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간)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가운데)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왼쪽)가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GTC 2026'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 상장 준비를 위해 주식예탁증서(ADR)를 발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나스닥 상장을 본격화하기 위한 선제적 작업으로 분석된다.
상장이 실현되면 천문학적 자금조달과 기업가치 재평가를 거쳐 SK하이닉스가 꿈꾸는 세계 최대 메모리기업으로 거듭날 기회를 잡게 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주주가치 희석과 메모리 사이클에 따른 투자 위험 부담 등 리스크도 엿본다.
◆세계적 메모리 기업으로… 미국 상장 추진
27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Form F-1)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로 제출했다. 올해 중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공모 규모, 방식, 일정 등 세부 사항은 논의 중이다.
ADR은 해외 투자자가 자국 증시에서 외국 기업 주식을 간편하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예탁증권인데, 한국에서 발행된 SK하이닉스 주식을 미국 은행(예탁기관)이 대신 맡아두고, 그 주식을 기초로 미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영수증 형태의 증권을 새로 찍어내는 구조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열린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회의 ‘GTC 2026’에 참석해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 계획을 언급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며 대규모 투자 재원 확보에 나선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나스닥 상장으로 100조원 규모의 순현금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5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AI 시대에는 설비 투자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고, 안정적인 투자 집행을 위한 재무 건전성이 필수적”이라며 미국 상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투자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인 만큼 안정적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해 청주 생산시설, 미국 패키징 공장 등 주요 거점에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가 예정됐으며, 극자외선(EUV) 장비 도입 등 첨단 공정 투자도 병행되고 있다.
미국 상장에 성공할 시 자금조달 외 SK하이닉스가 얻는 이점은 크다. 단숨에 ‘한국의 메모리 업체’에서 ‘글로벌 AI 인프라 핵심 기업’으로 기업 밸류에이션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핵심이다.
또 미국 증시 주요 메모리 상장사인 마이크론, 샌디스크 등과 직접 경쟁을 통해 삼성전자와 1:1 구도로 경쟁하는 국내 시장보다 체급이 커지는 효과도 기대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접근성도 높아지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탈출도 주요 장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상장에 성공하고 오랜 시간 검증이 완료되면 네덜란드의 ASML이나 대만의 TSMC와 함께 SK하이닉스가 한국 기업 최초로 나스닥100에 편입되는 것도 꿈은 아니다”고 말했다.
◆"상장 명분 있나" 지적 속 메모리 사이클 우려도
SK하이닉스 이천 공장. 사진=천성윤 기자
다만 SK하이닉스의 미국 증시 상장에 대한 반대 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25일 논평을 내고 SK하이닉스의 ADR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잉여현금흐름이 넘치는 상황에서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ADR 신주 발행 방식은 주주보호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추정에 따르면 2028년까지 약 190조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하고도 672조원의 잉여현금흐름이 예상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도 약 35조원의 현금을 보유한 상황에서 굳이 지분 희석을 감수하면서 상장의 실익이 있냐는 문제 제기다.
SK하이닉스가 본격적으로 상장하기 전 진행하는 ADR 규모는 10조~15조원 수준이 거론된다. 이 액수는 SK하이닉스의 현재와 미래 예상되는 현금 보유량에 비하면 결정적 액수가 아니기 때문에 신주 발행을 감행할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과잉 공급 우려도 SK하이닉스 상장에 리스크로 꼽힌다. 메모리의 역사는 항상 사이클에 얽매여 왔다. 투자가 몰리고 공급이 폭발하면 과잉으로 인해 가격이 붕괴되며 메모리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 상황이 반복됐다.
현재 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AI 메모리 수요가 수년간 견조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SK하이닉스가 상장 후 증설을 완료하는 5~10년 후 시점에서 공급과잉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SK하이닉스는 미국과 한국 증시에서 모두 충격을 받는 ‘크리티컬 데미지’가 발생한다는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때문에 수요가 끝없이 늘 것처럼 보이지만,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이 전부 증설하면 공급과잉으로 귀결될 여지가 있다”며 “고대역폭메모리(HBM)는 프리미엄 제품이라 현재 시장에 부족하게 보이지만 생산이 너무 많아지면 가격이 폭락하는 메모리 사이클에 귀속되는 것은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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