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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기업 포인트-②] '수탈 철로'에서 'AI 철도'까지…대한민국 철도 130년

1896년 경인철도 부설권 특허는 우리나라 철도 역사 출발점으로 꼽힌다. 올해가 대한민국 철도 130년으로 불리는 이유다. 철도는 근대화 상징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일제 침탈과 수탈, 분단과 산업화를 함께 지나온 우리 근현대사 축소판이기도 하다.

[공기업 포인트-②] '수탈 철로'에서 'AI 철도'까지…대한민국 철도 130년

경인철도 부설권 특허 130년···근대화 상징이자 식민 침탈 아픈 기록

산업화 동맥 거쳐 KTX·스마트역사로···철도 역할 또 진화

[포인트데일리 윤은식 기자] 1896년 경인철도 부설권 특허는 우리나라 철도 역사 출발점으로 꼽힌다. 올해가 대한민국 철도 130년으로 불리는 이유다. 철도는 근대화 상징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일제 침탈과 수탈, 분단과 산업화를 함께 지나온 우리 근현대사 축소판이기도 하다.

대한제국은 스스로 철도를 놓으려 했으나 자금과 기술 한계에 막혔었다. 그래서 1896년 미국인 제임스 R. 모스(J.R. Morse)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모스 역시 자금난으로 공사를 이어가지 못했고, 1899년 일본 자본에 부설권이 넘어가면서 우리나라 첫 철도인 경인선이 놓이게 된다. 철도 출발점부터 외세 개입과 식민 침투 그림자가 드리운 셈이다.

1905년 경부철도 개통식. 사진=한국철도 홈페이지 내 철도박물관 E-Book 갈무리

◇한반도 울린 경인선...국가 성장 동맥으로

그렇게 놓인 경인선은 1899년 9월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첫 영업 운행에 들어갔다. 당시 경인선은 33.2km 구간을 90분 만에 달렸다. 걸어서 12시간가량 걸리던 길이 순식간에 줄어든 것이다. 독립신문은 당시 경인선 개통을 두고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고 전했다. 새 문명이 한반도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경인선은 이후 한강철교가 놓이면서 서울 도심까지 철길을 넓혔다. 철도는 사람과 물자를 더 빠르게 실어 나르며 생활과 경제를 바꿔놓았다. 경인선을 시작으로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31년 장항선, 1942년 중앙선이 잇따라 개통했다. 철길은 국토를 잇는 수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대륙 침략과 식민지 수탈 통로이기도 했다.

광복 이전까지 우리 철도 운영은 사실상 일본이 독점했다. 철도 부설 과정에서 토지 수탈과 인력 동원이 뒤따랐다. 철길은 근대 문물 상징이면서도 식민 지배 상징이라는 이중 얼굴을 갖게 됐다. 해방 뒤에는 한국전쟁이 벌어지며 철도는 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남과 북이 갈리면서 한반도 철도망은 허리가 끊겼고, 경의선과 동해선은 분단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철도가 다시 국가 성장 동맥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산업화 시기부터다. 정부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산업철도 건설과 철도 현대화가 본격화했다. 기관차는 증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바뀌었고, 견인력과 수송력이 크게 높아졌다. 철도는 공장과 항만, 광산을 잇는 산업 물류망으로 자리 잡으며 수출 대국 성장 기반을 떠받쳤다.

1970년대 철도 역할은 더 커졌다. 석탄과 석유, 시멘트와 컨테이너 등 기간산업 물자를 실어 나르며 산업화를 뒷받침했다. 1973년 중앙선과 태백선 전철화, 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은 철도를 단순 장거리 교통수단에서 도시 대중교통 핵심축으로 바꿔놓았다. 철도는 사람 이동 시간을 줄였고, 국토를 더 촘촘히 묶었다. 전국 일일 생활권이라는 말도 이 무렵 힘을 얻었다.

고속도로 개통과 자동차 교통 발달은 철도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겼다. 철도는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전통 역할만으로는 경쟁력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철도 당국은 경영 합리화와 서비스 다변화에 나섰고, 그 상징이 민자역사였다. 1989년 서울역 민자역사는 철도를 단순 승하차 공간이 아니라 쇼핑과 문화가 결합한 복합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이후 왕십리역과 청량리역 등으로 이런 흐름이 이어졌다.

철도 혁신은 고속철도 개통으로 다시 한 번 속도를 냈다. 2004년 KTX 운행은 서울과 부산, 서울과 광주 시간을 대폭 줄이며 국토 시간지도를 바꿨다. 철도는 느리지만 대량 수송이 가능한 교통수단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벗고, 빠르고 정시성 높은 국가 기간망으로 자리를 굳혔다. 장거리 이동 축이 고속철도로 바뀌면서 지역 간 거리감도 크게 줄었다.

제도 변화도 뒤따랐다. 2005년 철도청은 운영을 맡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건설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나뉘었다. 철도 운영 효율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이후 철도는 공공서비스와 기업 경영, 국가 인프라라는 세 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코레일이 지난 14일 카카오모빌리티와 ‘AI 철도 서비스’ 위해 손 잡았다. (사진 왼쪽부터) 김태승 코레일 사장,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이사. 사진=코레일

◇130년 韓철도史...산업 성장 동맥에서 스마트 인프라로

130년 철도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상징 변화다. 한때 철도의 날은 경인선 개통일인 9월 18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일제 잔재 청산과 자주성 회복 차원에서 이를 6월 28일로 바꿨다. 철도 출발점이 외세 손에 있었던 아픈 기억을 그대로 기념하기보다, 우리 손으로 철도 행정을 시작한 날 의미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철도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철도는 이제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코레일은 최근 AI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과 서울역 혼잡도 분석, 자율주행 로봇 등 첨단 미래 기술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증기기관차와 디젤기관차, 전철과 KTX를 지나 철도는 이제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입은 스마트 교통망으로 바뀌고 있다. 철도가 과거 산업화 엔진이었다면, 지금은 안전과 효율, 이동 경험을 높이는 첨단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셈이다.

대한민국 철도 130년사(史)는 단순히 시간위에 놓인 역사가 아니다. 외세에 넘겨진 부설권에서 시작해 식민지 수탈과 분단, 산업화와 고속철도 시대를 지나 이제 AI 철도로 향하고 있다. 같은 철길이지만 시대마다 역할은 달랐다. 침탈 통로였던 선로는 산업 성장 동맥이 됐고, 오늘날에는 국가 경쟁력을 떠받치는 스마트 인프라로 다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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