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이 6일(현지시간)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작 ‘버닝’ 이후 8년간 삶 자체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극장에 오지 못하는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면서 인간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여전히 영화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지 본질적인 고민을 했습니다.”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은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열린 제83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영화 속 인간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오정미 작가와도 우리가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깊이 이야기했다”면서 “‘가능한 사랑’은 영화에 대한 우리의 고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본질적으로 변화해 가는 인간관계, 거기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질문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올해 경쟁 부문에 진출한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아내 미옥(전도연),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남편 상우(조인성)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감독이 처음 선보이는 넷플릭스 영화로, 오는 23일 극장 개봉 이후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그의 작품이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건 은사자상 감독상을 거머쥔 ‘오아시스’(2002) 이후 24년 만이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배우 설경구가 6일(현지시간)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감독과 ‘박사하탕’(2000) ‘오아시스’를 함께한 배우 설경구는 “감격스럽게도 감독님과 23년 만에 영화를 찍었다. 작업 방식에 큰 변화는 없었다”면서 “다만 내 마음이 달라졌다. ‘박하사탕’ 때는 긴장감과 압박감에 힘들어 도망가고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 순간이 그리워졌던 것 같다. 그때로 완벽히 돌아갈 순 없지만 의도적으로 초심을 가지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난 이걸 ‘이창동 매직’이라 부른다. 감독님이 날 특별히 힘들게 하거나 뭔가 요구한 건 아닌데 내 마음가짐이 (작품에) 더 집중하고 고민하게 되더라.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달라진 건 또 있었다. 과거엔 현장 분위기가 무거웠는데 이번엔 ‘이창동 현장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배우들 덕분이었다. 나 혼자였으면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배우 전도연이 6일(현지시간)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감독의 영화 ‘밀양’(2007)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품은 전도연은 “‘밀양’으로 감독님을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엔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얼마나 생각을 비우고 열린 마음으로 현장에 가느냐, 그리고 현장에서 인물을 얼마만큼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전도연은 “‘밀양’ 때 감독님이 내게 ‘조금이라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성장의 의미가 뭔지 몰랐는데, 작품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됐다”며 “내가 그동안 어떤 연기를 했고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았다. 내 욕심일지 몰라도, 이번 작품은 또 다른 작은 성장을 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을 통해 얻은 성과로는 “동료애”를 꼽았다. 전도연은 “어마어마한 동료애를 느끼며 굉장히 값지다고 생각했다”며 “감독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감독님의 작품을 너무 좋아하긴 하지만 현장에서 처음으로 빛나는 동료애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배우 조여정이 6일(현지시간)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 감독과 첫 작업이었던 조여정은 “내가 배우를 하면서 이창동 감독님 영화를 해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게다가 좋아하는 선배들과 동료를 한꺼번에 만나게 되니 이렇게 큰 선물은 없었던 것 같다”고 감격해했다. 이어 “현장에서 형제 혹은 가족처럼 서로 영차영차 밀고 끌어주는 팀워크가 굉장히 좋았다”고 덧붙였다.
극 중 다큐멘터리 감독을 연기한 조여정은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카메라 뒤에서 무언가를 담고 싶어 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게 새로운 시선을 주기도 했다”며 “연기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난 보통 자신을 괴롭히면서 고통스럽게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스스로 ‘뿌듯하다’는 기분을 느끼기가 어려웠는데, 감독님 현장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떤 순간엔 자유롭기까지 했다. 잊을 수 없는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배우 조인성이 6일(현지시간)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역시 이 감독과의 작업이 처음인 조인성은 “감독님과 우리나라 레전드 배우인 두 선배님들, 같이 연기하고 싶었던 여정씨와 함께해서 너무 좋았다”며 “촬영이 끝난 뒤 이 현장이 그리울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잔향이 깊었던 영화”라고 애정을 전했다.
영화는 기술 발전으로 변화하는 사회의 집단해고 문제를 다룬다. 이 감독은 “예지 캐릭터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나의 정체성과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라며 “작가였던 젊은 시절부터 내겐 항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었다. 노동자나 소수자, 민주주의를 싸우는 학생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들과 가까이, 그들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 자문했다. 영화를 만드는 지금도 그 질문은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자기 일이 의미를 잃어가는 이 시대 모든 노동자의 근본적 질문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며 어떻게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가야 하는가. 그 질문을 영화에 담고, 관객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배우 조인성(왼쪽부터), 조여정, 이창동 감독, 전도연, 설경구가 6일(현지시간) 제83회 베네치아영화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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