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매도세 속 연기금 이틀간 1960억원 순매수 그쳐
5월 자산배분 허용범위 확대에 주식 비중 상승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348.89포인트(5.46%) 내린 6,035.35로, 코스닥 지수는 12.16포인트(1.43%) 내린 837.03으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주가 하락기에 대규모 주식 매수로 ‘소방수’ 역할을 해온 국민연금이 주가 상승기에 국내주식 투자 허용범위를 확대한 게 화근이 돼 최근 증시 급락 국면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점에서 주식 비중을 충분히 낮추지 못한 탓에 하락장에서 저가 매수에 나설 여력이 제한됐다는 지적이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가 5거래일 연속 하락한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4조5440억원을 순매도했지만, 연기금 등은 514억원을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전날에도 외국인이 2조180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연기금 순매수 규모는 1450억원에 불과했다.
과거 증시 급락기마다 대규모 주식 매수를 통해 급한 불을 꺼왔던 연기금의 모습과는 전혀 단판이다.
이는 앞선 주가 상승기에 국내주식 비중을 크게 높여 추가 매수 여력을 소진시킨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국내주식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기존의 ±3%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확대해 최대 보유 가능 비중을 28.8%로 높여 놓았다.
전략적 자산배분은 실제 투자 비중이 목표 비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허용범위가 넓어지면 주가 상승으로 국내주식 비중이 높아지더라도 이를 낮추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는 부담이 줄어든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액이 4월 말 419조5000억원에서 6월 말 543조2000억원으로 약 123조7000억원 증가하자, 같은 기간 금융부문 자산에서 국내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25.13%에서 29.13%로 4.00%포인트 높아졌다.
이 기간에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월 2조1620억원, 6월 2조3370억원 등 약 4조5000억원을 순매도했지만, 높은 주식 비중은 유지됐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93조3400억원을 순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했다.
문제는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섰을 때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액이 7월 말 418조6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약 124조6000억원 감소하면서 국내주식 비중도 29.13%에서 24.87%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올해 목표 비중인 20.8%를 웃돌고 있다.
상승장에서 매도 부담을 덜어준 조치가 하락장에선 추가 매수 여력을 확보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지난 2021년에도 있었다. 당시 주가 상승으로 국내주식 비중이 높아진 연기금은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연초부터 3월 12일까지 47거래일 연속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에 일부 투자자 단체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등을 찾아 항의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국민연금은 그해 4월 전략적 자산배분 허용범위를 ±2%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코스피가 급락,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수익률이 마이너스(-) 22.75%로 추락했다.
박양수 기자(yspark@dt.co.kr)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