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국책은행 노조 첫 공동 대규모 집회
“정책금융·금융 생태계 훼손”…대선 정책협약 이행 촉구
與 김현정 “국책은행 경쟁력이 지역 경제 살리는 길”
(앞 줄 왼쪽부터)류장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IBK기업은행 지부장, 정은주 한국수출입은행 지부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구호를 외치고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주간한국 강민혜 기자]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싼 금융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은)·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 노동조합은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처음으로 공동 대규모 집회를 열고 국책은행을 지역 이전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지난달 NH농협지부가 농협중앙회 지역 이전에 반대하며 집단 행동에 나선 데 이어 국책은행 3사까지 공동 투쟁에 가세하면서 금융권의 지역 이전 반대 움직임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 소속 산은·기업은행·수은 지부는 이날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국책은행 지역 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약 2000명이 참석했다. 산은 900여 명, 기업은행 800여 명, 수은 350여 명 규모다. 3사 노조가 지역 이전 문제를 놓고 공동 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에는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을 포함해 금융노조 산하 지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도 자리했다. 조합원들은 ‘국책은행 뒤흔드는 졸속이전 결사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지역 이전 중단을 요구했다.
3사 지부장들은 공동 결의문에서 “산은, 기업은행, 수은은 국가 전략산업 육성, 중소기업 지원, 수출 경쟁력 강화와 경제 위기 극복의 최전선에서 정책금융이라는 국가적 책무를 수행했다”며 “국책은행 입지는 획일적인 이전 원칙이 아니라 정책 수행의 효율성과 금융 생태계,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금융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국가 금융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정은 결코 미래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균형발전의 필요성 자체에는 동의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국책은행 본점을 물리적으로 옮기는 방식보다 지역 산업과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공급을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인 균형발전이라는 주장이다.
지부장들은 “국가균형발전은 반드시 추진돼야 할 시대적 과제”라면서도 “균형발전은 금융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책은행 지역 이전 추진을 재고하고 정책금융 경쟁력과 국가균형발전을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은주 수은 지부장은 “3대 국책은행은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서울이라는 정책금융 최전선에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금융노조 노동자들의 연대로 반드시 (지역 이전을)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윤석구 전국금윤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업은행을 대구로 보낸다거나 NH농협지부를 나주나 부산으로 보낸다는 둥 말이 많았다”며 “정책협약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 산은은 특수금융과 정책금융의 최고 집행자로 반드시 여의도에서 다른 금융기관과 제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금융 클러스터를 위해 산은 수은 여의도, 기은 을지로 최전선에서 제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국책은행 이전은 국가 정책금융 체계와 경쟁력, 수많은 노동자의 일터와 삶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정부와 정치권은 국책은행을 지역별 유치 대상으로 저울질하고 있다. 산은은 국가기관산업 지원과 구조조정을 담당하고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버팀목이다. 수은은 수출금융과 해외 투자 공급망 안정, 경제 안보를 책임진다”고 강조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김 위원장은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금융생태계를 일방적으로 분산하면 신속한 금융 지원과 국가적 위기 대응 능력까지 약화된다”며 “피해는 국책은행 노동자들에게만이 아닌 산업 전환을 겪는 기업과 노동자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출 기업과 국민 경제 전체가 그 부담을 떠안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주소만 옮기는 방식의 지역 이전은 안 된다”며 “충분한 검증과 사회적 논의를 토대로 지역과 국가 경제가 함께 발전할 지속 가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에 엄중히 촉구한다. 국책은행의 일방적 지역 이전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국책은행별 기능과 산업적 경계, 정책금융 경쟁력과 노동자의 삶에 미칠 영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결과를 달라”고 요구했다.
‘인력 이탈’·‘네트워크’·‘인재 확보’ 우려
산은 소속 직원 “본점 이전 막으며 많은 것 잃어”
산은 소속 직원들은 과거 부산 이전 추진 과정에서 경험한 인력 유출과 조직 내부 갈등을 우려했다. 정유진 산은 대리는 “본점 이전을 막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며 “정권이 바뀌었는데 나아진 것 하나 없이 우리는 이 자리에 다시 모였다”고 말했다.
김현준 산은 지부장은 “왜 이전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다 안다”며 “(산은은 이전 저지 싸움에서) 승리해본 조직이다. 지난 윤석열 정부 때 물고 늘어지며 가열차게 투쟁해 승리를 점했다. 지난해 6월 5일 윤 전 대통령 탄핵 후 강석훈 산은 회장이 떠나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산은 노조는 또 과거 본점 이전 논란 과정에서 실무 인력 약 10%가 조직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정책금융 역량은 후퇴하고 국가 전략산업 육성에도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수은은 금융업 특유의 인적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강주성 수은지부 부위원장은 “한 건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수십, 수백 번의 회의를 고객, 대주단과 진행한다”며 “해외 발주처와 사업주를 밤낮없이 만나고 국내외 금융 회사들과 머리를 맞대며 국제기구와 대사관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기업들의 세계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부위원장은 또 “금융은 사람이고 금융은 신뢰이고 금융은 네트워크”라며 “50년에 걸쳐 쌓인 네트워크가 본점 주소 하나 옮긴다고 하루아침에 옮겨질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기업은행에서는 직원의 생활 기반과 장기적인 인력 확보 문제가 나왔다. 기업은행 본점에서 근무하는 노희진 대리는 자신을 지난해 결혼한 신혼이라고 소개한 뒤 “요즘 우리 부부가 ‘본점이 지역으로 가면 우린 어떡하지’, ‘아이를 낳으면 주말 부부가 돼야 하나’, ‘집을 어디에 구해야 하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거 계획, 가족 계획, 그리고 미래의 계획까지 다 망가져 버렸다”며 “서울에 있는 기업은행을 보고 입사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수많은 후배와 취업 준비생들이 기업은행 지원을 후순위로 미룰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때 약속 어디 갔나”
정책협약 꺼내든 금융노조
이날 집회에서는 지난해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민주당과 금융노조가 체결한 정책협약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융노조 측은 당시 협약에서 무분별한 금융기관 지역 이전이 국가 금융 경쟁력 저하와 고객 불편, 업무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는 데 공감하고, 이전에 앞서 객관적인 효과 분석과 이해당사자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 노조도 이를 문제 삼았다. 류장희 기업은행 지부장은 대선 당시 정책협약을 거론하며 현재 진행되는 지역 이전 논의를 비판했다. 3사 노조는 정부가 1차 공공기관 이전의 효과를 먼저 검증하고 금융기관 지역 이전이 국가 금융 산업과 정책금융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단순 약속 파기가 아니라 폭거”라며 “폭거에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은 한발 더 나아가 정부에 공식적인 노정 협의를 요구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국책은행별 기능과 산업적 연계, 정책금융 경쟁력, 노동자 삶에 미칠 영향을 먼저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국노총과 금융노조, 해당 기관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노정 협의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노동계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이전을 강행할 경우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與 김현정 “이번에도 끝까지 연대”
“지역 균형 발전, 정책자금 공급이 중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여당인 민주당 소속 김현정 의원이 직접 집회에 참석해 연대사에서 국책은행 지역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점도 눈길을 끌었다. 금융 노동자 출신이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김 의원은 “국책은행이 왜 서울에 있어야 하느냐”고 운을 뗀 뒤 금융기관과 기업, 외국 공관 등이 수도권에 집적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김 의원은 “실시간 금융 외교와 국가적 프로젝트 협의가 원활히 이뤄져야 정책금융의 효율성도 극대화된다”며 “국책은행은 기업 지원과 정책금융 수요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균형발전에 대해서는 국책은행 본점 이전보다 정책자금 공급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지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국책은행 본점 이전이 아니라 지역 기업에 적기에 충분한 저리의 정책자금이 원활히 투자되는 것”이라며 “국책은행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기업에 최적의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지역 기업에도 더 나은 금리로 지원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역 경제를 실질적으로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산은 부산 이전 반대 투쟁을 거론하며 “산은 지역 이전 반대에 함께했듯 이번에도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다만 집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발언의 수위를 낮췄다.
김 의원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공기관 지역 이전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지금은 확정된 것도 아니고, 저도 지금 들은 게 없다”며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미리 이렇게 집회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국책은행은 일반 공공기관과 다른 여러 특성이 있는 만큼 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연대사를 통해 이전 논의 과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한 의원은 “정무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저조차 3대 국책은행이 지역으로 이전할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어떤 근거로 이런 논의가 이어지는지 전혀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보다 노동자들과 노정 협의를 통해 국가균형발전과 금융 시장 선진화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절차를 이행해야 하는지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게 순서”라며 정부에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를 요구했다.
집회 말미 3사 노조는 “국책은행 경쟁력과 정책금융 기능을 훼손하는 지역 이전 추진을 끝까지 저지한다”며 “국가 경제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 수립될 때까지 모든 역량을 모아 투쟁한다”는 공동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현인 NH농협지부 위원장 직무대행(왼쪽)은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에게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관련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NH농협지부 의견을 전달했다. 사진=손재하 기자
강민혜 기자 mine@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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