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점유율 57%·영업이익 마이크론의 2배…PER은 마이크론의 절반
신주 발행 vs 자사주 소각 논쟁, ADR의 성패를 가를 진짜 변수로 부상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한 SEC 등록신청서(Form F-1)를 25일 비공개 제출하면서, 반도체 업계 안팎의 시선이 한 가지 질문에 쏠리고 있다. "왜 지금, 왜 ADR인가." 답은 숫자 안에 있다.
SK하이닉스의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은 57%다. 마이크론(21%)을 두 배 이상 앞선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47조원을 넘겨 마이크론(약 24조원)의 두 배에 육박했다. 그런데 주가수익비율(PER)은 5배대로, 마이크론(12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기술 1위, 실적 1위, 주가는 반값. 이것이 SK하이닉스가 ADR을 선택한 핵심 배경이다.
이 역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극명한 사례로 꼽혀왔다. 한국 증시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외국인 수급·환율 등 매크로 변수에 일괄 묶여 거래된다. 반면 나스닥에 상장된 마이크론은 AI·반도체 사이클이라는 산업 내러티브 위에서, 엔비디아·AMD와 같은 선반에 놓여 평가받는다. 같은 HBM을 만들어도, 어느 시장에서 거래되느냐에 따라 밸류에이션이 달라지는 구조다.
ADR은 이 구조를 뒤집으려는 시도다. 미국 현지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를 마이크론과 직접 비교하고 매수할 수 있게 되면, 단순한 '한국 반도체주'가 아니라 'AI 인프라 플레이어'로 재정의되는 효과가 생긴다. 나아가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 편입이 이뤄지면 글로벌 패시브 자금이 자동 유입되고, 이것이 밸류에이션 프리미엄 → 자사주 소각 → 추가 주주환원으로 이어지는 '가치 재평가 체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메리츠증권 김선우 연구원은 "ADR이 폭발적 재평가 동력을 입증할 경우, 향후 자사주 매입을 통한 ADR 전환도 추진 가능해진다"며 "ADR 추진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 소각 또는 SK스퀘어의 SK하이닉스 지분 추가 매입은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메모리 업황이 2분기 CSP(클라우드 서버) 수요 폭발에 이어 3·4분기 모바일 중심으로 추가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영업가치의 주주가치 이전이 금융시장 내 최대 관심사로 부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ADR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느냐가 최종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5일 "신주 발행 방식의 ADR은 기존 주주의 가치를 희석하고 상법 개정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공개 반발했다. 포럼은 "자국 발행 주식 일부를 소각하고 그 주식을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IBK자산운용의 한 펀드매니저도 "기존 주식을 활용해 ADR을 추진할 수 있는데 굳이 신주를 발행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반발의 핵심은 ADR 자체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상장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결국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IB 주관사 선정, 발행 규모, 신주 발행 비율, 자사주 소각 계획이 어떻게 설계되느냐다. 이 세부 내용들이 공개될수록 SK하이닉스의 주당 가치는 재평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SK하이닉스 ADR은 단순한 해외 상장이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문제를 시장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이자, 한국 대형주가 어디서,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지에 대한 실험이다.
사진=SK하이닉스
민병권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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