전고 출신으로, 한국 과학기술 행정의 아버지로 불린다. 7년 6개월간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내며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직접 기획했다. 1973년부터 화학·기계·전자·원자력 연구소들이 대덕에 자리 잡은 것은 그의 청사진 덕분이다.
△김재관 박사
는 포항제철 건립을 주도하고 대전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을 세운 인물이다. 1978년 독자적인 국가표준 체계를 수립해 정밀·첨단 산업 강국의 토대를 닦았다. 국가표준제도를 헌법 제127조 제2항에 명문화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필순 박사
는 '원자력의 대부'로 불린다. 원자로 설계부터 연료봉 국산화까지 주도했으며, 1995년 대전에서 세계 최고 성능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완공했다. 지금 각광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기초도 그가 닦았다.
△최순달 박사
는 TDX(전전자 교환기) 개발로 유선전화 당일 개통 시대를 열었고, KAIST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 인공위성 기술을 들여와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의 토대를 닦았다. 그 제자들이 훗날 대전에 본사를 둔 위성 기업 쎄트렉아이를 창업했다.
△이경서 박사
는 '유도탄의 아버지'다. MIT에서 한국인 최초로 학·석·박사를 마치고 귀국해 대전 유성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대한민국 최초 탄도미사일 '백곰' 개발을 이끌었다. 1978년 백곰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 7번째 독자 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됐다.
△이태규 박사
는 1931년 한국인 최초로 이공계 박사 학위를 받은 화학자다. 끈적이는 유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이론을 세워 현대 화학공학의 기초를 만들었고,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 KAIST에서 약 20년간 후학을 가르쳤다.
△전길남 박사
는 대한민국을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인터넷 연결 국가로 만든 주인공이다. NASA에서 보이저 탐사선 개발에 참여했던 그는 1979년 귀국을 택해 KAIST에서 26년간 후학을 길렀다. 넥슨 창업자 김정주, 리니지 개발자 송재경이 모두 그의 제자다.
△심상철 박사
는 Caltech에서 박사를 마치고 뉴욕에서 교수직을 얻었지만, 1971년 한국과학원(現 KAIST) 화학과 창립 교수진으로 귀국했다. 유기광화학 분야를 한국에 처음 개척했으며, KAIST 제8대 원장을 역임했다.
△김충기 박사
는 '한국 반도체의 대부'다. 미국 페어차일드에서 세계 최초로 500화소 CCD 소자를 개발한 그는 1975년 귀국해 KAIST에 반도체 연구실을 세웠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그의 제자다.
△최기철·최남석 박사
부자(父子)는 대전 120년 역사에서 유일한 부자 과학자다. 부친 최기철 박사는 한반도 민물고기 서식지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기록한 생태학자이고, 아들 최남석 박사는 LG화학 연구원 초대 소장으로 대전 바이오 생태계의 씨앗을 뿌렸다.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등 대전을 대표하는 바이오 기업 창업자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4
아래는 과학어울림마당사진.
‘2026 과학어울림마당’ 개막식에 많은 시민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한 시민이 한국인 최초 노벨상 후보였던 이태규 박사의 배너를 스마트폰으로 천천히 촬영하며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이장우 시장과 조원휘 의장이 ‘한국 과학기술 행정의 아버지’ 최형섭 박사의 배너 앞에서 내용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젊은 참가자들이 한국 반도체의 대부 김충기 박사의 배너 앞에 서서 대한민국 첨단 산업의 뿌리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유모차를 탄 아이와 어머니가 QR코드를 통해 행사 정보를 확인하며 주말 과학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대전의 마스코트 ‘꿈돌이’ 인형탈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진=홍재화 기자]
시민들이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손을 들며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접수처에서 시민들이 팜플렛과 기념품을 받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어린 참가자들이 운영 요원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개막식 좌석 이벤트에서 경품에 당첨된 한 어린이가 선물을 높이 들어 올리며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개막식 도중 진행된 현장 인터뷰에서 한 참가자가 밝은 표정으로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전하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과학 대중화 유공자 표창 수상자들이 내빈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개막식을 마친 내빈들과 시민들이 다 함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한밭수목원을 향한 걷기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대전의 마스코트 꿈돌이 굿즈를 고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어린이 참가자가 부모님과 함께 대전의 마스코트 꿈돌이 키링을 고르며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꿈돌이 키링 증정’ 부스 앞에 많은 시민이 줄을 서서 이벤트에 참여하며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사진=홍재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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