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21일 물러나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흘 전 기자회견에서 “부족했다”고 13번 말했는데 청와대 2인자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 지키고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명색이 청와대 인사위원장인데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인사 난맥상이 들춰진 상태였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3주 전에 사퇴했다.
8·30 개각 때 누군가는 김승원 의원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려는 것을 말렸어야 했다. ‘공소취소 의원 모임’ 공동대표를 발탁하면 이 대통령을 향한 세간의 ‘공소취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의구심을 증폭시킬 거라고. 누군가는 용혜인 의원을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 기용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위성정당으로 비례대표 의원만 두 번 했는데 장관까지 하는 건 불공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청와대 안에서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없진 않았을 거라고 본다. 어쨌든 두 사람 내정이 발표됐고, 여론은 차가웠다.
대통령 사과 회견 후 비서실장 사의
예고된 청와대 개편, 현 상황 어떤가
대통령의 눈·귀 막는 참모 정리하고
직언하는 참모 찾고 시스템 정비해야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은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6·3 지방선거 직후부터 하락하던 지지율이 반토막 나면서 국정운영에 경고등이 커졌다. 민심이 받쳐줘도 못하는 일은 있지만 민심이 멀어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위기의 징후들은 있었다. 2024년 이 대통령의 민주당 대표 시절 총선 과정에서 비이재명계가 무더기로 공천 탈락했는데, 친명·비명의 갈등은 민주당 전당대회 전후로 거칠게 표면화했다. 이 대통령 거취와 관련된 연임개헌, 공소취소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부동산·증시 등 몇가지 정책들이 오락가락하며 일 잘하는 정부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신발끈을 다시 매겠다”고 했다. 민생, 개혁, 통합을 국정의 핵심 화두로 제시했다. 청와대 참모는 이런 대통령의 가치와 지향을 구현하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대통령이 박수받고, 그러지 못하면 대통령이 질책받는다. 청와대가 재정비를 앞두고 현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의 모든 판단과 결정이 옳을 순 없다. 다른 관점을 제시해 대통령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게 참모들의 역할이다. 때로는 ‘그건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직언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래야 대통령이 살고 정부도 산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 대해 충성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이 대통령은 사람을 쓸 때 충성심을 특히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에 동질화된 사람들만 있으면 대통령에게 ‘NO’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태형·전치영·이장형 등 대통령 사건 변호인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에 포진한 것에 시선이 곱지 않다. 대통령과의 소통은 잘되겠지만, 민심과의 소통이 원활치 않을 우려가 크다. 이번 인사 검증 실패도 민정수석실이 제 구실을 못한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재점검하겠다는 인사시스템을 정비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이다. 비슷한 사람이 모여 있는 것보다 이질적인 사람도 섞여야 보는 눈이 넓어지고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정책은 ‘작은 생선 굽듯’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설익은 정책을 내놓고선 아니다 싶으면 수정하는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롤러코스터 증시를 촉발한 뒤에야 “어떻게든 그때 드러누워 막았어야 했나, 후회를 많이 하고 있다”(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식의 말은 민심을 달래지 못한다. 정책 참모들은 대통령의 아이디어나 지시를 정책으로 짜맞출 게 아니라 창의적 발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청와대에 직언하는 참모도, 창의적인 참모도 없으면 국정이 성공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미국·멕시코 순방에서 돌아온 추석 연휴 후 2기 청와대 개편이 본격화할 것이다. ‘대통령의 참모를 넘어 국민의 참모’라 여기고 일할 사람을 찾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참모를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기 전에 청와대를 추스려야 한다. 지나온 시간은 1년3개월, 국정을 이끌 시간은 3년9개월 남았다.
안홍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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