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모습 (사진=픽사베이)
[서울파이낸스 김예온 기자] 국내 주택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매출 구조에 빨간불이 켜졌다. 인허가와 착공 등 주요 지표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면서, 대형 건설사들은 먹거리 선점을 위해 에너지와 데이터센터 등 비주택 분야 공략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파트너십(MOU)을 잇따라 체결하며 사업 다각화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1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6년 3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수도권 건설 실적은 처참한 수준이다. 3월 인허가는 9625호, 착공은 6281호, 준공은 1만989호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6.4%, 32.3%, 37.6% 감소한 수치다.
주택 공급의 전 과정이 얼어붙으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외형도 축소되고 있다. 주요 건설사별 실적을 살펴보면 주택·건축 부문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삼성물산 건축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2조7290억원에서 2조2450억원으로 줄었다. 현대건설 역시 같은 기간 22조9870억원에서 18조7180억원으로, 대우건설은 1조3816억원에서 1조2732억원으로 감소했다. GS건설은 주택 공급 감소 여파로 건축·주택사업본부 매출이 전년 동기(2조960억원) 대비 29.3% 급감한 1조4213억원에 그쳤다.
여전히 주택 사업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시장 전망이 어두워지자 건설사들은 해외 진출과 신사업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왼쪽)과 현대건설 MOU 기념 촬영 (사진=각사)
삼성물산은 유럽 전력망 시장 공략을 위해 스위스의 글로벌 전력 기술 기업 히타치 에너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유럽은 현재 모빌리티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인프라 현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삼성물산은 기존 초고압 직류 송전(HVDC) 협력에 이어 이번에는 초고압 교류 송전(HVAC) 분야로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양사는 이미 아랍에미리트(ADNOC) 해상 전력 프로젝트와 호주 마리너스 링크 등에서 협업 성과를 낸 바 있으며, 이번 MOU를 통해 유럽 내 공동 전략 로드맵을 수립할 방침이다.
현대건설은 이탈리아의 인프라 건설기업 위빌드(Webuild)와 손을 잡았다. 위빌드는 철도, 터널, 양수발전 분야에 특화된 엔지니어링 기업이다.
현대건설은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양수발전을 포함한 에너지 사업과 고속철도, 공항 등 사회기반시설 사업을 공동 추진한다. 특히 대규모 산업 기반 시설은 물론 선진국 중심의 양수발전 시장 진출을 위해 프로젝트별 합작법인(JV) 설립까지 검토하며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는 국내를 넘어 동남아로 진출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최근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IT 인프라 개발사인 사이공텔(SaigonTel)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대우건설의 시공 역량과 사이공텔의 현지 개발 경험을 결합해 데이터센터 EPC(설계·조달·시공) 및 공동 투자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베트남은 관련법 개정으로 데이터센터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어서 향후 수주 기회가 풍부할 것으로 전망된다.
GS건설 또한 베트남 민간 최대 IT 기업인 FPT 코퍼레이션과 MOU를 체결했다. FPT는 현지 데이터센터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GS건설은 데이터센터 개발과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설계·시공 역량을 제공하고, FPT는 ICT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술 협력과 현지 수요 창출을 지원한다. 양사는 초기 수십 메가와트(MW) 규모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베트남 디지털 인프라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대우건설(좌측)과 GS건설 MOU.(사진=각사)
GS건설의 행보는 인도까지 이어진다. 허윤홍 대표는 최근 인도 델리를 방문해 재생에너지 리파워링 기업 아리 에너지, 풍력발전 기업 수즐론 에너지와 각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력은 노후 풍력발전소를 최신 터빈으로 교체하는 '리파워링' 사업과 태양광·에너지를 결합한 신재생에너지 공급 사업 진출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5년 내 인도에서 총 1기가와트(GW) 규모의 프로젝트 확보를 목표로 합작법인을 설립해 투자와 운영까지 공동 수행할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오랜 파트너인 일본의 토요 엔지니어링(Toyo Engineering)과 플랜트 신규 사업 발굴을 위한 포괄적 협력에 나섰다. 양사는 비료공장, 메탄올, 클린퓨얼 등 고부가가치 플랜트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건설사들의 이러한 행보를 국내 부동산 경기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평가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은 경기를 타는 산업으로, 특히 국내 주택 경기가 좋을 때는 실적이 고공행진 하지만 침체기에는 동반 하락하는 특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업 다각화는 타사 대비 강점이나 핵심 역량을 구축하는 측면도 있지만, 해당 시설의 운영이나 유지보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안정적인 일감과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다각화"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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