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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계엄 막은 이들이 주인공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시민판"

일부 미확보 영상은 실제 자료를 활용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으로 대체했다. 영화의 중심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까지 숨막히는 2시간 35분을 재구성한 대목이다. 이...

"계엄 막은 이들이 주인공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시민판"

22일 개봉하는 다큐 '란 12·3' 연출한 이명세 감독

19년 만에 장편영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동력"

영화 '란 12.3'을 연출한 이명세 감독. 프로덕션 에므 제공

“살아남은 자의 슬픔 또는 부끄러움 같은 감정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영화 ‘M’ 이후 19년 만에 장편영화를 들고 돌아온 이명세(69) 감독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란 12.3’(22일 개봉)을 찍게 된 이유로 부채감을 언급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을 이야기하며 “나 자신이 미워지면서 영화감독으로 내가 뭘 할 수 있는가 하는 무기력감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유신 시대와 1980년대 군부 정권을 거치면서 영화인으로, 시민으로 느꼈던 부끄러움은 국회를 지키기 위해 밤늦게 여의도로 뛰어간 시민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이어졌다. “12월 3일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꿈과 현실이 만나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TV를 보면서는 ‘지금 나가면 택시가 잡힐까’ 하면서 망설였어요. 탱크 앞에 막아 서는 것, 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그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죠.”

‘란 12.3’은 시민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실제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보던 평범한 이들이 느꼈던 감정이 자막으로 전달되고,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직접 찍은 영상도 다수 사용됐다. 지난해 말 후반 작업을 위해 10억 원 규모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는데 시민 1만 5,0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감독은 “‘란 12.3’에 주연 배우가 있다면 그건 시민들”이라면서 “이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시민편이라고 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란 12.3'. 프로덕션 에므·왝더독 제공

이 감독은 ‘란 12.3’의 방향성을 “새롭지 않다면 만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칙으로 요약했다. 기존 다큐멘터리와 다른 방식을 취하는 이 작품은 내레이션이나 인터뷰를 배제하고 영상 자료, 녹취록, 애니메이션 등으로 채웠다. 일부 미확보 영상은 실제 자료를 활용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으로 대체했다.

영화의 중심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까지 숨막히는 2시간 35분을 재구성한 대목이다. 이 감독은 그날 현장에서 국회의원, 보좌관, 시민 등 280여 명이 찍은 영상과 여러 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한 편의 스릴러처럼 연출했다. 이미 아는 내용인데도 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그는 “긴장감이 있어야 하고 시네마틱(영화적), 이모셔널(서정적), 드라마틱(극적), 유머의 조화가 중요한데 그에 맞춰 편집하려 했다”면서 “그때 내가 가슴 졸이며 느꼈던 감정, 시민들이 느꼈던 것이 공감대를 이루며 생생하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에게 영화를 시작하게 한 이미지는 방송인 김어준씨를 체포하기 위해 뉴스공장 앞에 들이닥친 군인이 내부 직원의 카메라를 올려다보던 중 촬영된 눈빛이다. 1980년 5월의 공포를 상징적으로 다시 끄집어낸 이미지라는 게 이 감독의 설명. 김씨는 이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연출을 제안하고 투자도 했다. 이 감독은 “제작비가 필요해 지원을 받긴 했지만 (김씨가) 영화의 연출 방향에 대해선 일절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영화 '란 12.3'. 프로덕션 에므·왝더독 제공

이 감독은 독보적인 영상미를 보여주는 감독으로 명성이 자자했으나 준비하던 영화가 몇 차례 좌초된 뒤론 오랜 공백을 보냈다. 그는 “과거의 명성은 대단치도 않았지만 모두 내려놓았다”면서 “그냥 신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구상 중인 시나리오도 여러 편 있다. 이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 뱀파이어 영화 등을 생각 중인데 투자받기 쉽지 않아 어떻게 하면 저예산으로 찍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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