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연장근로 단위 개편안은 이른바 ‘주 69시간제’라는 논란 속에 좌초했다. 하지만 당시 개편안의 취지는 무제한 장시간 노동이 아니라 주 40시간의 법정근로 틀을 유지하면서 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연 단위로 유연화하자는 것이었다. 연간 총량으로 보면 연장근로 시간이 오히려 줄어드는 구조였지만 ‘과로 사회로의 회귀’라는 비판과 노동계의 반발을 넘지 못했다.
6일 노동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개편이 과거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단순히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업무가 몰리는 시기에는 집중근무를 허용하되 노동의 밀도를 높이고 건강권과 휴식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안전장치로는 ‘근무 간 연속휴식제’가 꼽힌다. 단기 집중근무를 허용하더라도 퇴근부터 다음 출근까지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해 밤샘·연속 근무를 막자는 것이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할 경우에도 과로사 인정 기준 가운데 하나인 ‘발병 전 4주 평균 주 64시간’을 넘지 않도록 상한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프로젝트 종료 후 초과근로 시간에 비례해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집중 보상휴가제’와 심야근로 횟수 제한, 건강검진 등도 함께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법에도 건강 보호 장치가 있지만 실제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보상휴가제는 노사 합의가 있어야 활용할 수 있고 11시간 연속휴식제 역시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 등 일부 제도에만 적용된다. 첨단 연구개발(R&D)이나 정보기술(IT)처럼 업무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직종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연화가 ‘공짜 야근’으로 이어지는 것도 막아야 한다.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차단하고 실제 추가 근무에 대해서는 수당이나 대체휴가로 명확히 보상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혀주는 대신 그에 따른 보상과 휴식을 더욱 엄격하게 보장하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도 유연성과 건강권을 함께 보장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일본의 고도프로페셔널제도는 일정 요건을 갖춘 전문직에 근로시간 규제를 달리 적용하면서 본인 동의를 요구한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에서는 퇴근 뒤 업무 연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확산돼 있다. 독일의 ‘근로시간저축계좌제’처럼 초과근로 시간을 적립해 장기휴가나 교육훈련 등에 활용하는 제도도 있다.
정부도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와 연차휴가 활성화, 연결되지 않을 권리 제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근로시간 개편은 기업에 업무시간 운용의 자율성을 넓혀주는 동시에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휴식과 보상을 보장하는 두 축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첨단 R&D 직무는 노사 합의를 전제로 선택·재량근로제를 확대하고 일정 기간 집중근무 뒤 충분한 보상휴가를 보장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며 “규제 기준을 단순한 주간 근로시간에서 연구 성과와 연간 총근로시간, 건강 보호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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