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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총회장 “기업들, 노조 전성시대에 위축…잠재적 범죄자 취급 안돼”

5연임 손경식 경총회장 인터뷰 TSMC·엔비디아 반도체 투자 전쟁중 성과급 잔치 밥그릇 싸움땐 미래없어 고용유연성 강조 李, 노동개혁 속도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매년 수십조 원을 재투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총회장 “기업들, 노조 전성시대에 위축…잠재적 범죄자 취급 안돼”

5연임 손경식 경총회장 인터뷰

TSMC·엔비디아 반도체 투자 전쟁중

성과급 잔치 밥그릇 싸움땐 미래없어

고용유연성 강조 李, 노동개혁 속도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매년 수십조 원을 재투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입니다. 일시적으로 이익이 많이 났다고 임금을 과도하게 올리는 건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죠.”

올해 2월 다섯 번째 연임에 성공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87)이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성과급 논란과 관련해 노동조합 측에 기업과 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경총 회장으로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한 한국 재계의 원로다. 손 회장과의 단독 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경총 회관에서 진행됐다.

“근로자 입장도 더 배려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은 노조 쪽에만 무게가 실린 ‘노조 전성시대’다. 기업이 다시 신명 나게 뛸 수 있도록 징벌적 규제부터 걷어 내고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

손 회장은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등 최근 노동계 현안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노란봉투법을 시행한 지 한 달 만에 교섭 단위 분리 신청만 117건에 달했다”며 “창구 단일화 원칙이 무너지면 파업 일상화는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그는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계 의견이 강조되면서 기업인의 사기 저하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손 회장은 “겹겹이 쌓인 형벌 리스크 속에서 어떤 경영인이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겠냐”며 배임죄 등 기업 규제 철폐에 대한 정치권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요청했다. 기업을 경제의 핵심으로 대우하고 기업가들이 신명 나게 뛸 수 있도록 규제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규제혁신으로 기업가정신 환경 만들어야

-경총 회장을 다섯 번째 연임하게 됐는데, 올해 중점 과제는.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올해는 개정 노조법 대응, 정년 연장 논의, 산업재해 예방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기업 중심의 태스크포스(TF)를 상시 운영하고 경영계 목소리가 정부와 국회, 국민께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

-노조에 힘이 실리며 기업인들이 위축됐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심장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거나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너무 강하다. 겹겹이 쌓인 과도한 형벌 리스크 속에서 어떤 경영인이 과감한 신사업 투자에 나설 수 있겠나. 이대로 가다간 경영자들이 몸을 사리고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규제 혁신으로 기업가정신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곧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삼성전자 1세대로서 최근 성과급 갈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1970년대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틀을 닦을 때 우리(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는 다른 계열사보다 급여를 20%씩 적게 받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밤낮으로 일했다. 반도체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기 이익은 곧바로 차세대 기술과 설비에 쏟아부어야 살아남는다. 지금은 글로벌 재투자 전쟁 시기인데, 동종 업계 눈치만 보며 임금을 과도하게 올리는 건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다. 일시적으로 이익이 많이 났다고 돈 번 걸 다 갈라 먹어선 안 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 2월 24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 정기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봉법 시행 한달, 파업 일상화 우려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을 평가한다면.

“쪼개기 파업 리스크가 수치로 현실화됐다. 법 시행 한 달 만에 교섭 단위 분리 신청만 117건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가 오랜 진통 끝에 어렵게 정착시킨 원칙이다. 그걸 다시 허무는 방향으로 가면 과거에 겪었던 혼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게 수용되면 파업 일상화는 시간문제다.”

-원청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사례가 많은데.

“한화오션 식당 급식업체 노동자들까지 원청에 직접 교섭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식이면 예를 들어 백화점 매장을 빌려 입점한 시계 수리점 직원들까지 백화점 사장과 교섭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 급식 노동자는 급식업체 사장과 계약한 사람들이다. 원청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포스코의 하청 직고용 결정 후 관련 요구도 늘고 있다.

“포스코는 과거 직고용을 했다가 본사가 더 중요한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 업무를 하청으로 전환했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니 이번에 다시 직접 고용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경영 판단상 문제를 노조 문제(노봉법 영향)로 보긴 어렵다고 본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인한 현장 혼란을 줄이려면 어떤 보완 조치가 필요한가.

“하청 노조의 본래 사용자는 하청 기업이다.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려면 산업안전처럼 원청의 사용자성이 명확히 인정되는 사안에 한해야 한다. 범위를 벗어난 요구까지 수용하면 노사 갈등만 커진다. 교섭 거부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도 손봐야 한다. 사용자 범위가 모호한 상황에서 형사처벌까지 하면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 연장을 주장한다. 경총의 해법은.

“정년을 일률적으로 늘리면 기업 비용이 급증해 청년 채용이 줄어든다. 세대 갈등이 불가피하다. 지금도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지 않나.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일본처럼 퇴직 후 재고용하는 형태가 현실적이다. 기업 부담을 줄이면서 고령 인력의 숙련도도 살릴 수 있다. 다만 연공급(호봉제)이 아닌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 정책 기조를 어떻게 평가하나.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고용 유연성의 중요성을 아주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대통령께서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노동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를 기대한다. 물론 고용 유연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생긴다면 기업도 사회안전망 확충에 함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재계에 60년 몸담으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

“1997년 외환위기(IMF) 때였다. 정말 놀랐고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때 국민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와 기업을 걱정해주셨다. 기업인들도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었다.”

-기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예전과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기업에 대한 국민적 응원이나 애정이 예전 같지 않아 아쉽다. 기업들도 국가 경제를 위해 스스로 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국민께서도 기업이 다시 신나게 뛸 수 있도록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AI시대 성과 중심으로 판 갈아엎어야

-AI와 로봇 도입으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AI가 기존의 특정 직무를 대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에 맞는 노동시장의 ‘유연 안정성’은 필수다. 지금처럼 한 번 취업하면 끝인 경직된 구조로는 AI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 근로자가 다른 직무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한 직장에서의 고용 안정이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에서 고용이 이어지는 구조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 고용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단순 연공급(호봉제) 임금 체계부터 갈아엎어야 한다. 근속 연수만 쌓이면 월급이 오르는 구조로는 AI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핵심 인재를 절대 키울 수 없다. 일한 만큼, 성과를 낸 만큼 보상받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로 판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 기업은 글로벌 고부가가치 산업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고용 유연성만 강조하면 근로자 반발이 우려되는데.

“사회안전망 확충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AI 시대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근로자가 기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력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직업훈련과 재교육, 이른바 ‘평생학습 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직무 전환에 대한 근로자들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국회에 바라는 입법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 배임죄의 대대적인 손질이다. 우리나라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너무 넓고 모호하다. 특히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으면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살인죄와 맞먹는 수준이다. 독일은 최대 5년, 일본은 최대 10년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은 이렇게 규제를 받고 있고, 외국 기업은 안 받는다면 한국 기업이 경쟁력이 있겠나. 배임죄 개선과 함께 ‘경영 판단의 원칙’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적법한 절차를 밟은 경영 판단이라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제도화돼야 기업인들이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경영계에 큰 부담이다.

“중대재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하지만 과중한 형사처벌만으로 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두렵겠나. 처벌 강화보다 실질적인 예방 프로그램을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다. 경총도 고용노동부와 협력해 산업재해 예방에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상법 개정 이후 경영권 방어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상법 개정으로 주주 권익이 강화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경영권을 잠식하려는 시도도 함께 늘고 있다. 법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채 상법 개정만 이뤄진 것은 아쉽다. 이 문제는 앞으로 다시 공론화해 국민적 공감을 얻어야 한다.”

정욱 산업부장 대담·정지성 기자 정리

손경식 경총 회장은… △1939년 9월 15일 서울 출생 △1957년 경기고 졸업 △1961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6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대학원 졸업(MBA) △1968년 삼성전자공업(現 삼성전자) 입사 △1991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회장 △1994년 CJ 대표이사 회장 △1995년 CJ그룹 회장 △2005~2013년 대한·서울상공회의소 회장 △2011~2013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2018년~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5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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