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란 방송인·現 경남교통방송
김혜란 방송인·現 경남교통방송
일주일에 한번씩은 놀러라도 가는 작은도서관에는 오륙칠십대 여성들이 회원인 독서 동아리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함께 읽은 책이 백여 권이나 된다니 10년은 족히 되는 연륜있는 동아리인 셈이다.
그날은 이상했다. 늘 이용하던 중앙탁자에 앉지 않고 하필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회의도 하는가 싶었는데 들어간 지 몇 분 되지 않아 왁자지껄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의견이 다른가? 토론을 하는 건가? ’ 실무자와 홀에 있던 몇몇은 걱정되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 한 시간 내내 이분들 목소리가 커지거나 높아지거나 했다. 드디어 시끄럽고 왁지지껄한 모임을 끝내고 예닐곱 명이 작은 방에서 나오셨다.
“싸우신 거 아니죠?”
끝까지 모른 척하고 참견하지 않던 담당 실무자가 입을 열고야 말았다. 책임감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듣고만 있던 이용자 서너 명도 토끼귀가 되었다. 어르신 회원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서로 마주 보면서 큰 소리로 껄껄 웃는 게 아닌가.
말씀인즉슨, 이번 달 책이 너무 쉬워서 대부분 다 읽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려운 책들은 읽을 만큼만 읽고 넘어갈 때도 많았다고 한다. 책을 제대로 못읽은 달은 리더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저 조용히 경청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달 책은 쉽기도 하고 아는 부분이 많아서 각자 할 이야기가 넘쳐나길래 시끄러울 것 같아서 작은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싸우는 것처럼 큰 소리가 난 이유가 재미졌다. 서로 순서대로 의견을 말하고 토론했다기보다 할 말 생각난 거 까먹기전에 ‘내가 먼저’라며 서로 빨리 말하려고 애쓰다 보니, 마치 아이들처럼 떠들게 되었다고 하신다. 말하는 와중에 밝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면서 완전 몇십년은 젊어 보이신다. 정신적인 성과는 육체적인 결과물도 이끌어 내는구나.
“어떤 이야기인지 저희도 알려주세요” 했더니 잠시 멈칫, 고개를 주억거리다 또 당신들끼리 마주 보며 웃어제낀다. 그렇게 고함치며 서로 먼저 말하려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빨리 생각이 나지 않아서 웃긴단다.
물론 후배들에게 들려주기를 포기하지도 않으신다. “가만 있어 봐요이. 그게 그러니까….” 띄엄띄엄, 한 사람이 말하면 또 다른 사람이 말을 이어가며 이야기를 보탠다. “어라? 아까는 씨부리기만 했는데 지금 말하니 정리가 되네, 으하하하. ”
그렇게 독서모임을 요란스럽게 정리해주시고는 “떠들었더니 배고프다. 밥 묵으러 갑시더.” 또 한바탕 껄껄거리며 표표히 사라진다. 내공을 기르고 모여서 한바탕 겨루고 사라지는 모습이 꼭 검객들 같다.
사실 그분의 토론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괜찮았다. 당신들끼리 열렬히 생각한 것들을 나누고 잊기전에 말하는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면 그걸로도 대만족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나쁘거나 어리석은 확증편향이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 정도면 됐다는….
이분들이야말로 찐 독서가들이다. 시간 들여 책을 읽고 출력까지 하는 과정을 그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모임 자리에 없던 사람들에게도 이해시키는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창원시에는 평생학습기능과 도서관기능을 함께 가진 평생학습센터(및 작은도서관)가 수십 개 있다. 창원시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는 이곳들은 창원시의 마을을 지키는 정신적인 척추기립근 같은 곳이다.
AI시대,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걱정이지만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준은 멈추지 않고 높아진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양으로만 따지지 않으면 볼 수 있다.
청년들의 독서관련 유행 중 ‘텍스트 힙’ 이 있다. 책 들고 사진 찍고 필사하더라. 우리동네 작은도서관 어르신 독서모임에도 힙한 유행이 있다. ‘내가 먼저’이다. 청년들처럼 SNS 질은 잘 하지 않는다. 독서력, 언어력을 침범당할 수 있다고 독서와 모임을 통해 깨우쳤기 때문이다. 꾸준한 느림이 급하고 빠른 변화의 본질을 지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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