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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제시평] ‘양치기 소년’의 경고가 필요하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출 호황이 경상수지 흑자를 받쳐주고 있다. 그러나 이 안정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상태’일 뿐이다. 외환시장은 선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평온해 보이던 흐름도...

[경제시평] ‘양치기 소년’의 경고가 필요하다

한재준 인하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점에 근접했다. 3월 말까지 외국인의 자금 흐름을 보면 석 달간 주식시장에서 약 59조원 규모의 순매도가 발생했고, 채권시장도 표면상 매수(24조원)지만 만기상환분을 빼면 사실상 순유입이 없었다. 여기에 4월 외국인 배당금에 따른 달러 유출분을 감안한다면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 자금 유입만으로는 환율 안정을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물론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언급처럼 외화자금시장은 아직까지는 안정적이다. 과거 위기 국면에서 나타났던 외환 유동성 경색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출 호황이 경상수지 흑자를 받쳐주고 있다. 그러나 이 안정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상태’일 뿐이다. 외환시장은 선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평온해 보이던 흐름도 특정 사건을 계기로 급변한다. 특히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달러 매수 포지션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가격 움직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시장 참가자들이 환율 상승에 베팅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유가격 상승이라는 변수가 있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무역수지를 압박하고, 이는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환율 상승은 단순한 투기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 요인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누구도 위기 징후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이 상황에 적절한 이솝우화가 있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다. 반복된 거짓 경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소년의 외침을 믿지 않게 되고, 결국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대응하지 않는다. 외환시장도 비슷하다. 과거 몇 차례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실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은 경험이 쌓이면서, 경고 자체를 과도한 우려로 치부하는 경향이 생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반대다. 위기는 언제나 ‘과도한 안심’ 속에서 발생한다.

지금 한국의 외환시장은 분명 위기 상황은 아니다. 원화만 절하된 것이 아니고 엔화와 대만달러도 절하 국면이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금융시스템도 안정적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자금 유출+환율 상승+에너지 가격 상승’이 겹친 상황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에서 환율 상승은 기대 인플레이션과 물가의 상승, 취약계층의 민생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겪어온 위기는 글로벌 위기 국면에서 예기치 않게 들이닥쳤고, 우리네 취약점은 사후적으로만 확인되었다. 1997년 위기도 아시아 통화위기의 여파였고, 2008년 위기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파고를 떠안은 결과였다. 이번에는 미·이란 간 충돌이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 70%라는 구조와 석유화학·제조업 중심인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시험할 소지가 높다.

정책당국의 역할은 위기가 터진 뒤 수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가능성을 미리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장과 소통하고 리스크 요인을 점검하며 필요하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매월 발표되는 외환보유액에 언론이 민감히 반응하고 있어 당국이 섣불리 나서도 안 되겠지만, 가용한 수단들을 점검해야 한다. 환율은 시장의 수급이 결정하고 외화 유동성에도 문제가 없다지만, 위기가 터질 경우 우리가 기댈 우방이 마땅치 않다. 미국은 동맹이라도 자국의 통상·안보 계산서를 먼저 들이밀 것이고, 미·중 대립 속에서 중국에도 기댈 수 없다. 일본은 엔저와 중동발 불안 속에 자국 경제 방어가 급하다. 외환시장 안전판이 밖에서 공짜로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양치기 소년’ 같은 경고와 점검도 필요하다.

한재준 인하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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