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전방위적 계열사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와 역대급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동시에 추진하며 파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방만했던 포트폴리오를 인공지능(AI)과 바이오 등 미래 핵심사업 중심으로 재편(리밸런싱)하고, 이를 위해 확보한 막대한 실탄을 글로벌 M&A 시장에 투입하겠다는 전략이다. 과거 ‘미운 오리’였던 솔리다임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M&A 성과를 입증한 가운데, SK는 이제 실리콘밸리를 무대로 한 15조 원 규모의 차세대 빅딜을 정조준하고 있다.
고강도 자산 매각으로 굴린 ‘M&A 실탄’…두산·KKR 등 참전
SK그룹은 시장 유동성 축소와 배터리 등 주요 사업의 위기 신호에 대응해 기존 계열사의 매각 및 합병을 골자로 한 리밸런싱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번 자산 매각의 핵심은 그룹 내 알짜 자산으로 꼽히는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이다.
최근 두산그룹이 SK실트론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매각 대상은 SK㈜가 보유한 경영권 지분 70.6%이며, 인수 금액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2조 원 초반대에 형성될 전망이다. 다만 최태원 회장의 개인 보유지분 29.4%는 공정위와의 사익편취 관련 법적 분쟁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 점을 고려해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SK에코플랜트의 환경 자회사인 리뉴원과 리뉴어스 매각전은 글로벌 사모펀드 KKR이 1조 원 중반대의 금액을 제시하며 유력 후보로 부상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광양, 파주 등지의 LNG 발전소를 담보로 5조 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고강도 리밸런싱을 통해 SK㈜는 별도 기준 순차입금을 1년 만에 약 2조 원 감소시키며 재무 건전성을 확보했다.
4조8000억 자사주 소각…‘주주환원’으로 정면 돌파
재무구조 개선 성과는 파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이어졌다. DS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SK는 임직원 보상용을 제외한 자사주 1469만 주(약 4조 8343억 원 규모)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시가총액의 약 20%에 달하는 규모다.
미래 사업 투자나 부채 상환에 쓸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소각에 투입한 것은 상법 개정 이슈를 정면 돌파하고 주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다.
배당성향을 28% 수준으로 유지하고 주당 배당금을 올해 7000원에서 내년 8000원으로 10% 이상 증액해 주주들에게 분리과세 혜택을 제공하도록 설계했다.
‘미운 오리’ 솔리다임의 부활…15조 글로벌 AI M&A 예고
SK의 M&A 역량은 최근 자회사 솔리다임(구 인텔 낸드사업부)의 실적을 통해 재평가받고 있다. 2020년 11조 원에 인수된 이후 2023년까지 누적 손실만 7조 원에 달해 ‘악몽’으로 불렸으나, AI 데이터센터 열풍을 타고 대반전이 일어났다.
기업용 SSD(eSSD) 수요 폭발에 힘입어 솔리다임은 지난해 매출 8조 8488억 원, 당기순이익 8307억 원을 기록하며 4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유공, 한국이동통신, 하이닉스에 이은 SK의 ‘빅딜’ 성공 신화를 재확인시킨 사례다.
SK는 지난 빅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4년간 총 15조 원(약 1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자금을 미국 실리콘밸리 법인에 투입해 AI 컨트롤타워를 구축한다. 이 자금은 단순 투자를 넘어 메모리 확장 기술(CXL)이나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대형 M&A에 활용될 전망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비상장 자회사 SK팜테코가 일라이릴리의 비만 치료제 원료 의약품 생산에 착수하며 글로벌 CDMO 시장에서 공격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SK그룹의 행보는 비주력 자산을 과감히 정리해 미래 기술을 사들이는 전형적인 ‘M&A 명가’의 생존 공식을 보여준다. 특히 적자의 늪에 빠졌던 솔리다임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꿔놓은 성과는 향후 추진할 15조 원 규모의 AI 투자 전략에 강력한 명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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