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인해 미국 경제가 착시 현상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관세와 이란 전쟁과 같은 엄청난 사건도 AI 투자 규모에 가려진 것은 물론, AI 투자 규모 급증도 사실은 장비와 부품 가격 상승 영향이 크게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AI가 미국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계를 넘어, 주식 시장과 기업 이익, 경제 성장, 무역, 심지어 심리 상태, 특히 고용 시장에 대한 인식까지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빅테크들이 발표한 AI 투자 규모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이 발표한 올해 자본 지출(CAPEX) 규모는 7000억달러(약 1030조원)가 넘는다. 모건 스탠리는 내년에는 1조1000억달러, 즉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3%에 해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국방비 예상치를 넘어서는 규모다.
하지만 현재 AI 인프라 비용 증가는 단순히 데이터 센터 규모 확장에 따른 것이 아니다.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부품 가격이 훨씬 더 비싸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첨단 AI 컴퓨팅 시스템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핵심이다. 기술 기업들은 공급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메모리 제조업체들이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다.
그 영향은 엄청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주 연간 자본 지출 1900억달러 중 250억달러가 "부품 가격 상승" 때문이라고 밝혔다. 구글과 메타도 자본 지출 계획을 늘리면서 부품 가격 상승을 이유로 들었다.
어쨌거나 이로 인해 1분기 미국의 실질 GDP는 2%라는 양호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1.6% 증가에 그쳤다. 주택과 사업용 건물, 트럭 및 항공기와 같은 운송 장비에 대한 투자는 감소했다.
반면, 기술 장비에 대한 투자는 43%, 소프트웨어는 23%, 데이터센터 건물은 22% 급증했다.
여기에 AI 지출의 상당 부분은 미국 생산이 아니라 첨단 반도체 같은 수입 장비에 투자된다. 어니 테데스키 스트라이프 수석 경제학자는 컴퓨터 관련 총지출이 1분기 2% 성장률에 1.7%포인트 기여했다고 계산했다.
특히 수입을 제외하면 기여도는 0.4%포인트로 떨어진다. 또 미국 수입이 1분기에 급증해 무역 적자가 확대된 것도, 대만의 무역 흑자가 GDP의 24%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도 바로 AI 때문으로 꼽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4월 한달 동안 주가가 각각 31.9%, 59.4% 상승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통해 미국의 무역 적자와 다른 국가들의 무역 흑자를 줄이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AI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적중했을 수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S&P 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유 중 하나도 시가총액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매그니피센트 세븐' 기술 기업들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 우려 이후 S&P 500 지수는 7% 상승했다. 500개 기업 모두에 동일한 가중치를 부여했을 때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AI로 인한 왜곡은 주가뿐 아니라 기업 이익에도 영향을 미쳤다. 팩트셋(FactSet)은 S&P 500 기업들의 1분기 총수익이 27%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매그니피센트 7만 따지면 61% 증가에 달하며, 나머지 493개 기업의 수익 증가는 16%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마이크론과 같은 반도체 기업들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다.
이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경제적 분배 불균형을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윤이 급증하는 가운데, 임금 및 복리후생은 1분기에 연 3.1% 증가에 그쳤으며,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0.5% 감소했다고 미국 노동부는 7일 발표했다. 전체 기업 생산량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54.1%로, 1947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AI는 데이터와 체감 사이의 괴리를 심화시킨다는 평이다. 기업과 투자자들에게는 활력을 불어넣지만,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최근 일부 기업들은 AI의 효율성을 이유로 들며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갤럽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 직원 중 23%는 5년 안에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WSJ은 임금이 정체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조차 또 다른 왜곡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AI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한다고 하지만, 민간 부문의 해고 발표 건수는 지난해보다 낮다는 것이다. 경영 실패를 인정하는 것보다 AI를 이유로 감원을 단행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이는 변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WSJ은 만약 세계가 갑자기 AI에 대한 투자를 중단한다고 해도, 광범위한 경기 침체로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데이터센터의 72%가 단 33개 카운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건설 부진도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주가와 이익은 하락하겠지만, 임금에 더 의존하는 일반 노동자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런 점은 국내에도 시사점이 크다. 한국은 AI 메모리 공급망의 핵심 수혜국이지만, 반도체 업황이 일부 빅테크의 AI 투자 확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임대준 기자 ydj@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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