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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와 노인...디지털 약자는 어떻게 살아남나

삼성전자는 고령자 모드를 강화한 스마트폰 설정을 개선했다. 그러나 여전히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디지털 배움터 예산이 60% 삭감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노인 디지털 교육 예산이 줄어드는 동안 디지털...

AI와 노인...디지털 약자는 어떻게 살아남나

"지니야, 살려줘" - AI 스피커가 독거노인의 생명을 구한 나라에서, 키오스크 앞에서 쫓겨나는 노인들

AI로 제작된 이미지/최정범 기자

(서울=국제뉴스) 최정범 기자 = 지난 회차, 'AI 의사'에서는 AI가 진단과 처방의 영역에까지 들어온 현실을 살펴봤다. 이번 회차에서는 시선을 돌린다. AI가 가장 큰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가장 깊은 소외를 만들 수도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 이야기다.

2022년 6월,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주택. 새벽 3시 30분, 혼자 사는 60대 남성 A씨에게 갑자기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스마트폰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지니야, 살려줘."

KT AI 스피커 기가지니에 외친 이 한마디는 곧바로 KT텔레캅 관제센터로 전달됐고, 센터는 A씨와 통화해 실제 응급 상황임을 확인한 뒤 119에 신고하는 동시에 가족에게도 통보했다. A씨는 출동한 119 대원의 응급조치를 받고 안정을 찾았다.

기술이 생명을 구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 다른 동네의 70대 어르신은 패스트푸드 가게 키오스크 앞에서 15분째 서 있었다. 버튼을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몰라서. 뒤에 줄이 길어지자 결국 그냥 나왔다. 밥을 먹지 못했다.

AI 시대의 노인 문제는 이 두 장면 사이 어딘가에 있다.

숫자로 보는 현실... 얼마나 심각한가

먼저 현실을 숫자로 직시하자. 이 숫자들은 모두 확인된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35년에는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30%에 달할 전망이다.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다.

요양 등급 미달로 공식 돌봄 체계에서 배제된 인원은 약 850만 명에 이르며, 독거노인은 약 320만 명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배움터 운영사업 예산은 698억 원에서 279억 원으로 60%가 삭감됐다. 노인이 늘어나는 속도와 디지털 교육 지원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 숫자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단순하다. 디지털 세상이 빠르게 확장되는 동안, 수백만 명의 어르신들이 그 문 앞에서 멈춰 서 있다.

노인에게 디지털 세상은 어떤 곳인가

AI로 제작된 이미지/최정범 기자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는 어르신의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기계를 못 다루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노인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겪는 어려움은 훨씬 구체적이고 다층적이다. 눈이 문제다. 스마트폰 화면의 기본 글자 크기는 젊은 사람 기준으로 설계됐다. 노안이 온 어르신에게 그 글자는 너무 작다. 확대하는 방법을 모르면, 처음부터 포기하게 된다.

손이 문제다. 터치스크린은 손끝이 정확하게 닿아야 작동한다. 손 떨림이 있거나 피부가 건조한 어르신은 터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경험을 반복한다. 기계가 말을 안 듣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속도가 문제다. 키오스크는 일정 시간 입력이 없으면 처음으로 돌아간다. 천천히 생각하며 누르다 보면 화면이 리셋된다. 처음부터 다시. 이 경험이 반복되면 "나는 못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언어가 문제다. AI 서비스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의 언어로 설계됐다. "프롬프트", "인터페이스", "클라우드" - 이 단어들이 낯선 어르신에게 AI 튜토리얼은 외국어 수업과 다름없다.

고령층 중 많은 이들이 모바일 기기를 소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디지털 세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AI가 노인의 삶을 바꾸는 방식... 좋은 이야기

AI로 제작된 이미지/최정범 기자

그러나 AI가 노인에게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변화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도 지금, 현장에서.

응급 상황 감지 - 생명을 구하는 AI

앞서 소개한 KT 기가지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KT AI 케어 서비스는 독거노인이 응급상황에 "지니야 살려줘"라고 외치면 KT텔레캅-119 연계 시스템을 통해 24시간 구조가 가능하다. 복약 알림, 인지장애 예방 게임, AI 말벗 대화, 음악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한다.

수원시는 홀로 사는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로봇을 보급했다. 76살 김씨는 AI 로봇에게 "찬송가 좀 틀어줘"라고 말한다. 로봇은 식사와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노래나 요리 콘텐츠도 제공한다. 폭염 등 건강 위험 상황을 경고하고 인지 훈련도 지원한다.

말벗이 되는 AI

실제 운영에서 세미나·체험 공간에서는 로봇 활용이 소극적이었지만, 집으로 가져간 뒤에는 평소 쓰지 않던 단어를 로봇에게 말하는 등 자발적 상호작용이 나타났다. 강요하지 않아도, 혼자가 되면 어르신들은 AI에게 말을 건다. 외로움이 그만큼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AI 돌봄 실험

경기도는 AI 기술 기반 통합돌봄서비스를 통해 노인이 자신이 살아온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벗어나지 않고 여생을 보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AI 돌봄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설이 아닌 집에서, 익숙한 동네에서 늙어갈 수 있게 하는 것. AI가 이 오래된 소망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치매 예방과 인지 훈련

AI 기반 인지 훈련 프로그램이 요양원과 복지관에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반복적이고 개인화된 인지 훈련을 사람이 일일이 제공하기는 어렵지만, AI는 지치지 않고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 치매 초기 어르신에게 특히 효과적이라는 현장 보고가 늘고 있다.

AI가 노인의 삶을 위협하는 방식... 불편한 이야기

AI로 제작된 이미지/최정범 기자

반면 AI와 디지털화의 물결이 노인에게 만들어내는 위협도 외면할 수 없다.

금융 서비스의 디지털화가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다. 은행 지점이 줄어들고 ATM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모바일 뱅킹 앱의 복잡도가 높아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어르신들이 직접 창구를 찾아가도 "앱으로 하세요"라는 답변을 듣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앱을 못 쓰면 금융 서비스 접근 자체가 어려워지는 구조다.

의료 예약의 디지털화도 마찬가지다. 병원 예약이 앱과 인터넷으로 이동하면서, 전화로 예약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5회차에서 다뤘던 AI 의료 서비스도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어르신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AI 사기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다. 13회차에서 다뤘던 보이스피싱, 딥페이크 사기는 노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 AI가 자녀의 목소리를 복제해 긴급 송금을 요청하는 수법이 노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을 잘 모를수록 AI 사기에 더 취약해지는 역설이다.

정보 격차가 건강 격차로 이어진다. AI 기반 건강 관리 앱, 원격 진료, AI 영양 관리 서비스는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큰 혜택이다. 그러나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이 혜택에서 배제된다. 같은 나이에도 디지털 역량에 따라 건강 관리의 질이 달라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나

AI로 제작된 이미지/최정범 기자

다행히 대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총 367억 5천만 원을 투입해 디지털 취약계층인 고령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무인정보단말기 개선, 인지·신체기능 증강기술 개발이 핵심이다.

통신사들도 움직이고 있다. KT 기가지니 AI 케어 서비스 외에도 SKT, LG유플러스가 노인 대상 AI 돌봄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령자 모드를 강화한 스마트폰 설정을 개선했다.

그러나 여전히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디지털 배움터 예산이 60% 삭감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노인 디지털 교육 예산이 줄어드는 동안 디지털 환경은 더 빠르게 복잡해지고 있다.

노인 당사자와 가족이 할 수 있는 것

정책이 따라오길 기다리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족이 함께 배우는 시간을 만들어라.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드리는 것을 귀찮은 일로 여기지 말자. 한 번의 친절한 설명이 어르신의 세상을 넓혀드릴 수 있다. 특히 자주 쓰는 앱 두세 가지만 제대로 알려드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AI 돌봄 서비스 도입을 검토하라. KT 기가지니 AI 케어 서비스처럼 독거 어르신을 위한 AI 스피커 기반 돌봄 서비스는 지자체를 통해 신청 가능한 경우가 많다. 혼자 사시는 부모님이 있다면 주민센터나 지역 복지관에 관련 서비스를 문의해보자.

큰 글씨, 단순한 화면을 설정해드려라. 스마트폰의 글자 크기 확대, 고대비 모드, 자주 쓰는 앱을 홈 화면에 크게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어르신의 디지털 접근성이 크게 달라진다. 한 번만 설정해드리면 된다.

AI 사기 예방 교육을 함께 하라. 13회차에서 다뤘던 보이스피싱, 딥페이크 사기 예방법을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자. "전화로 돈 요청이 오면 무조건 끊고 직접 전화해봐"라는 단 하나의 원칙만 공유해도 큰 예방 효과가 있다.

AI는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AI로 제작된 이미지/최정범 기자

이 연재에서 우리는 AI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왔다. 그런데 그 모든 기술이 특정 세대에게는 접근조차 어렵다면, 그것은 진정한 발전인가.

"노인 돌봄을 단순 관제·관리 영역으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100세 시대의 노인은 사회 활동, 운동, 취미 등에서 기존 세대와 다른 활동적 사용자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현장 전문가의 이 말이 핵심을 찌른다.

어르신들은 기술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다. "지니야, 살려줘"라고 외친 그 60대 남성처럼, AI를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만 갖춰진다면 얼마든지 기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에 가닿을 수 있는 다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진짜 질문은 "얼마나 똑똑한 AI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그 AI를 쓸 수 있는가"다.

디지털 약자를 남기고 가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

AI가 바꾸는 세상은 분명히 더 편리하고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특정 세대를 뒤에 남겨두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다.

"지니야, 살려줘"라고 외칠 수 있는 어르신과 키오스크 앞에서 밥을 못 먹고 돌아서는 어르신. 이 두 사람이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 어느 쪽이 더 많은지가 이 사회가 AI를 얼마나 제대로 쓰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기술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하지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은 할 수 있다. 그것이 AI 시대에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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