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상자 속의 양' 한 장면
※ 이 기사에는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포일러를 포함했다.
인류의 기록은 자기 물건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을지 모른다. 다른 말로, 선사(pre-history)시대에서 역사(history)시대로 넘어가는 기점은 누군가가 타자를 소유해도 된다는 감각이 발명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21세기 현재,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가장 자연스럽게 소유하려는 ‘가족’을 통해 인간은 왜,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또 다른 인간을 통제하는지 보여주며 문명에 가려진 억압을 드러내고 있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상자 속의 양’이 지난 10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아들을 사고(혹은 사건)로 잃은 엄마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와 아빠 겐스케(다이고 분) 부부가 아들의 정보를 담아 만는 ‘AI 휴머노이드’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가 이 집에 배달되면서 시작한다. 가족영화를 만들어온 전작들 연장선에서 그는 중국에서 생성형 AI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가족관계의 폭력성은 어디서 오는가?
‘상자 속의 양’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소유하는 게 금기인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여전히 소유와 통제가 용인되는 가족 내부의 욕망을 ‘발전된 기술의 그늘’을 통해 보여준다.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 어쩌면 인류의 가장 큰 슬픔을 겪은 그들에게 AI로라도 자녀 로봇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많은 이들이 거부하기 힘들 것 같다. 게다가 일단 무료로 만들어주지 않나. 피지컬AI가 현실화된다면 윤리적인 비난을 가장 적게 받을 분야가 죽은 자녀를 부활하는 프로젝트일 수 있다.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 순간, 부모는 AI 자녀를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 생전 자녀의 정보 가운데 원하는 부분만 넣어 자녀와 똑같이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이 집에 도착하고 자녀가 된 그 로봇은 부모에게서 너무 멀어지면 자동으로 꺼지게 설계됐다. 기억을 박제한 실재, 부모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제목처럼 상자에 가둔 순한 양이다.
지난 2020년 MBC 다큐멘터리에서 먼저 떠난 자녀를 VR(Virtual Reality)로 만들어 소통하는 장면은 부모의 애도를 강조하면서 ‘죽은 자에 대한 소유권’을 부모에게 부여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VR로 자녀를 재현한 프로그램에 대해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것’이라는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평가가 마치 자녀를 잃은 부모를 힐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때 하지 못했던, 유예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죽은 자는 과연 죽은 자의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 박제된 기억의 현실화는 가장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폭력이다.
고레에다의 다른 작품들도 부모가 자녀를 소유하려 한다는 문제의식이 녹아있다. ‘아무도 모른다’(2005)는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면서도 책임감이 없는 부모의 잔혹성을 그대로 노출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소위 ‘핏줄로 연결된 아버지’와 ‘자녀와 시간을 같이 보내며 키운 아버지’를 대비시키며 가부장의 책임과 절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고, ‘어느 가족’(2018)은 혈연으로 얽히지 않은 ‘식구’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통적 가족의 억압과 치사함을 그려낸다.
인간은 타자를 통제할 수 있을까?
영화로 다시 돌아가서, AI 휴머노이드 자녀 카케루는 처음에 7세로 설정되지만 인공지능답게 빠른 성장을 보인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 다른 AI 휴머노이드 자녀들과 만나 자신들끼리 살 수 있는 생태계를 준비한다. 각자의 몸에 심어진 위치추적기를 도려내고, 도시를 떠나 대자연 속에서 전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 인간이 만든 AI 휴머노이드 자녀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건 배신일까, 성장일까.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독립을 꿈꾸는 자녀들과 얼마나 다를까.
▲ 영화 '상자 속의 양'의 한 장면. AI 휴머노이드 자녀들이 부모 눈을 피해 다니는 모습
최근 AI가 발달하면서 언젠가 AI가 인간을 정복할 거란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혹자는 지금 생성형 AI에 질문을 할 때 반말이 아닌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나중에 AI가 인간을 지배하게 됐을 때를 대비해 정중하게, 잘 보이기 위해서란다. 이런 농담이 나올 만큼 인간은 기본적으로 AI를 비롯한 타자와의 관계를 수직적이고 권력 중심적으로 이해한다. 한국이 AI를 발전시켜 세계 3대 강국의 자리를 공고히하고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발상도 그 연장선이다.
‘상자 속의 양’은 인간이 AI 휴머노이드를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AI가 ‘인공’지능을 넘어 자아를 갖는 자체지능의 시대가 온다면,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별도의 사회를 꾸릴 것이라고 예상해 일각에선 고레에다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하지만 자신보다 약하면 통제하려 들고 통제되지 않으면 작은 차이를 부각해 선을 긋고 차별과 적대화하는 최근의 사회분위기를 보면 AI가 굳이 이 피곤한 인간들과 같이 살까 싶다. 이 지점에서 AI시대 인간 사회와 가족의 미래를 고민해보게 한다.
이번 영화에 혹평이 나오는 이유는?
이제는 당연히 칸에 초청되는 감독으로 알려진 고레에다 명성에 비하면 ‘상자 속의 양’은 박한 평가를 받는다. 송강호, 아이유, 강동원 등 한국배우들과 작업했던 ‘브로커’(2022)보다 더 몰입감이 떨어지는데 전문가들의 평은 ‘너무 많은 주제를 넣으려다 보니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로 수렴된다. 다큐멘터리가 강점인 고레에다의 SF영화라는 한계도 있겠지만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면서 죽음에 대한 윤리, AI윤리, 애도, 가족의 정의, 생태주의 등 여러 거대담론을 한 바구니에 담으려는 게 과욕이 아니었나 싶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영화 속 카케루 역을 연기한 쿠와키 리무 배우
또한 카케루 역할을 연기한 쿠와키 리무가 진짜 AI 휴머노이드 같아 보이는 부분을 제외하면 연기력도 아쉽다. 고레에다, 하면 떠오르는 안도 사쿠라나 릴리 프랭키, 고인이 된 키키 키린 등이 떠오른다. 고레에다의 최근 주요 작품의 흐름을 보면 ‘어느 가족’(2018)과 ‘괴물’(2023)로 이름값을 했고 ‘브로커’(2022)와 ‘상자 속의 양’(2026)으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국내 팬들은 고레에다가 다음번이 명작을 내놓을 타이밍이라 기대하고 있다. 차기작은 원작 만화를 실사 영화로 만든 ‘룩백’으로 일본에선 오는 9월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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