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가 본격 막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생성형 AI는 실험실을 벗어나 기업의 일상 업무로, 나아가 국가 경쟁력의 중심축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문제는 이 경쟁이 단일 국가 단위로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델 학습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 전 세계를 잇는 클라우드 인프라, 글로벌 표준을 선점할 협상력 등 다양한 변수가 산적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하나 한 나라의 기업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한국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우수한 인재와 탄탄한 제조·콘텐츠 기반을 갖추고도 '한국만의 AI'로는 이 판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이 눈길을 끈다. 그런 이유로 관건은 '누구와 손을 잡느냐'로 좁혀진다. 글로벌 수준의 모델 기술, 그 위에 쌓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스택, 그리고 규제·데이터·거버넌스까지 아우르는 정책적 감각을 지닌 파트너는 누구인가?
유년 시절 듣던 이야기 "친구 잘 만나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파트너 아니 친구는 누구인가?
MS는 생성형 AI 시대의 출발점에 서 있던 사업자다. 오픈AI(OpenAI)와의 초기 파트너십을 통해 챗GPT로 대표되는 대형 언어 모델의 부상을 애저(Azure) 인프라 위에서 함께 키워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쟁 구도가 복잡해진 지금도 그 경험은 MS의 자산으로 오롯이 남아 있다.
여기에 MS의 또 다른 강점이 포개진다. 워드·엑셀·파워포인트·팀즈·아웃룩으로 대표되는 오피스 생태계, 그리고 이를 AI로 재무장한 '코파일럿(Copilot)'이다.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기업 임직원의 업무 흐름에 직접 꽂히는 구조다.
문서 작성, 이메일 정리, 회의록 요약, 데이터 분석까지 기존 업무 도구에 AI가 내장되면서 기업의 AX(AI 전환)가 '도입 프로젝트'가 아닌 '일상 업무'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진=연합뉴스
조직이 AX로 넘어가는 국면에서 가장 큰 장벽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변화 관리'라는 말이 나온다. 직원들이 쓰던 도구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방식의 AI 도입이 갖는 힘이 크다는 얘기다. 코파일럿과 오피스의 결합은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MS가 한국 AI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 결정적 배경들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실제 장면의 축적으로 확인된다.
가장 큰 한 수는 2024년 9월 KT와 맺은 5개년 수조원 규모의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한국어·한국 문화에 최적화된 LLM 개발, AX 전문기업 공동 설립, AX 이노베이션 센터 운영, 그리고 MS 소버린티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Secure Public Cloud 개발까지 네 갈래로 뻗어 있다. 국내 통신사업자와 글로벌 빅테크가 이 정도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전례 자체가 드물다.
산업 현장의 변화도 구체적이다. 현대백화점은 애저 오픈AI 기반 쇼핑 큐레이션 '헤이디(HEYDI)'를 통해 월 9000건 규모의 사용량을 8만 건으로 9배 늘렸다. 고객 만족도 4.51점. 오프라인 유통의 고객 경험이 AI로 어떻게 재설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LG전자는 스마트홈 로봇 'Q9'에 애저 오픈AI 서비스를 얹어 음성 합성과 공감형 대화를 구현했고, SK이노베이션은 정유·석유화학 현장의 엔지니어링 자료 검색·분석·보고서 작성 업무에 애저 생성형 AI 플랫폼을 도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AI 뷰티 카운슬러', 연세의료원은 임상 현장의 반복 업무 경감을 위한 의료 AI 개발을 MS와 함께 밀고 있고, 현대오토에버는 깃허브 코파일럿을 통해 개발자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스타트업 영역이다. 피지컬 AI 로봇 기업 리얼월드는 MS 애저 클라우드 인프라와 MS 리서치(MSR) 공동연구 논의를 통해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RFM)을 고도화하고 있다. Azure GPU·CPU 클러스터를 활용한 강화학습·모방학습·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의 훈련 규모 확대가 핵심이다.
엔터프라이즈 에이전틱 AI 스타트업 인핸스는 MS 애저와 깃허브 기반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영업망 지원을 등에 업고 6개월 만에 20곳 이상의 국내외 엔터프라이즈 고객사를 확보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30곳 이상의 기업에 도입돼 50개국 이상에서 구동 중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모티프테크놀로지스·솔버엑스 같은 국내 AI 스타트업도 MS 애저 기반 인프라로 활용 사례를 공유하며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MS가 운영 중인 'AI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와 '마이크로소프트 런처' 프로그램을 통해 애저 크레딧·깃허브·오픈AI API·글로벌 IR 피칭 등 종합 패키지가 제공되는 구조다.
한편 협력의 또 다른 축은 사람이다. MS는 지난해 인사혁신처·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SK하이닉스 등 30여 곳의 공공·민간·비영리 파트너와 함께 약 200만 명에게 AI 교육을 제공했다. 공직사회의 AI 활용 역량 강화를 위한 온라인 교육과 지방자치단체 대상 프로그램, 초·중·고 강사 양성과 AI 교육 툴킷 보급,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기초 교육까지 저변이 넓다.
최근에는 교육기관·인력 양성 프로그램·비영리 단체와 손잡고 'MS 엘리베이트(Microsoft Elevate)'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한국에 공식 런칭했다. 깃허브의 혁신 지표(Innovation Graph) 기준 한국 개발자 커뮤니티가 272만 명을 돌파한 것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MS 자체 조사에서도 한국의 누적 AI 도입률은 81.4%로 조사 대상국 중 1위를 기록했고 글로벌 AI 도입률 순위에서도 18위에 올랐다.
물론 우려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이 깊어질수록 특정 사업자에 대한 종속(Lock-in) 리스크가 따라붙는다는 지적은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파트너십과 개방형 생태계 설계가 동시에 굴러갈 수 있다면 한국 AI 산업은 글로벌 경쟁력과 기술 주권을 맞바꾸지 않아도 되는 길을 확보할 수 있다. 새로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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