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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IT큐레이션] '안전'이라는 가면을 쓴 퇴행, PM법이 멈춘 자리

쾌도난마(快刀亂麻)라 했던가. 어지럽게 얽힌 실타래를 단칼에 베어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반대다. 수년에 걸쳐 풀어놓은 소중한 실타래가 단 한순간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IT큐레이션] '안전'이라는 가면을 쓴 퇴행, PM법이 멈춘 자리

쾌도난마(快刀亂麻)라 했던가. 어지럽게 얽힌 실타래를 단칼에 베어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반대다. 수년에 걸쳐 풀어놓은 소중한 실타래가 단 한순간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방법이 있음에도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라는 말의 방파제에 숨는 장면과 심지어 그 안전이라는 대의명분도 썰물처럼 빠르게 설득력을 잃어가는 순간일게다.

진짜 안전을 추구하며 산업의 발전을 끌어낼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이 있음에도 진실에서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고 부도덕한 일이다.

사진=연합뉴스

"PM에 오토바이 면허를 적용하라"…돌아온 낡은 잣대

개인형 이동장치(PM·Personal Mobility) 안전법, 이른바 'PM법'을 둘러싼 입법 표류가 시상치않다. 전문가와 부처, 업계가 수차례 머리를 맞대 다듬어낸 법안이 본회의 문턱에서 발목이 잡혀 다시 상임위로 회수되는 '이례적'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12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만 16세 이상 이용 연령 제한과 PM 전용 교육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세 차례의 법안심사소위, 공청회를 거치며 오랜 진통 끝에 도출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PM이 어떤 도로로, 어떤 신호를 따라 달려야 하는지 이용자가 명확히 배우고 익히도록 만드는 것. 자동차 운전자가 면허를 따듯 PM 이용자에게도 그에 맞는 '운행 자격'을 부여하자 지극히 상식적인 방향이다.

문제는 본회의 상정을 코앞에 두고 터졌다. 법안이 별안간 상임위로 회수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 의원이 "PM 전용 교육이 아니라 오토바이 면허를 업체가 의무적으로 인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헌법재판소에서 오토바이 면허를 PM에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이 나왔다는 게 근거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주장은 별안간 '오토바이 면허 의무화'라는 왜곡된 형태로 실제 입법까지 추진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어어어" 하다 벌어진 일이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다듬어낸 법안이 한 의원의 목소리에 의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왜 PM에 '오토바이 면허'가 답이 될 수 없는가

PM과 오토바이는 전혀 다른 이동수단이다. 크기가 다르고, 무게가 다르며, 운행 방식 자체가 다르다. 시속 25㎞로 제한되는 전동킥보드와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250㏄급 오토바이를 같은 잣대로 묶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자전거를 타기 위해 자동차 면허를 따라고 하는 격이다.

오토바이 면허 의무가 PM에 적용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이 모순은 더욱 분명해진다.

2020년 당시 경찰청은 PM 이용자 연령을 제한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오토바이 면허 의무 조항을 급히 도입했다. 그러면서 1년 내에 PM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자격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오토바이 면허 적용은 처음부터 '한시적 우회로'였지 '정답'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 이제 와서 그 임시방편의 논리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헌재 결정에 대한 해석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은 '그 방식이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그 방식이 최선'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위헌이 아닌 것과 합리적인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 둘을 등치시키며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입법 과정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의문이 남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PM 안전 캠페인. 사진=연합뉴스

"안전을 위한 규제"라는 명분,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오토바이 면허 의무화는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PM을 타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PM의 주행법과 무관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PM을 탈 수 있게 만드는 구조. 이것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안전인가?

진정으로 안전을 원한다면 해답은 이미 나와있다. 해당 산업과 그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벼랑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면 PM 전용 교육과 PM 전용 인프라를 구축하면 끝이다. PM이 어떤 도로를 달려야 하는지, 어떤 신호 체계를 따라야 하는지, 보행자와 자동차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PM 전용도로 같은 인프라가 함께 확충된다면 안전 문제는 단일대오로 풀어갈 수 있다는 각오다.

자동차 면허 시험에서 자전거 통행법을 묻지 않는다. 자전거에는 자전거의 룰이 있고, 자동차에는 자동차의 룰이 있다. PM도 마찬가지다. PM에는 PM의 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는 PM에 오토바이의 룰을 강요하려 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다면서 정작 안전과 무관한 시험을 치르라고 하는 셈이다.

여기에 PM 산업의 현실을 보면 이 규제의 역설은 더욱 도드라진다. PM은 자동차 이용을 대체해 도심 교통난을 해소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며, 단거리 이동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미래 모빌리티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탄소 감축이 시대적 과제이고, 고유가 시대에 효율적인 교통수단이 절실한 지금, PM은 분명한 장점을 가진 카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산업의 진입 장벽 자체를 막아버리는 규제가 과연 시대정신에 부합하는가.

이 풍경이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2019년, 혁신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가 그랬다. '타다금지법'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형 차량호출 서비스의 싹은 잘려나갔다. 그동안 바다 건너 우버는 몇 배의 성장을 기록하며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표준을 만들어갔다. 한국이 스스로 빗장을 거는 사이, 세계는 합종연횡과 단일대오로 시장을 키워나간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내게 지렛대와 받침점을 주면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고 했던가. 그러나 받침점이 없으면 어떤 지렛대도 무용하다. PM 산업도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규제라는 받침점이 있어야 산업이라는 지렛대가 움직인다. 그런데 지금 국회는 그 받침점을 빼버리려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물론 모든 규제가 산업을 죽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전은 분명 중요하다. 무면허 청소년의 PM 사고, 보행자와의 충돌, 인도 주행 등 PM이 가져온 사회적 부작용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식은 PM의 특성에 맞아야 한다. 아예 PM의 진입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PM을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인프라를 깔아주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한 가지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입법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한 사람의 강한 신념이 수많은 전문가와 부처, 이해관계자가 다듬어낸 합의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합의의 권위를 갖는가? 세 차례의 법안소위와 공청회를 거친 논의가 한 '의원님'의 이의 제기로 원점으로 돌아갔다면 그동안의 논의 과정은 무엇을 위한 시간이었나?

의원 개개인의 소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소신과 입법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소신은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주장은 입법 단계에서 걸러져야 한다. 그런데 PM법의 경우 이 과정이 거꾸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미 다듬어진 합의가 다듬어지지 않은 주장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시야를 더 넓혀보자. PM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이다. 유럽 주요국은 PM 전용 도로 확충과 PM 전용 교육 체계 도입에 나서고 있다. 미국 일부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말로 하자면, 글로벌 표준은 'PM에 맞는 룰을 만들자'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는 그렇게 벌어진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PM에 맞는 교육과 인프라를 논의하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동수단에 맞는 새로운 룰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입법이다.

PM법의 비전은 매력적이다. PM 전용 교육으로 안전을 확보하고, 만 16세 이상으로 이용 연령을 제한해 사고 위험을 낮추며, 산업의 자생력을 키워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그림. 다만 그 비전이 단 한 사람의 반대에 막혀 입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PM의 특성을 이해한 입법이다. PM은 PM이지, 오토바이가 아니다. 자전거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니다. 그렇다면 PM에는 PM의 룰이 있어야 한다. 이 단순한 명제 위에서 다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미래로 나아갈 길을 터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시대착오적 규제로 그 길을 가로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전이라는 가면을 쓴 퇴행은, 결국 안전도 미래도 모두 잃는 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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