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중대한 변곡점에 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내 기업들이 거둔 기술이전(Licensing-out) 성과는 총 180건, 계약 규모로는 87조1578억원이다. 지난해 한 해에는 21.1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기술수출 실적을 달성하며 'K-제약바이오' 저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성과 뒤에는 뼈아픈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기술수출로 대규모 로열티를 벌어들일 수 있게 됐지만, 결국 신약이라는 '최종 완제품'을 우리 손으로 전 세계 시장에 팔아본 경험은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기술이전 위주인 '천수답'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30일, 보건복지부 내에 '제약바이오산업과'를 신설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제약'이라는 명칭이 담긴 부서가 생긴 것은 정부 역사에서 최초다. 이는 제약바이오를 단순히 보건의료 내 한 영역이 아닌, 국가 미래를 책임질 '핵심 성장 동력'이자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같이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제약바이오산업과에 첫 수장으로는 임강섭 과장이 임명됐다. 임강섭 과장은 제약바이오산업과 신설 의미에 대해 "이제는 국내 기업이 직접 3상을 완주하고 미국 FDA 허가를 받아 전 세계에 직접 판매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가야 할 시기"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임강섭 보건복지부 제약바이오산업과 과장이 1일 열린 '메디파나뉴스 창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연사로 나와 '한국제약바이오 혁신적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 지원'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메디파나뉴스
복지부, 제약바이오 전방위 지원 전략 본격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적극 지원해 글로벌 5대 강국으로 성장하겠다는 정부 전략은 지난 1일 열린 '메디파나뉴스 창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도 재차 확인됐다.
이날 발표에 나선 임강섭 과장은 올해를 원년으로 삼아, 향후 5년 내 'K-신약의 글로벌 직판' 성공 모델을 반드시 창출해내겠다는 목표 하에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올해에는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에 전년 대비 82.2%가 늘어난 4728억원 예산 집행이 이뤄진다.
이에 따르면 자체 신약 개발에서 가장 큰 장벽은 '임상 3상'이다. 임상 3상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고 회수 기간이 길며, 실패 리스크가 매우 높아 민간 벤처캐피털(VC)조차 투자를 꺼리는 대표적인 투자 사각지대다. 정부는 이 '데스밸리(Death Valley)'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파격적인 금융 지원책을 올해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먼저 보건복지부 출자액 600억원을 마중물로 해 1500억원 규모 '임상 3상 특화펀드'를 신규 조성한다. 이는 자금력이 부족해 좋은 후보물질을 들고도 글로벌 임상을 포기해야 했던 중견·중소 제약사들에게 단비가 될 전망이다.
이에 관해 임강섭 과장은 "2a상 쪽에 투자가 더 많이 이뤄져야 된다는 말씀도 있는데,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다만 임상 완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 국내 산업이 갖는 큰 한계여서, 완주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3상 단계 물질 중 유망한 쪽에 집중 투자를 해서 완주 경험을 갖추는 것 자체가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내년까지 1조원 규모 메가펀드를 조성함과 동시에, 약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와 연계해 향후 5년간 바이오·백신 분야에 총 11.6조원을 집중 투자하는 거대 자본 라인을 구축한다. 이미 조성된 5766억원 규모 'K-바이오·백신 펀드'와 더불어, 올해에는 200억원 복지부 출자액을 추가해 7호 펀드 신규 조성을 추진함으로써 신약 개발 전주기에 걸친 끊김없는 자금 공급망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산업 체질 개선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시작으로 복지부는 지난달 26일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 개편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편 방향은 매출액 대비 R&D 비중이 높고 실질적인 혁신 역량을 갖춘 기업을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선별해 집중 지원코자 하는 데 있다.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는 임상 3상 요건을 완화해 동등성이 확실한 경우 절차를 간소화한다. 또 혁신 기술이 시장에 신속히 진입할 수 있도록 올해 내 보건의료기술진흥법을 개정함으로써 '규제샌드박스'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자로 올라설 수 있는 시기에 와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료=보건복지부
패러다임 전환은 기회요인…AI 신약개발 본격 지원
복지부는 AI(인공지능)를 통한 시장 판도 변화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글로벌 신약개발 경쟁에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속도'다. 전통적인 신약개발 방식은 10년이 넘는 시간과 2조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 이에 AI 산업이 본격화된 후부터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기간과 비용 소모를 줄이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올해부터 'AX(AI Transformation) 대전환'을 목표로, 총 290.4억원 예산을 제약바이오 산업에 집중 투입한다.
핵심은 '신약 개발 전주기 AI 적용'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구조기반 약물 발굴부터 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 'K-MELLODDY', 임상시험 최적 설계를 지원하는 플랫폼 구축까지 총 4개 주요 사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특히 87.4억원이 투입되는 '구조기반 AI 신약개발지원' 사업은 신약 후보물질 확보 효율성을 극대화해 국내 기업들이 '선도자(First-mover)'로 시장에 진입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임강섭 과장은 "AI 기술 활용을 통해서 신약개발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 기회 요인을 국내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현재 관련해 4개 사업을 1400억원 규모로 추진하고 있는데, 내년도에 1000억원 규모 AI 신약개발 사업을 새롭게 구상하고 있고 더 많은 투자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료 자급화, 인재 양성, 혁신생태계 기반까지 강화
산업 지속 가능성을 위한 '기초 체력' 강화에도 예산이 투입된다. 현재 11.9%까지 떨어진 낮은 원료의약품 자급도와 5~7% 수준에 불과한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해외 의존도는 국가 안보 취약점으로 지적돼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올해 원부자재 공급 안정화와 원료 국산화 지원 등에 총 158억원을 투입한 공급망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기반 마련에 착수한다.
2027년까지 11만명 이상 핵심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올해 첨단바이오 융합인재와 AI 미래인재 양성에도 대규모 예산을 배정했다. 'K-Bio Star Challenge Program'과 최고급 해외 인재 유치 지원 사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엘리트 인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혁신 생태계 기반을 위한 거버넌스 변화를 추진 중이다. 이미 지난달 3일에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바이오헬스 정책을 총괄하는 범정부 조직인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는 기존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와 '국가바이오위원회'를 통합한 것으로, 제약·바이오 정책 패스트트랙을 구축한다.
이에 대해 임강섭 과장은 "한 4월 중순에는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가 1차 회의를 하면서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서 R&D나 규제, 투자 등 전 분야를 망라해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고, 관계부처 간에 심리스한 지원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전경. 사진=이정수 기자
2030 글로벌 5대 강국을 향한 '혁신의 골든타임'
복지부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위탁개발생산(CDMO)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서울은 전 세계 도시 중 임상시험 점유율 최상위권을 기록할 만큼 뛰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에 정부는 '국산 글로벌 신약'에 최종 목표를 두고 있다.
이는 2030년까지 블록버스터급 신약 3개를 창출하고 글로벌 5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에서도 확인된다. 이를 위해 제약바이오산업과 신설을 필두로 구체적인 예산과 실행 방안까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임강섭 과장은 이날 발표 말미에 "제약바이오산업과가 올해 처음 출발을 해서 정말 할 일이 많은데, 개별 분야마다 세부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될 것도 많다. 임상시험 경쟁력 강화도 필요해서 올해 관련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고, 제약바이오 스타트업 육성 방안,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전략 등도 올해 새롭게 수립을 할 계획"이라며 "현장에 계신 분들 의견을 충분히 담아서 관계부처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고, 예산까지 확보해서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전환할 수 있는 '혁신의 골든타임'에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부와 기업 간에 긴밀한 협력이 이뤄진다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