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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韓 산업 모델·에너지 인프라 아프리카에" 에티오피아 형제의 과학자 ...

◇ 형 비룩 "한국의 산업화 경로가 에티오피아의 답입니다" 비룩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피지컬 AI(Physical AI)와 로보틱스다. 소프트웨어 안에만 머무는 지능이 아니라, 실제 세계와 맞닿아 작동하는 지능 시스템이다. KAIST...

"韓 산업 모델·에너지 인프라 아프리카에" 에티오피아 형제의 과학자 ...

한국영재학교-KAIST에 진학한 형제

형 "한 산업화 모델로 에티오피아를 바꾸겠다"

동생 "에너지 인프라 아프리카에 만들고 세계로"

한국영재학교에 이어 KAIST에서 과학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에티오피아 형제. 형 비룩(사진 오른쪽)은 로봇과 인공지능, 동생 아벨(사진 왼쪽)은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높다.[사진= 임문홍 에티오피아 교육부 자문관]

에티오피아 청년들의 과학자 꿈이 한국에서 영글어 가고 있다. 한 청년은 로봇 생각하며 함께 생활하는 세상을 꿈꾼다. 다른 한 청년은 아프리카의 에너지 빈곤을 배터리로 끝내겠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비룩(Biruk)과 아벨(Abel) 형제의 이야기다. 형 비룩은 KAIST 졸업을 앞두고 있고, 동생 아벨은 올해 가을 KAIST에 입학한다. 형제는 한국영재학교와 KAIST를 거치며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가교 역할을 담당할 과학자로서 단단하게 성장해가고 있다.

그 시작은 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형제의 아버지와 에티오피아의 교육 자문관을 맡고 있던 한국인 임문홍 자문관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형제 중 비룩을 보게됐고 그의 영민함을 눈여겨 본 후 한국 유학을 추천했다. 두 형제의 가족에게 한국은 한국전쟁 시기 에티오피아 군이 참전한 국가로 낯설지 않았지만 물리적 거리의 부담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가족은 논의 끝에 형에 이어 동생이 한국행을 선택한다.

◇ 형 비룩 "한국의 산업화 경로가 에티오피아의 답입니다"

비룩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피지컬 AI(Physical AI)와 로보틱스다. 소프트웨어 안에만 머무는 지능이 아니라, 실제 세계와 맞닿아 작동하는 지능 시스템이다. KAIST 졸업 후 그는 곧바로 대학원 진학을 택하지 않는다. 한국 AI·로보틱스 산업 현장에 먼저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산업에서 직접 포착한 문제를 연구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 현실에 뿌리를 둔 연구야말로 의미 있는 연구가 됩니다."

그러나 비룩의 시선은 한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한국 산업 현장에서 쌓으려는 경험은 처음부터 에티오피아를 향하고 있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산업화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이미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청사진의 모델은 한국이다.

"한국이 걸어온 산업화의 역사적 궤적은 에티오피아에도 충분히 유효한 모델이라고 확신합니다. 첨단 기술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반을 먼저 닦아야 합니다."

비룩이 구상하는 출발점은 소비가전, 산업용 센서 등 전자제품과 하드웨어 조립 분야다. 거창해 보이지 않는 이 선택에는 분명한 논리가 있다. 한국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세계를 제패하기 전에 먼저 저부가가치 조립 산업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됐듯, 에티오피아도 그 경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 조립 산업이 숙련 인력을 길러내고, 그 인력이 로보틱스 같은 고도화된 산업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한국이 초기 조립 단계를 통해 물리적 인프라와 숙련 인력을 키운 뒤 복잡한 기술로 나아간 것처럼, 저는 그 핵심 원리를 추출해 에티오피아의 사회경제적 맥락에 맞게 적용할 생각입니다. 충분한 산업 경험을 쌓은 뒤에요."

그 꿈의 마지막 그림에는 후배들이 있다. 자신이 걸어온 험난한 길을 다음 세대에게는 덜 험하게 만들어주는 멘토가 되는 것. 비룩이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언어 장벽, 짙은 향수병, 문화 충격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가 고백하듯, 그 시절의 감정적 고통은 즐거운 기억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오히려 그를 설레게 한 것은 학업이었다. KSA의 교육 방식은 에티오피아에서 경험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수업 속도는 훨씬 빨랐고, 내용은 훨씬 깊었으며, 이론보다 실제 적용에 무게를 뒀다. 비룩은 이 변화를 힘겨움이 아닌 보람으로 받아들였다.

"감정적인 어려움과 달리, 학문적 도전은 진심으로 즐거웠습니다. 제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리도록 강제하는 환경이었으니까요."

KAIST 진학 후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렸다. 전 세계에서 모인 뛰어난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높은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이었다. 그러나 비룩은 이 환경 역시 두려움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치열하고 경쟁적인 환경이지만, 저는 바로 그런 환경을 원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진화하도록 하니까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리데타 카톨릭 카테드랄 학교(LCCS)에서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홀로 파고들던 소년은, 이렇게 한국에서 단단해졌다.

◇ 동생 아벨 "아프리카에 청정에너지 인프라 구축"

동생 아벨의 꿈은 에너지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에서 출발해 아프리카의 청정에너지 인프라를 세우는 것, 그리고 그 기술을 세계 무대에 내놓는 것이다.

"세계가 직면한 청정에너지 수요에 실질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지금 쌓고 있는 기술들은 그 혁신의 첫 걸음입니다."

아벨이 한국영재학교 2학년 R&E 프로젝트에서 선택한 주제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 양극 소재 합성 및 분석이었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 기술이다. 화학·물리·수학이 한 점에서 만나는 이 분야는 그가 오래 찾아온 주제였다. 최적의 합성 조건을 탐색하고, 화학양론 비율을 조정하며, 수십 차례 합성과 분석을 반복했다.

수업에서는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NMR, XRD 등 에너지 과학의 핵심 분석 기법을 몸에 익혔다. 그것으로 부족했다. 방학 중에는 YouTube 튜토리얼만으로 Python을 독학해 데이터 분석 과정을 자동화했고, 그래프 이론의 계산적 접근까지 탐구해 스스로 최소 이심률 수열을 찾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현재는 Arduino Uno 마이크로컨트롤러를 독학하며 개인 하드웨어 프로젝트를 설계 중이다.

화학 실험실에서 시작된 관심이 프로그래밍을 거쳐 하드웨어로 뻗어나가는 궤적. 이것은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자로서의 꿈이다.

아벨의 입학 초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같은 기수 수십 명 중 아프리카 출신은 자신뿐이었다. 영어도 모국어가 아니었다. 조별 과제에서 언어 장벽을 이유로 외면받았고,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구였던 스포츠 팀에서도 처음엔 자리를 얻지 못했다.

아벨은 좌절 대신 전략을 택했다. 선생님과 한국인 룸메이트에게 읽어야 할 책과 봐야 할 영상 목록을 요청했다. 주말마다 한국과 미국의 고전을 파고든 끝에 영어는 유창해졌고, 한국어도 일상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됐다. 국제교육연구(IER) 클럽과 TOPIK 스터디 그룹을 직접 만들어 한국 학생과 유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성적도 뒤따랐다. 물리, 화학, 수학에서 상위권 점수를 받기 시작하자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 친구들의 튜터도 됐다. 한국영재학교를 졸업할 때 아벨의 성적은 국제 학생 GPA 2위였다. 7년 만에 국제 학생에게 수여된 일반화학 우수상도 받았다. 처음엔 팀에 끼지도 못했던 축구와 농구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두 형제를 한국으로 이끈 출발점은 뜻밖에도 평범한 점심 자리였다. 2018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공과대학(AAiT) 개혁 프로그램을 총괄하던 아버지는 사무실에서 한국인 협력자와 업무 회의 중이었다. 마침 10학년 국가시험을 치르던 16살 비룩이 점심을 먹으러 찾아왔다. 임문홍 에티오피아 교육부 자문관은 총명해 보이는 소년에게 눈길을 줬다. 아버지가 성적표를 꺼내 보이자, 임 자문관은 한국영재학교를 소개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AAiT 개혁을 추진하며 임 자문관과 협력해왔고, 그 과정에서 한국 교육 시스템과 기술 발전의 힘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나라에 어린 아들을 보내는 두려움보다, 그 확신이 더 컸다.

지구 반대쪽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기 위해 그는 아내를 설득하고 큰 아들 비룩이 2019년 3월 한국영재학교에 입학했다. 형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본 아벨도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두 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에서 뿌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아들을 한국으로 보낸 것은 단순한 교육 선택이 아니었다. 에티오피아의 미래를 한국의 과학기술 토양에 심는 일이었다"며 한국에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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