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상장, '지배구조와 가치이전 공정성' 문제
IPO생태계·벤처시장, 규제 또 다른 피해자 우려
전면금지 아닌 유형별 차등규제와 보상설계 필요
국내 기업 중복상장 비율 18%
3월18일 정부의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주주보호'를 위한 '중복상장 원칙 금지'였다. 모회사 주주의 관점에서 중복상장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 제한한다는 것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중복상장(코스피와 코스닥 합친) 비율은 18.4%에 육박한다. 미국(0.4%) 일본(4.4%) 중국(2.0%) 대만(3.2%) 등 주요국에 비해 한국이 유난히 높다. 이는 국내 시장에 중복상장 유인(Incentive)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현행 거래소(KRX)의 상장 규정에 '중복상장(분할 후 재상장)'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금융당국은 거래소 규정과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올 해 6월까지 제도 개선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기존 사업의 '중복상장' 뿐 아니라 앞으로 인수·신설하는 자회사도 실질적 지배력(예: 지분율30% 이상 등)이 있으면 중복상장으로 간주해 심사하고 구체적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 상장 시 모회사 이사회 책임을 강화하고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배정하는 방안 등도 검토되고 있다.
과거 대기업들이 일반 주주가 반대해도 적절한 보상도 없이 자금조달 필요성과 경영 효율을 내세워 강행했던 '쪼개기 상장'의 후폭풍인 셈이다. 최근 자본시장 관련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와 정책 방향은 시장 밸류업과 주주 보호다.
지배구조, 쪼개기 논란의 본질
상장(IPO, Initial Public Offering)은 기업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과정이다. 기업, 투자자, 시장조성자 등 다양한 이해가 얽힌 시장의 규칙이 바뀌면 이들 모두에게 유불리가 발생한다. 특히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Exit)에 의존하는 벤처투자 생태계는 IPO 규제 변화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중복상장이 불편한 이유는 가치 이전의 '정당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모기업 일반 소액주주는 유망한 비즈니스를 '보상' 없이 빼앗겼다고 인식한다. 반면 모기업 대주주는 '비용' 없이 회사의 리스크는 일반 주주에게 분산하고 지배력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대주주에게 유리한 지배구조가 중복상장 논란의 진원지인 셈이다.
이러한 중복상장 논란은 국내 금융지주가 M&A 이후 주주가치를 환원하는 방식과 대비된다. 금융지주의 경우 인수한 비즈니스(자회사)를 대부분 100% '완전자회사'로 편입한다. 이는 지배력 강화를 통한 경영 효율화뿐 아니라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대리인의 의무 충실화 목적도 있다. 금융지주 주주의 돈으로 인수한 기업이 그룹 공통 자산(개인정보, 신용도, 브랜드 등)을 활용해 창출한 가치를 모기업 주주에게 환원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시장은 이해충돌 공간, 같지만 다른 평가
그렇다고 모든 중복상장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카카오페이의 분할 상장은 형식은 같지만 그 성격은 다르다. 전자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자금조달 목적이 강했던 반면 후자는 플랫폼 내부에서 형성된 가치를 재편한 측면이 크다.
카카오도 스타트업이었다. 초기 미성숙 신기술과 불확실한 사업 모델이 성공하며 막강한 지배력을 가진 플랫폼이 됐다. 카카오의 쪼개기는 이 플랫폼 내에서 숙성된 핵심 사업을 떼어내는 것이다. 카카오는 비즈니스 개발에 돈을 댄 투자자에게 회수(Exit)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2017년 2월 중국 앤트그룹과 투자유치 계약으로 약 2억달러를 조달했다. 이 자금으로 같은 해 4월 카카오의 핀테크 사업부를 분사해 카카오페이를 출범시켰다. 모기업 증자보다 자회사 분리 상장으로 경영 리스크를 분산하며 사업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성장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기존 대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해 기술기업을 인수(SI)하거나 재무적 투자(FI)를 하는 경우도 많다. 2021년 6월 현대차그룹은 약11억 달러에 보스톤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소프트뱅크로부터 인수했다. 현대차(30%), 정의선(20%),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 등이 주요 투자자였다. 약3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기대하며 2026년 하반기 나스닥 입성을 위한 IPO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보스톤다이내믹스의 상장 프리미엄은 현대차의 일반 소액주주들에게도 긍정적이다.
일반 기술 기업의 IPO는 벤처캐피탈 등 초기 투자자에게 자금 회수 기회와 신규 투자 재원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로 평가된다. 그러나 같은 벤처 기업이라도 기존 대기업이나 플랫폼 기업 계열사의 IPO는 카카오처럼 비판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술 기업과 이에 투자하는 VC는 정부의 대기업 중심 '그물망 규제'를 우려한다. 벤처업계는 중복상장의 일률적인 '전면 금지'가 코스닥 시장 활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소 벤처기업의 자회사 상장은 사업 확장에 필수적인 자금조달 수단인 경우가 많다.
VC심사역들은 상장사가 유망 스타트업을 인수한 뒤 IPO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로가 막히면 성장자금 시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벤처투자자의 자금 회수(Exit)는 거의 IPO에 의존하는 매우 경직적인 구조다. 투자금 회수 경로가 제한되면 초기 투자가 줄고 혁신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올 해도 반도체 중심 설비투자를 제외하면 그 외 대부분의 산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기업들은 대규모 선행투자 자금을 조기에 지속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유형별 섬세한 차등 규제 필요
중복상장의 일률적 전면 규제는 비상장 성장기업의 자금 회수 경로와 후속 투자 유인을 위축시킬 것이다. 물론 규제 완화가 곧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규제가 어느 단계의 기업에 부담이 되는지 확인하고, 실질적인 소액주주 보호 장치로 작동하는지 세밀한 검증이 중요하다.
일반주주 입장에서 중복상장은 명백한 가치 외부 유출이다. 권익 침해를 경험한 투자자들이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본시장 전체 관점에서도 이들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따라서 '전면 금지'가 아니라 유형별 '차등 규제'가 필요하다. 우선 물적 분할 후 재상장은 가장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 이 경우 허용 조건을 '모회사 주주에 대한 실질적 보상'과 연동해야 한다. 공모주 우선 배정, 현물 배당, 주식교환권, 특별배당, 자사주 소각 등 구체적 보상 패키지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일반 모자회사 상장은 정량적(객관적) 기준의 예측 가능성 위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사업 중복도, 내부거래 의존도, 상장 후 모회사 순자산가치(NAV) 변화, 소수주주 보상 수준 등을 계량화해 승인 기준이 명시적으로 사전에 제시돼야 한다.
또한 스타트업과 기술 벤처기업에는 IPO 외 회수 시장을 키우는 보완책도 필요하다. 세컨더리거래(구주 매각), 후기 투자, 프라이빗 라운드, 메자닌, 코너스톤 투자 등 각 단계의 비상장 성장자금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IPO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구조에서는 생산적 금융이 자리 잡기 어렵다.
규제 기준, 기업 규모 아닌 균형
중복상장 '원칙 금지'는 선별적으로 '명시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이다. 그동안 기업 자율성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비판으로 역대 모든 정부는 규제 완화와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을 지향해 왔다. 그러나 통제 받지 않는 대주주의 권력이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며 '방종'에 이르렀다는 공감대가 기업 활동 자유를 구속한 것이다.
규제 기준은 '대기업 여부'가 아니라 '일반주주 피해' 가능성이 돼야 한다. 단순히 대기업 계열이라는 이유로 '원칙 금지'가 적용하면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중견기업이라도 주주 피해가 크다면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중복상장 규제는 투자자 가치 희석과 기업 자금조달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전면 금지도 무조건 허용도 답은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보호 장치 강화가 균형을 이룰 때 자본시장 신뢰는 회복될 수 있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지는 말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