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모습 [사진=Unsplash]
“2년·2억 투자 망설인다”…흔들리는 MBA 신화
미국 MBA(경영대학원) 시장이 거대한 전환점에 들어섰다. 한때 글로벌 기업 임원과 월가 진출의 상징으로 불렸던 MBA 과정이 이제는 학생 확보를 위해 등록금을 절반 가까이 낮추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최근 미국 주요 대학들은 등록금을 최대 50%까지 감면하거나 대규모 장학금을 제공하며 지원자 유치 경쟁에 나섰다. AI(인공지능) 확산과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수년간 학업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급감하자, 대학들이 사실상 ‘가격 할인 경쟁’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MBA는 고액 연봉과 글로벌 인맥 형성, 커리어 점프를 보장하는 대표적인 엘리트 코스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생성형 AI 등장 이후 산업 구조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2년 뒤에는 지금 배우는 내용이 이미 낡아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수억원을 들여 MBA를 가느니 AI 실무 경험을 쌓는 편이 낫다”는 인식도 강해지고 있다. 온라인 AI 교육과 단기 자격증, 기업 연계형 프로그램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MBA의 존재 가치 자체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업계에서는 이번 현상을 단순한 지원자 감소가 아니라 ‘학위 중심 시대’ 자체가 흔들리는 신호로 보고 있다.
등록금 최대 50% 할인…美 대학들 “학생부터 확보해야”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주요 경영대학원들은 최근 등록금 인하와 장학금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부 대학은 사실상 ‘반값 MBA’를 내세우며 공격적인 학생 모집 전략에 나섰다.
존스홉킨스대 케리 비즈니스스쿨은 메릴랜드 지역 대학 졸업생들에게 재무·헬스케어 석사 과정 등록금의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퍼듀대 미치 대니얼스 경영대학원는 온라인 MBA 등록금을 약 40% 인하했고,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역시 AI 중심 교육 과정을 강화하며 일부 프로그램에 최대 38% 수준 장학 혜택을 제공 중이다.
미국 MBA 시장에서는 장학금 지급 비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장학 혜택을 받는 MBA 학생 비율은 10년 전 48% 수준에서 지난해 62%까지 높아졌다. 특히 중위권 경영대학원일수록 학생 확보 압박이 심해지면서 할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 MBA 시장은 ‘명문 간판’만으로도 학생들이 몰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 장기화 속에서 직장을 포기하고 MBA에 진학하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잡 호핑(Job Hopping)’ 대신 현재 직장을 유지하려는 ‘잡 허깅(Job Hugging)’ 현상까지 확산되고 있다. 커리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의미다.
존스홉킨스대 건물 [사진=존스홉킨스대 홈페이지]
“학위보다 AI 실무”…빅테크가 바꾼 채용 공식
AI 시대는 기업들의 채용 기준 자체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MBA 학위가 관리자급 인재 선발의 핵심 조건 중 하나였지만, 최근에는 실제 프로젝트 경험과 AI 활용 능력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 Google, Microsoft, IBM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AI 프로젝트 경험과 데이터 분석 능력 중심 채용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직무에서는 대학원 학위보다 실무 포트폴리오와 AI 자격증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MBA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연봉 프리미엄’을 약화시키고 있다. 미국 노동시장에서는 AI 엔지니어와 데이터 전문가, 생성형 AI 컨설턴트 등의 연봉 상승 속도가 MBA 졸업생보다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직장인들 입장에서는 2년 동안 막대한 비용을 들여 MBA 학위를 취득하기보다, 짧은 기간 동안 AI 실무 역량을 쌓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교육 컨설팅업체 HolonIQ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시대에는 평생 한 번의 학위보다 반복적인 재교육(re-skilling)이 훨씬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모습 [사진=NUS 공식 유튜브]
미국 MBA 독점 흔들린다…아시아·유럽으로 이동하는 인재들
해외 유학생 감소 역시 미국 MBA 시장의 또 다른 위기로 꼽힌다. 최근 미국 비자 규제 강화와 정치적 불확실성 영향으로 중국·인도 학생들이 유럽과 아시아 MBA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INSEAD, 런던 경영대학원, 싱가포르국립대학교 MBA 과정은 최근 아시아권 지원 수요 증가의 수혜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비자 환경과 금융 허브라는 강점을 앞세워 글로벌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학생 이동을 넘어 미국 중심 교육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으로도 이어진다. 과거에는 글로벌 엘리트 교육의 중심이 미국이었다면, 이제는 비용 효율성과 실무 연결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명문 간판 시대 끝난다”…AI 시대 교육시장 재편 시작
전문가들은 지금의 MBA 위기를 단순한 경기 침체 현상이 아니라 AI 시대 교육 패러다임 변화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이 지식을 독점했고 학위가 곧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에는 정보 접근 속도가 빨라지고 산업 변화 주기가 짧아지면서 긴 학위 과정 자체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들은 이제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무엇을 실제로 만들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MBA 역시 단순 이론 교육이 아니라 AI·데이터·헬스케어·자동화 산업과 연결된 실무형 교육으로 빠르게 전환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미국 MBA 시장은 지금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명문 학위 중심 시대’에서 ‘실무 경쟁력 중심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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