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발(發) 충격파가 글로벌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과 스타트업이 줄줄이 'AI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조만간 AI 퍼펙트 스톰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 가장 강도 높은 공포에 직면한 진영은 시스템통합(SI) 업계라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AI 모델 기업들이 직접 SI 시장에 진입하는 수직계열화 전략을 가속화하면서 SI 업체들의 사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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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S의 눈물
1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대표 SaaS 기업 세일즈포스는 2026회계연도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112억달러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넘어섰음에도 시간외거래에서 4% 가까이 급락했다.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3.81달러로 월가 전망치 3.04달러를 크게 웃돌았고, AI 에이전트 '에이전트포스' 매출도 8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9% 폭증했지만 주가 흐름을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지난 2월 단 48시간 동안 글로벌 소프트웨어 종목에서 2850억달러가 증발하며 시장에서는 '사스포칼립스(SaaS의 종말) 2026'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AI가 기존 SaaS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한꺼번에 분출된 결과다. 실제로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는 5월 5일 'The Briefing: Financial Services' 행사에서 "개별 SaaS 회사들이 시장 가치를 잃고, 파산하고, 완전히 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그는 나아가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는 능력 자체가 곧 사라질 해자(moat)"라며 "AI가 그 복잡성을 평탄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SaaS 진영의 반발은 상당하다. 지난 2월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최고경영자(CEO)는 콘퍼런스콜에서 '사스포칼립스'라는 단어를 여섯 차례 언급하며 "우리에게 사스포칼립스는 처음이 아니며 과거에도 몇 번 겪은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패트릭 스토크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도 "에이전트가 질문하면 시를 써줄 수도 있지만 기업 환경에서는 가치가 크지 않다"며 정해진 규칙대로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기업 환경에서 생성형 AI 활용의 한계를 지적했다.
염동훈 메가존클라우드 대표도 14일 간담회에서 "AI로 인해 회사들이 다 없어진다, 회사들이 이런 솔루션을 더 이상 사용 안 한다, 저는 그걸 안 믿는다"며 "회사들이 그렇게 쉽게 그걸 중단할 수도 없고, 회사들은 이 솔루션을 통해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그 프로세스를 그렇게 쉽게 변경할 수가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분위기 자체가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앤스로픽이 최근 자영업자 시장을 정조준한 '클로드 포 스몰비즈니스'를 공개한 것이 눈길을 끈다.
퀵북스, 페이팔, 허브스팟, 캔바, 도큐사인, 구글 워크스페이스, 마이크로소프트 365 등 7개 SaaS를 한 묶음으로 통합한 서비스다. 7개 모두 각 카테고리 1·2위 사업자라는 점에서 시장 충격은 작지 않다. AI 어시스턴트가 의도를 추론해 여러 SaaS를 동시에 호출하는 구조가 자리잡으면 사용자가 굳이 신규 도구로 갈아탈 유인이 사라진다. 충격적인 논란이다.
더 큰 문제는 SaaS를 넘어 스타트업까지 AI의 공포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타진하는 샛별들의 미래가 AI의 손에 막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일이다.
당장 사파이어 벤처스의 2026 AI 예측 리포트는 "2026년 추는 다시 기존 사업자 쪽으로 기울어 이들이 자신의 유통망에 전략적 인수합병(M&A)을 얹는 해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생 SaaS의 엑싯 경로가 기업공개(IPO)에서 묶음 안 기존 사업자에 인수되는 흐름으로 굳어진다는 의미다. 블룸버그와 크런치베이스 데이터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AI 자금의 67%가 단 3건의 메가 딜에 집중됐다.
표면적으로는 AI 네이티브 챌린저에 자본이 몰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앤스로픽·오픈AI·xAI·코어 등 소수 거대 기업에 자본이 쏠리면서 일반 SaaS 스타트업의 시드·시리즈 A 평균 라운드 크기는 정체 상태다.
가트너는 2026년 전망에서 "스타트업 제품이 다른 회사의 데이터 접근이나 유통에 의존한다면 그 접근이 더 어려워질 것을 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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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포는 SI?
AI 공포가 새로운 희망을 옥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는 SI가 받을 고통에도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사스포칼립스보다 더 강한 공포가 SI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모델 기업들이 SI 사업에 직접 뛰어들면서 SI 업체들의 핵심 사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공포는 실체가 있다. 당장 오픈AI는 자체 'OpenAI Deployment Company'를 출범시켰고, 앤스로픽은 AI 서비스 컴퍼니를 별도로 설립했다. 구글은 포워드 디플로이드 엔지니어(FDE) 채용을 본격화했다. 모두 고객사의 시스템에 직접 들어가 AI를 적용·운영하는 사업 모델이다. SI 업계가 수십 년간 다져온 영역에 AI 모델 기업이 직접 진입한 것이다.
사실 SI 영역이 SaaS보다 위태로운 이유는 구조적이다. AI 서비스는 모델 의존성이 절대적이다. 성능 개선의 핵심은 외부에서 정보를 가져오는 검색증강생성(RAG)보다 모델 자체를 고객 환경에 맞춰 미세조정하는 커스텀 영역에서 발생한다.
모델을 보유하지 않은 SI 기업이 따라잡기 어려운 게임이다. 과거에는 AI 모델이 업데이트되면 AI SaaS 기업이 위협받는다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모델 기업의 수직 통합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위험의 무게추가 SI 쪽으로 이동했다. 모델 기업이 자사 모델에 최적화된 배포·운영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면 SI는 가격·성능·속도 모두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엔엑스코드의 '사스포칼립스 2026' 분석에서도 주목할 신호가 잡혔다. 단순한 주가 하락이 아니라 고객들이 소프트웨어 좌석 수를 늘리지 않고 줄이고 있다는 데이터다. AI로 한 명이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SaaS 라이선스 자체가 축소되는 구조다. SI 영역도 같은 압박을 받는다. 기업들이 자체 AI 도구로 내부 시스템을 직접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외주 시스템 통합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흐름이 감지된다. 빠른 시일 내 AI 시대에 맞는 전략 전환에 실패한 SI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국방·공공 같은 절대 영역을 확보한 일부 SI 기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팔란티어가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일반 기업 AI 전환(AX) 사업을 핵심으로 삼아온 대다수 SI 기업은 사업 모델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국내 SI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SDS, LG CNS, SK AX 등 주요 SI 기업들은 AX 사업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지만, 글로벌 AI 모델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직접 진입할 경우 가격·기술 경쟁력 면에서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사스포칼립스 담론은 자본시장에서 가장 시끄럽게 들리지만 실제 산업 충격은 SI 진영에서 가장 빠르고 깊게 진행 중"이라며 "AI 모델 기업이 배포·운영 영역까지 통째로 가져가는 수직계열화가 본격화되면 SI 기업의 전통적 가치사슬은 5년 안에 재편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전략가는 향후 12개월 내 S&P500지수가 8300선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AI 랠리가 일부 종목에 과도하게 집중된 가운데 그 그늘에서 SaaS·스타트업·SI라는 세 갈래의 공포가 동시에 자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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