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SK그룹이 AI 반도체 사업의 무게중심을 미국으로 옮기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 ADR 상장 추진과 미국 AI 투자 확대, 첨단 패키징 생산 거점 구축이 맞물리면서 북미 중심 AI 공급망 체계가 그룹 차원 전략으로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SK하이닉스의 AI 투자와 생산·기술 거점 구축이 동시에 속도를 내면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해외 투자 확대를 넘어 북미 AI 생태계 안에서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SK하이닉스 중심의 투자 전략으로 인식됐던 미국 사업에 지주사 SK㈜와 SK이노베이션까지 직접 자금 투입에 나서면서, 그룹 차원의 전략 자산 재배치 성격이 더욱 짙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은 이러한 전략 변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신청서(Form F-1)를 비공개 제출했으며, 글로벌 투자은행들을 주관사단으로 선정했다. 시장에서는 100억 달러 안팎의 발행 규모가 거론된다. 회사 측은 구체적인 일정과 공모 구조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르면 6~7월 상장 가능성도 거론된다.
표면적으로 ADR 추진 목적은 글로벌 투자자 접근성 확대와 기업가치 제고에 맞춰져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AI 메모리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시장 내 투자 기반을 확대하고 현지 사업 확장 여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미도 함께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AI 사업 축은 미국 현지 법인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미국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을 AI 투자·솔루션 전담 법인 ‘AI 컴퍼니(가칭)’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총 100억 달러 규모를 단계적으로 출자하는 구조로, 기존 낸드 사업은 별도 신설 법인으로 분리 운영한다는 계획이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기존의 미국 낸드 사업 종속법인인 ‘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의 자산과 인력 일체를 신설 법인인 ‘Solidigm Inc.(솔리다임)’으로 양도하는 절차를 마쳤다. 솔리다임이 현지 낸드·기업용 SSD 사업을 맡고, AI 컴퍼니는 혁신 기업 투자와 협업,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신사업 기능을 담당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도 본격화됐다. SK㈜는 2억5000만 달러, SK이노베이션은 향후 4년간 3억8000만 달러를 각각 AI 컴퍼니에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SK하이닉스 단독 투자에서 벗어나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미국 AI 사업 확장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생산 인프라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인디애나주 첨단 패키징 공장 부지에서 실질적인 공사 단계에 진입했다. 총 투자 규모는 38억7000만 달러에 달하며, 2027년 말 완공과 2028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차세대 HBM 기반 AI 메모리가 핵심 생산 품목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 생산능력 확대를 넘어 북미 고객사 대응 체계를 현지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줄여 공급 대응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거점 확보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미주법인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소재 첨단 제조 빌딩을 약 4950만 달러에 매입했다. 해당 시설은 지난 2024년 구축한 산호세 신사옥과 연계해 미국 내 AI 사업과 기술 대응 거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동시에 AI 전략 인력 채용도 진행하며 현지 조직 확대에 나선 상태다.
기술 축에서는 SKC 자회사 앱솔릭스가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SKC는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 가운데 약 5900억원을 앱솔릭스 글라스기판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인텔과 SK하이닉스 출신 강지호 대표 체제로 전환하며 미국 조지아 공장의 양산 준비도 현지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앱솔릭스를 SK그룹의 차세대 AI 패키징 기술 확보 전략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결국 SK그룹의 미국 행보는 단순 투자 확대를 넘어 AI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 중심의 북미 사업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ADR 상장 추진부터 AI 투자 법인 운영, 인디애나 생산 거점 구축, 산호세 현지 거점 확보, 앱솔릭스 기술 투자까지 각 축이 맞물리며 북미 AI 공급망 대응 역량을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미국 투자가 계열사별 사업 확대 차원이었다면, 지금은 AI 메모리와 패키징 공급망 전체를 미국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흐름에 가깝다”며 “특히 엔비디아 중심으로 형성되는 북미 AI 생태계 안으로 얼마나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느냐가 향후 SK그룹 반도체 전략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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