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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rtist Interview] 홍진훤 작가 "이미지와 알고리즘이 있는 곳에 투쟁이...

- 〈합창〉(2025)에는 AI의 목소리가 유령의 목소리로 표상된다. 교차하는 남녀의 목소리가 극영화 속의... 원래는 성우를 쓰려고 했지만, 특정 시간대에 매여 있는 목소리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고민하다가 AI의 목소리를...

[Artist Interview] 홍진훤 작가 "이미지와 알고리즘이 있는 곳에 투쟁이...

올해의 작가상 2026 후원작가 선정

박일수 열사 다룬 다큐멘터리 〈오, 발렌타인〉 3월 개봉

‘집회 덕후’로 시작해 사진 기자 거쳐 작가까지

예술의 역할은 주류의 관성 극복하는 일

불편한 논쟁 만들고 계속 이야기되게 하고자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투쟁 현장을 끈질기게 기록해왔다. 주류 이데올로기와 가시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모이는 곳. 어떠한 이념들이 가감 없이 충돌하는 장소들.

홍진훤은 집회 현장에 대한 그의 애정을 ‘덕질’이라고 설명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에너지가 있는 현장에서 눈을 뗄 수 없다고. 얼마 전 개봉한 〈오, 발렌타인〉은 같은 맥락에서 그에게 사랑 영화다. 끝없이 미끄러지면서도 자본주의의 바깥을 꿈꾸는 이들의 지독한 짝사랑에 관한.

▲홍진훤 작가

그는 대학 시절부터 집회 현장을 ‘덕질’해왔다. 2000년대 초반, 선배들에게 이끌려 갔던 집회 현장의 에너지에 이끌려 구경꾼의 입장에서 드라마 관람하듯 집회 현장을 찾게 된다. 매일 경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오늘의 집회’ 목록을 확인하며 각종 집회 현장을 배회한다. 그러던 와중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부터 안전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장의 이미지를 축적해나가던 중 제의를 받아 사진 기자가 됐으나, 용산 참사를 거치며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작가로 전향하게 됐다. 작가로 전향한 이후에는 미디어가 걸러낸 현장의 흔적들을 포착하며 이미지의 정치성, 시각 권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작업해왔으며, 한국 사회를 둘러싼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이미지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오고 있다.

홍진훤의 작업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재현 방식과는 거리를 둔다. 작가에게 ‘시각’은 존재와 비존재를 구분 짓는 권력의 징표다. 화면을 분할해 관련 없거나 불화하는 두 이미지를 배치하기도 하면서 극장의 시각 권력과 관객의 수동적인 응시 행위에 질문을 던진다.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르고 뒤섞으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세계를 구축하고,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언어들은 보는 이, 보여지는 이들과 결국은 같은 이상을 공유한다는 연대로 다시 수렴한다.

홍진훤에게 고공농성은 시각권력을 두고 충돌하는 세계의 어떠한 징후다. 이미지가 되지 못하는 존재들은 알고리즘에서 자연스레 배제되고, 기록되지 못한 현실은 가상과의 경계가 흐릿한 지점에 놓이는 세계 안에서 노동자들은 망루에 오른다. 가시성을 박탈 당한 이들은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공중을 점거하며 존재를 알리고자 한다. 홍진훤은 말했다. 모두의 추락을 꿈꾸며 우리는 오늘도 더 빨리 더 높이 하늘을 오른다고.

✦ 홍진훤은 사진과 이미지를 둘러싼 권력관계를 관찰하고 개입하는 일을 즐긴다. 2021년 〈멜팅 아이스크림〉을 시작으로 영상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수용, 극장과 미술관을 오가고 있다. 사진, 영화, 웹프로그래밍 등의 매체를 주로 다룬다. 동료들과 함께 〈공간 지금여기〉, 〈더 스크랩〉, 〈docs〉 등 여러 프로젝트를 운영-기획했고 지역 미술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콜렉티브 〈세컨드 콤플렉스〉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지난 1월, 올해의 작가상 2026 후원작가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 3월 11일에는 박일수 열사의 투쟁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오, 발렌타인〉이 정식 개봉했다. 지난 3월 3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개봉작 〈오, 발렌타인〉(2025)을 포함해, 〈멜팅 아이스크림〉(2021), 〈언다큐먼티드 모나리자〉(2025) 그리고 〈합창〉(2025)이 기획전의 형태로 상영됐다.

✦ 인터뷰는 지난 2월 20일 서울문화투데이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오! 발렌타인〉(2025) 스틸 이미지

- 지난 1월, 올해의 작가상 2026 후원작가로 선정됐다. 소회가 어떠한지.

사실 나에게는 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시다.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이름의 전시에 참여한다는 정도의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재밌는 전시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웃음)

- 최근에 해외에 다녀온 걸로 아는데, 다음 작업을 위한 촬영차 해외를 방문했던 건가.

여행? (웃음) 작업을 시작하기 전 가능하면 글로 먼저 정리를 하는 편이다. 나를 설득해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도 되는 작업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글을 쓰면서 확인하는 시간이 있는데 작업 구상을 해야하는 시점이다 보니 이번에도 그걸 핑계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라고는 했지만, 그렇게 머무르는 곳은 나에게 여행지라기보다는 일종의 무장소에 가깝다.

- 웹페이지 홍진훤(https://jinhwon.com)에는 작업에 관한 텍스트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던데, 대부분 작업 시작 전에 쓰인 텍스트인가.

대개 그렇다. 초창기에는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고민이 더 컸기 때문에 무작정 카메라 들고 나가서 사진을 찍어오는 식이었는데,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고민이 커지다 보니 단순히 어떤 장소에 가서 정처 없이 사진을 찍는다고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리서치와 함께 어떤 개념들이나 생각을 사전에 정리하고 설계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또, 전부터 사회적 비극을 스펙타클로 다루는 것과는 거리를 두려고 해왔기에 이미지 이전에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야 할지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지를 만들 때는 온전히 감각에 기대게 되는 만큼 사전에 감각의 방향성이나 태도 등을 설정하고자 하다 보니 버릇이 된 것 같다.

▲웹페이지 홍진훤(https://jinhwon.com)의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2021)' 연작 소개글

- 〈오! 발렌타인〉(2025)이 지난해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선보인 데 이어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오는 3월 3일부터 3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홍진훤 특별전》이 진행된다. 요즘은 감독이라는 명칭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듯한데, 어쩌다가 작품이 극장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개인전에서 〈멜팅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던 걸 영화계 분들이 보시고 영화제에 출품해달라고 하셔서 처음으로 극장 상영을 하게 됐다. 이후 시네마달에서 연락이 와서 배급을 하게 됐고, 이번에 개봉한 〈오! 발렌타인〉의 제작까지 이어졌다.

〈오! 발렌타인은〉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지만, 사실 〈멜팅 아이스크림〉은 영화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중요한 필름이 발견됐다길래 영상으로 찍어두자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그 과정을 담다 보니 작업으로 발전시키게 됐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걸 보면서 관객에게 관람을 강제하는 권력을 가진 극장이라는 공간이 어쩐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 〈오!발렌타인〉의 화이트큐브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더블 슬릿〉(2024)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더블 슬릿〉은 분할된 이미지들의 충돌 등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했기에 인물들의 이야기나 세계가 잘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미지의 조합에 방점을 뒀고 ‘이 분할된 세계를 끝까지 봐라’라는 식의 집착 같은 게 있었기에 화면을 분할하는 선도 사라지지 않는데, 극장 버전인 〈오! 발렌타인〉은 이미지가 한 화면으로 통합되는 지점들이 있다. 박일수 열사와 비정규직 투쟁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분할된 화면에 익숙해질 때 쯤 각성시켜주는 장치들이 필요했다.

- 지난해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오! 발렌타인〉 GV에서 2채널 형식의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2채널’이 ‘투쟁’으로 잘못 전달되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웃음) 당시 답변에서 2채널이 아닌 화면 분할을 언급을 했는데, 단채널 화면 분할 방식을 써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나에게 2채널은 다른 두 영상의 조합이다. 단순히 하나의 작업 안에서 싱크가 맞는 두 개의 영상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완결된 하나의 영상 안에서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보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화면 분할의 방식이 더 설득력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 발렌타인〉(2025) 스틸 이미지

- 한 인터뷰에서 화면 분할 방식에 대해 “관객에게 할 일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화면을 양분하고 좌우에서 각기 다른 영상을 재생해 사람마다 관람 이후의 경험이 조금씩 어긋날 상황을 만들려고 했다”며, 화면 분할이 관람을 강제하는 극장의 시각 권력을 분배하기 위한 장치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두 영상이 등을 맞댄 설치의 형태로 분리되지 않는 이상 어찌 됐든 모든 관객은 동일하게 두 영상 이미지를 동시에 보고 기억하게 되지 않나.

그럴 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2채널에 대한 인식도 있고,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시네마스코프 비율은 영화의 자본과 스펙타클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 화면 안에서 많은 정보를 준다고 여겨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시네마스코프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기에 극장의 스크린과 분할의 방식이 필요했다.

- 〈멜팅 아이스크림〉, 〈더블 슬릿〉, 〈오! 발렌타인〉의 제목을 짓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혁명광장에서만 보냈다. 한 번은 어떤 노인들이 소비에트 연방 깃발을 들고 공산당 전단지를 나눠주길래 레지던시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에게 “여기는 볼셰비키들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아름다운 나라구나”라고 말했더니, 전부 한국으로 치면 태극기 부대 같은 사람들이라더라. (웃음) 그 친구에게 혁명 이후의 역사를 들으면서 달콤한 것들은 다 녹아내리는 건지, 아니면 녹아내리는 것들만 우리는 달콤하게 느끼는 건지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거기서 착안해 〈멜팅 아이스크림〉의 제목을 짓게 됐다.

〈더블 슬릿〉은 원래 박일수 열사가 비정규직 투쟁을 위해 만든 조직 이름인 ‘한마음’을 제목으로 하려고 했었다. 한마음이라는 이름으로 투쟁을 했는데, 결국 노동자가 한 마음이 되지 못했던 게 서글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마음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서사보다는 이미지 중심의 작업이다보니, 이미지의 구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제목으로 바꾸게 됐다.

〈오! 발렌타인〉의 제목은 박일수 열사의 사망일이 발렌타인데이였기도 했고, 나는 이 영화를 사랑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처절한 짝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좀 더 말랑한 제목이 필요해서 짓게 됐다.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에서 촬영된 '채널 256 (2018)'

- 〈멜팅 아이스크림〉과 〈오! 발렌타인〉은 3부작으로 마무리된다고 했는데.

투쟁의 마지막 장면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멜팅 아이스크림〉의 경우 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풍경이라고 생각했고, 〈오! 발렌타인〉은 계급 운동의 마지막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투쟁의 중요한 요소인 민중가요의 마지막 풍경을 담으며 완성하고자 한다. 올해부터 준비를 해서 내년에 촬영을 할 예정이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패배 3부작이라고 부르고 있다.

- 〈합창〉(2025)에는 AI의 목소리가 유령의 목소리로 표상된다. 교차하는 남녀의 목소리가 극영화 속의 대화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시간대가 존재하지 않는 세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가정하고 희곡처럼 대본을 쓰고자 했다. 대화의 형태는 아니지만 극의 대사처럼 읽힐 수 있도록 작성했다. 원래는 성우를 쓰려고 했지만, 특정 시간대에 매여 있는 목소리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고민하다가 AI의 목소리를 쓰게 됐다.

- 지난달 1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서신교환’의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언다큐먼티드 모나리자〉가 상영됐다. 서면 GV에서 “지금의 이미지는 일종의 사회적 신뢰체계다”라며, “이미지는 더이상 무엇을 재현하는 매체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계가 이미지를 재현하고 그 이미지는 세계의 토대가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언다큐먼티드 모나리자〉의 내용도 그렇고, 이미지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다.

과거에는 사진술이 고급 기술이었고 동시대적 매체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사진도 일종의 전통 매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클래식으로서의 사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남겨야 하는지 고민해보고 있다.

또, 예전에는 사진의 본질적인 혹은 존재론적인 특징들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는데, 사회의 변화에 대한 작업을 하다 보니 이미지가 너무나 본질적인 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상과 실제의 중첩 상태와 실제와 이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 등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미지의 본질적인 성질이나 성격들을 알아야지 이 세계를 해석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질적인 세계에서 가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다보니,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파편 같은 것들을 찾고 있다.

- 2021년 《멜팅 아이스크림》이 마지막 개인전인데, 그 이후에는 개인전이 없었던 이유가 있나.

실은 〈멜팅 아이스크림〉이 마지막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작업을 계속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정치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작가병 혹은 동시대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웃음) 나는 그저 집회가 좋아서 여기까지 이끌려온 사람인데, 계속 그러다 보니 작업에 흥미도 잃게 되어 다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걸 이야기하고 떠나고자 했다. 나를 만들었던 영상과 사진들은 꼭 남겨 놓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했던 작업인데, 호응을 얻게 되어 여러 전시에서 선보이고 극장 상영까지 하게 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았던 것 같다. 이제 동시대병에서 좀 벗어나 내 작업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 때부터 작업도 하고 영화 촬영과 전시 참여 등으로 바쁘다 보니 개인전을 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멜팅 아이스크림 (melting icecream)〉 다큐멘터리, 70분, DCP, 흑백, 16-9, 5.1ch

- 지난해에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연례전인 타이틀 매치 《장영혜중공업 vs. 홍진훤: 중간 지대는 없다》를 통해 장영혜중공업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 준비 및 진행 과정은 어땠나.

타이틀 매치 전시 특성상 기획에 있어 작가의 자유도가 높았기에, 주어진 독립된 공간을 다른 시공간으로 만들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좋았다. 이미지는 공간에 어떤 식으로 배치되고 감각되는지가 다른 매체에 비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시도를 이것저것 해볼 수 있어서 재밌는 전시였다.

- 스스로 ‘집회 덕후’였다고 말할 만큼 집회 현장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집회 현장을 ‘덕질’하게 된 계기는.

당시에는 대학 다니면 다 집회에 끌려갔다. (웃음) 그렇게 끌려가서 처음으로 접한 집회 현장은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동시에 당시 무대에서 행해지는 참가자들의 발언들이 너무 재밌었다. 공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치 드라마를 보듯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경찰청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오늘의 집회 목록을 찾아보며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대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경찰이 때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슬프게도 카메라를 들게 됐다. (웃음) 사진을 좋아하던 사람도, 찍던 사람도 아니었지만 카메라가 생겼으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떠한 의지가 있었다기보다는 단순한 집회 현장 덕질에 가까웠던 것 같다.

대형 집회의 경우에는 무대도 있고 식순도 있고 사람도 많으니 철저한 구경자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덕질이 심해지면 진심이 생기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듣다 보니 화도 나고 관련된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소규모 투쟁 현장들을 찾게 됐다. 그런 곳에서는 단순한 구경꾼의 위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도 사진 기자도 구경꾼도 아닌 무언가로서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게 됐던 시기다.

- 대학 시절 전공은 무엇이었나.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집회 덕후였기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는 않았기에 졸업에 10년이 걸렸다. 사회과학 학회에 들어 사회과학 책을 읽고 술 마시고 집회 다니고 사진 찍는 게 대학 생활의 전부였다. (웃음)

프로그래밍은 중학교 시절부터 좋아해서 재미로 하다가 어쩌다 보니 전공하게 됐는데, 세계는 이미지와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고, 사회의 착취나 통제의 과정 역시 이 두 가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마침 이 두 가지를 오랜 시간 해왔다는 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굿 나잇 v1.0, 유튜브 스트리밍 플랫폼, 가변크기, 2019

- 사진은 독학을 한 건가.

학교를 다니면서 출석 체크만 하고 수업은 안 듣고 하다 보니 등록금이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에 있는 사진 관련된 책은 다 읽고 나가자는 생각으로 매일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사진은 글공부가 중요한 것 같다. 사진의 모든 답은 벤야민에 있다고 말하고는 한다. (웃음)

- 대형 집회와 소규모 농성 현장을 찾으며 찍은 사진을 웹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 기자로 일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의 일화를 자세히 듣고 싶다.

개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사진 웹사이트 의뢰가 있었다. 의뢰한 고객에게 나도 사진을 찍는다고 했더니 보여달라고 하더라. 그동안 찍어뒀던 걸 아카이빙해둔 사이트를 보여줬더니 웹사이트는 됐고 사진이나 같이 찍자고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고객은 유명한 외신 기자였고, 보도 사진 에이전시의 한국 지사를 설립하게 되면서 웹사이트를 만들게 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넘겼는데, 사진을 계속 찍다 보니 당시 받았던 제의가 자꾸 떠올라 연락하게 되면서 사진 기자가 됐다.

-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진과 현장 사이의 괴리를 실감하고, 포토 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로 전향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포토 저널리즘의 한계도 있겠지만 나의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이 크다. 용산 참사 현장을 정신 없이 찍고 나서 나중에 사진을 보는데,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보였다. 눈앞에서 다섯 명의 사람이 불에 타 죽어가는데 어떻게 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스펙타클한 장면을 건질 수 있을지 생각하며 동분서주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죽음과 내 사진이 정말 관계가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당시 전쟁 사진 작가나 종군 기자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라는 사람은 타인의 비극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이미지에 대한 집착과 가까운 욕망이 더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용산 참사를 포착한 다른 이미지들이 언론에서 소비되는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만 두고 혼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용산 남일당, 서울, 대한민국, 2009

- 작가와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정신이 충돌하는 순간은 없나.

지금은 거의 없다. 기록이나 활동, 연대의 책무를 가지는 등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다. 한동안 절박한 현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찾으니 그 곳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가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게 아니고 이 투쟁에 연대하고 있으며 함께 투쟁하는 중이라고.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러한 착각을 떨쳐내는 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인터뷰이와 라포 형성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 자신의 역할은 ‘풍경과 풍경 사이에서 발현되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얼마 전 타계한 와이즈먼 역시 피사체와는 거리를 둔 채 관찰자적인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나.

원래는 다큐멘터리를 일종의 '연출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도 결국은 연출인 만큼, 기록된 이미지에서 진실된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왔다.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힘을 신뢰하고, 그 힘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행위를 우리는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믿지 않았을까. 그런 걸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 그 안에서 생성되는 힘을 발현시키려면 꼭 어두운 풍경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런 의미에서 내게 다큐멘터리스트 정신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장소, 사람, 사물 중 무엇에 더 집중하나.

내 이미지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아무래도 장소가 아닐까. 사진이라는 건 지표성에서 떨어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장소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장소가 나를 찌르는 무언가에 끌리는 것 같다.

집회 현장을 다니며 약 10년 간 사람만 찍었는데, 사람의 얼굴보다 강력한 이미지는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러한 강력한 이미지 없이 비극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람을 찍는 걸 기피하게 됐다. 사진에서 사람을 지우니 풍경이 남아, 첫 작업 〈임시풍경〉부터 풍경 작업을 했다. 그렇게 꽤나 오랜 기간 풍경을 찍었다. 사람이 부재한 풍경들을.

▲수색 뉴타운, 서울, 대한민국, 2009

- 유운성 평론가는 “사진작가로서의 홍진훤은 자신의 작업이 현장 사진이라 불리는 것을 수긍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는 작가”라며, “그런 그의 사진은 어딘지 기묘한 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작가에게 현장은 어떤 의미인지.

집회가 좋았던 이유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에너지가 있는 곳이자 이데올로기들이 가감 없이 충돌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장소들이 점점 분화되고 변해가면서 비가시화되는 부분들도 많아졌다.

큰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라기보다는 큰 생각들, 이념들이 부딪히는 곳이 현장이고 그런 현장들이 예전에는 집회였다면 지금은 모든 곳이 그렇지 않을까. 이미지와 알고리즘이 있는 곳에 투쟁이 있고 그곳이 나의 현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집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전과 같이 극명하게 시각적으로 무언가가 부딪치는 장소들은 아니지만, 어떤 이념과 가시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있는 곳이 집회 현장이기 때문에 여전히 눈을 뗄 수 없다.

- 덕질하던 집회 현장과 지금의 집회 현장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 집회들이 공연화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투쟁의 주체들이 관객이 되어가고 수동의 상태가 되면서 집회가 통제 가능한 어떠한 제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공연화되다보니 동선이 생기고, 동선이 생기면 사진가들은 특정 장소에서만 촬영해야 하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 다른 방식의 투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내가 덕질하던 그 집회는 더이상 아니구나 싶었다. 어떠한 예측 불가능성이 내가 좋아하던 집회의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탄핵 시위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집회도 너무 아름답지만, 집회와 결합된 민중 가요 등의 몸짓과 퍼포먼스가 있는, 내가 기억하는 형태의 집회는 이제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덕질’하면서 찍은 집회 현장의 사진들이 보여지는 순간에는 무거워지는데, 정말 덕질처럼 보이게 구성해 전시를 했던 적은 없나.

지금은 사라진 ‘서울루나포토페스티벌’의 전시에서 섹션을 구성하면서 한쪽 벽면에는 민족사진연구회에서 찍은 투쟁 사진들을, 다른 한쪽에는 아이유 홈마가 찍은 아이유 사진들을 전시한 적이 있다. 이미지의 욕망이 투영된 두 종류의 사진들이 나에게는 같은 사진으로 다가왔다.

- 사진이 일상화되면서 가벼운 매체로 변모했다보니, 사진 예술은 반대로 혁명적이고 무거운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책무를 지게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다큐먼티드 모나리자〉에도 나오는 장면인데, 도로시아 랭은 요즘 젊은 사진가들은 다 가난만 찍으려 한다며 유행이고 쉬워서 그렇다고 말한다.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작업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빠른 길이 그런 대상을 찾아 다루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정치적인 작업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업 자체가 문제적이고 정치성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을 자극시키고, 논쟁을 만들고 계속 이야기되게 하는 것이 정치적인 작업의 힘이다. 미술은 정치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사진도 마찬가지고 늘 정치적인 작업이 중심에 있었다.

▲〈언다큐먼티드 모나리자〉, 2009/2025, 단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22분 42초

- 지금의 미술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지만, 미술관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면 사회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말도 있는데.

나의 경우, 내가 대상으로 삼는 대중은 꼭 지금의 대중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필요로 할 누군가가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라면 꼭 미술관에 있을 필요는 없다.

- 기존에 작업 주제를 설정하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다 보면 피사체를 특정한 틀 안에 가둬 두고 그러한 한정된 시각으로 담게 되면서 오히려 현실이나 진실을 기록하는 일과 멀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디아스포라를 너무 디아스포라스럽게 찍으려 한다던가.

피사체에 대한 관성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론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등 오히려 사전 리서치를 성실히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전통적인 의미의)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은 내 작업과는 거리가 있다. 다큐멘터리 작업 시 라포 형성이 첫 번째라는 말도 있는데, 내 작업 방식에 있어 라포 형성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거시적으로는 진실성을 추구하지만 미시적으로는 전혀 진실하지 않은 작업이다. 인터뷰도 마음대로 뒤섞고, 그 맥락을 바꾸거나 중요한 말들을 일부로 편집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멜팅 아이스크림〉의 경우,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 이상한 소리를 삽입하고 고양이 장면을 띄운다던가 하는 식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세계가 있고, 거기 필요한 이미지와 언어와 소리들이 있기에 단순히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자하는 의지는 없다. 이 이야기를 이용해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가 그들이 원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설득이 있을 뿐이다.

작업을 통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논쟁을 만들고, 각성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전형적인 대사와 이미지를 동반하는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은 오히려 관객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키기에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다.

- 그동안 이야기해온 ‘길잃음’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그렇다. 이미지는 길잃음의 과정을 통해 힘이 생긴다고 본다. 사진이나 영상이나 전부 나에게는 콜라주 작업이고, 결국은 이미지와 이미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의 문제다. 포토 스토리(photo story)처럼 편안한 작업이 아니라 ‘이게 뭐야’ 하고 계속 생각하면서 상이 그려지는 상태를 만들고자 한다.

▲이제 쇼를 끝낼때가 됐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웹크롤링, 웹페이지, 2019, 가변크기, 스크린샷

- 예술의 역할은 주류의 관성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시대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고 강제하는 시각적 관성들이 있다. 그러한 관성에 거부하는 작업을 하려면 주류 이데올로기와 투쟁하고 불화해야 하다 보니 작업이 불편할 수도 있고, 관성적인 미와는 어긋난 것이다 보니 난해하거나 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관성적인 이미지들과 싸우다 보면 이상하고 괴상망측한 이미지들이 나오게 된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이미지들이 인류가 찍은 사진 이미지들의 평균값,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을 아름다움의 평균값을 찾아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작가들은 역방향으로 나아간다.

미술의 역사는 예술가들이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행해온 이런 저런 시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의 관성과 싸우려면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이미지가 중심에 서버린 만큼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들이 최전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 지금 필요한 사진 작업이라고 믿고 있다.

- 마찬가지로 괴상한 이미지들을 만들고자 하는 편인가.

그러고 싶다. 한때는 집회 덕후로서 격렬한 투쟁 현장에서 극단의 고요와 고립과 같은 장면들을 만드는 게 나에게는 굉장히 괴상한 일이었다.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를 생산해내야 하는데, 나는 어떠한 이미지로 이 비극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지 10년 동안 고민하며 이것저것 시도해봤다. 답도 모르면서.

- 공간 ‘docs’(2018)와 공간 ‘지금여기’(2015-2016)를 공동운영했다. 기획자로서 이러한 공간을 만들게 된 계기는.

혼자 사진을 찍다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서로 작업을 공유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게 됐고,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공간을 만들어볼까 싶었다. 또, 사진은 단체전은 많지만 기획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획이 중심이 되는 사진 전시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에 ‘지금여기’를 만들게 됐다. ‘docs’는 동시대 포토 저널리즘에 화가 난 상태에서 젊은 사진 기자들과 포토 저널리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 만들게 된 임시적인 그룹이자 공간이었다.

다만 아직 기획자로서의 정체성은 없다. 기획은 엄청난 학술 행위라고 생각하고, 전시 기획은 필요에 의해 작업으로 생각하면서 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전시라는 매체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공간 'docs' (2018)

- 꽤 긴 시간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사비를 들여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알고 있다.

젊은 사진 작가들 포트폴리오를 모아둔 웹사이트를 만들던 당시 사진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군이 너무 얇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믿고 있는 사회적 미술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해매고 있는 젊은 사진 작가들을 수소문해서 모은 다음 워크숍을 진행했다. 5명 내외의 소수의 인원을 모아서 매주 만나며 짧게는 반나절을 함께 했고, 길면 밤도 새기도 했다. 그렇게 약 5년간 워크숍을 통해 의미 있는 전시도 열었고 좋은 작가들도 많이 나왔다.

- 안소현 큐레이터와의 대담집 『사진에 관한 대화』가 2019년에, 김연수 소설가와의 책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사람을 기억하네』가 2018년에 출간됐는데, 사진집을 낼 생각은 없나.

내 사진을 책의 형태로 보는 건 이상하게 느껴진다. 좋은 프린트로 보는 게 중요한 작업들도 있지만, 내 사진은 프린트해서 보나 휴대폰으로 보나 거기서 거기 아닐까. (웃음) 사진집도 좋지만 공간에서 이미지를 보는 걸 더 좋아한다. 이미지와 이미지의 관계는 선형적인 구조의 책보다는 열린 공간에서 더 잘 작동하고 경험하기 좋은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있는 사진과 이미지에 대한 세계를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은 있다. 전통적인 사진집보다는 내가 찍었던 사진들과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 이런 것들이 마구잡이로 충돌하는 책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물론 작업을 포함할 수는 있지만, 작업보다는 내 머릿속을 보여주는 책.

- 앞으로의 장, 단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없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본 적도 없고 그냥 어떤 세계가 눈 앞에 나타나면 거기에 반응한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서 그걸 투철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가가 있다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작가이기 때문에 무엇이 내 앞에 자꾸 나타나면 거기서 내가 가진 경험과 생각들로 반응해내는 식이다. 그래서 한 치 앞도 모르겠다. (웃음)

▲인터뷰날 만난 홍진훤 작가.

- 요즘 다가온 장면은 무엇인가.

고공농성에 미쳐있다. 왜 공장으로 쳐들어가지 않고, 시민들한테 선전을 하지도 않고, 저 위에서 혼자 고독하게 싸울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있다. 시각과 권력, 이미지와 이데올로기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이미지의 저항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 새로이 해보고 싶은 일은 없나.

원래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이미지 학교 같은 걸 만들고 싶어서 준비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라톤 완주를 해보고 싶다. 그게 지금의 최고 소망이다. (웃음)

-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많이들 좋은 작업을 하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데, 사실 그런 게 있나 싶다.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작업을 하면 나쁜 작가가 되어버리니까. (웃음) 그런 경쟁은 내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고, 작가가 어떠한 가치를 하나 꼭 가져야 한다면 대체 불가능성이라고 본다. 좋든 아니든 어떤 이야기를 하려면 이 작가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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