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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일시론]인고의 시간은 길고 화양연화는 짧다

외환보유액이 그러하고 반도체와 자동차, 선박, 방위산업으로 수출체질이 강화됐다. 금융체질의 안정도 지난 시절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지금은 '멀티 리스크'라 불리는 중동전쟁의 모랫바람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경일시론]인고의 시간은 길고 화양연화는 짧다

변옥윤 논설위원

변옥윤 논설위원

언제나 그러하듯 인고의 시간은 길고 화양연화는 짧다. 지난 겨울, 긴 추위와 인고의 시간을 보낸 벚꽃이 마침내 만개하더니 며칠전 내린 봄비에 속절없이 지고 말았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뤄 수백만의 상춘인파로 화양연화를 누린 진해벚꽃축제도 끝나고, 다시 잎을 내고, 열매를 맺어 성장해야 하는 긴 인고와 간난의 여정에 들어갔다.

화양연화는 짧고 인고의 시간은 긴 자연의 법칙은 인간사에도 다름 아니다. 올해도 기대와는 달리 4월은 여전히, 예외없이 ‘잔인한 달’이 되어 우리의 일상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동에서 불어닥친 모진 모랫바람이 그것이다. 중동전쟁은 다시 우리에게 지난 1, 2차 오일쇼크와 IMF의 아픈 상처를 되새기게 한다. 해외의 경제학자들은 중동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이미 차량부제 운행과 에너지 절약 등 경제 위기에 대비한 각종 비상대책을 내놓는 발빠른 행보에 들어갔다.

자원부족으로 수출만이 살 길인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에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경제의 취약성을 꿰뚫어 본 전망이다. 에너지 충격이 물가상승을 불러오고 산업이 위축되고 금융 불안과 수출 부진으로 이어져 대량 실업을 야기, 국가경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에서 비롯된 전망이다. 실제로 우리경제는 지난 1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4배 이상 치솟아 물가가 폭등하고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하는 뼈아픈 경험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같은 악재는 범국민적 에너지 절약 캠페인과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으로의 산업구조 변화로 출구를 마련, 체질을 강화해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경험이 있다. 2차 오일쇼크 때는 이란 혁명으로 원유 공급 불안이 현실로 이어져 유가 급등과 고금리, 기업의 부채 증가, 성장 둔화로 이어졌으나 1차 오일쇼크로 강화된 경제체질이 국민들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면역으로 작용, 위기를 탈출하는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더욱 심각한 위기는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난 IMF 관리체제였다. 과도한 단기외채와 재벌 중심의 과잉투자,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였다. 그 여파는 엄청난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원화가치의 폭락과 대기업의 연쇄도산, 대량 실업으로 중산층이 무너져 국가의 근간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오일쇼크가 외부충격이 근본적 이유였다면 IMF는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외부의 금융충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 시기에 국민적 캠페인으로 번진 금모으기는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범국민적 갈망의 표출이었다. 위기탈출의 실질적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국민을 하나로 묶어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큰 몫을 한 것이다. 1, 2차 오일쇼크와 IMF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경제는 성공적 구조조정과 수출중심경제에 따른 체질강화, 외환보유고의 안정적 유지로 마침내 세계 10위권 이내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최근의 중동사태는 현재 진행형 에너지, 금융복합위기임이 분명하다. 유가와 LNG가격 불안정, 해상물류 리스크 증가, 환율상승 압력이 과거와 비슷한 패턴으로 다가오고 있다. 산업비용 증가와 제조업의 수익성 악화가 뒤따를 것이 예견된다. 그 결과는 금리인상과 소비위축, 산업둔화로 이어질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나갈 긍정적 요소도 없지 않다. 외환보유액이 그러하고 반도체와 자동차, 선박, 방위산업으로 수출체질이 강화됐다. 금융체질의 안정도 지난 시절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지금은 ‘멀티 리스크’라 불리는 중동전쟁의 모랫바람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국민적 지혜를 모을 때다. 쓰레기봉투 사재기와 부화뇌동해 유통질서를 왜곡하는 오도된 시민의식으로는 위기를 견뎌낼 수 없다. 지난 시절의 뼈아픈 경험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지만 꽃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다시 긴 인고의 시간이 우리앞에 가로놓여 있다. 다만 정치만이 위기의식없이 눈앞의 밥그릇 챙기기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화양연화는 긴 인고에서 비롯됨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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