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제조 AI, SK AX 데이터 통제권… 기업마다 다른 ‘AI 생존 지형도’
-삼성SDS 인프라 재편, GS네오텍 AI 관측 도구… 서로 다른 전장 펼쳤다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WS 서밋 서울 2026’ 행사장 입구 전경. 올해 AWS 서밋에서는 국내 주요 IT 기업들이 생성형 AI 도입 경쟁을 넘어 실제 운영·비용·데이터 통제 구조를 둘러싼 새로운 AI 전략을 공개했다. [사진=최지훈 기자]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WS 서밋 서울 2026’의 공기는 지난해와 달랐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기업들은 “AI를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경쟁력처럼 내세웠다. 그러나 올해 후원 세션에서 국내 주요 IT 기업들이 던진 질문은 전혀 다른 층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제 시장은 AI의 존재 여부를 묻지 않았다. 대신 그 AI가 매출을 얼마나 늘렸는지, 공장 가동 중단 시간을 얼마나 줄였는지, 운영비를 얼마나 깎았는지 같은 ‘실제 숫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AI는 더 이상 미래 전략 발표용 언어가 아니라 손익계산서와 생산성 지표를 움직이는 실전 도구로 넘어가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행사장 안에서도 각 기업이 바라보는 전장이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이다. 어떤 기업은 제조 현장의 다운타임을 줄이는 데 집중했고, 어떤 기업은 데이터와 생성형 AI 모델을 연결하는 플랫폼 계층을 장악하려 했다. 또 다른 기업은 브로드컴의 VMware 인수 이후 커진 시장 불안을 파고들며 ‘탈(脫) VMware’ 수요를 정조준했고, 일부는 AI 운영 체계 자체를 장악하는 미들웨어 사업자로 올라서려 했다. 같은 AI를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산업 지형도를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독일군이 주공(主攻) 방향을 뜻할 때 쓰던 표현처럼, 각자의 ‘중심 전선’은 분명하게 갈라져 있었다.
두산 부스 전경. 두산은 이번 행사에서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를 결합한 제조 현장용 ‘다운타임 0’ 전략을 공개하며 가스터빈·증기터빈 운영 데이터 기반 산업형 AI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진=최지훈 기자]
▲두산, 제조 현장 AI로 승부수
두산이 이번 행사에서 꺼내 든 화두는 ‘다운타임 0’이었다. AI를 설비 감시에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아마존 베드록(Amazon Bedrock) 기반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를 결합해 설비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하고 진단 로직까지 지속적으로 수정·최적화하는 이른바 ‘지능형 루프(Intelligent Loop)’ 구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람이 규칙을 입력하고 AI가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AI가 운영 데이터를 학습하며 유지보수 체계를 역으로 고도화하는 구조에 가까웠다.
두산은 이를 일반적인 시스템통합(SI) 패키지처럼 설명하지 않았다. 발표의 중심에는 두산에너빌리티 현장에서 실제 운용 중인 가스터빈·증기터빈·배열회수보일러(HRSG) 데이터가 놓여 있었다. 설비 이상 징후를 조기에 탐지하는 ‘프리비전(PreVision)’과 AI 기반 비파괴 검사 솔루션 ‘디비전(D-Vision)’ 역시 외부 솔루션 재판매가 아니라 그룹 내부 발전 설비에서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자사 플랜트가 곧 테스트베드이자 레퍼런스 사이트인 셈이다. 제조 AI 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가 현장 데이터 축적과 운영 검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산은 그 진입장벽 자체를 내부 산업 자산으로 넘고 있는 구조에 가깝다.
GPU 인프라 전략도 가볍지 않았다. 두산은 엔비디아 P100부터 A100, H100까지의 운영 경험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차세대 H200 도입 계획까지 제시했다. 특히 “글로벌 경쟁사 대비 약 15% 낮은 비용 구조”를 직접 언급한 점은 눈에 띄었다. 약 50년에 걸쳐 축적한 그룹 IT 운영 경험을 인프라·모델·플랫폼으로 이어지는 ‘AI 파운데이션’ 3단 구조로 다시 재편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과거 제조기업 내부 지원 조직이던 IT 계열사가 이제는 산업형 AI 운영체계 자체를 상품화하려는 단계로 올라서고 있다는 신호다.
다만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두산의 발표는 끝까지 제조 현장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는 가장 강력한 차별점이면서도 동시에 적용 범위를 스스로 제한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금융·유통·서비스업처럼 데이터 구조와 운영 사이클이 전혀 다른 산업에서도 같은 방식의 AI 운영 체계가 작동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결국 두산 AI 전략의 성패는 ‘제조 특화 AI’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산업 운영 체계 전체로 확장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 AX 부스에서 관계자들이 에이전트 기반 IT 운영 플랫폼을 소개하고 있다. SK AX는 이번 행사에서 데이터와 AI 모델을 연결하는 통합 운영 구조와 메타데이터 기반 셀프서비스 환경 전략을 공개했다. [사진=최지훈 기자]
▲SK AX, AI보다 데이터 운영 구조에 베팅
SK AX는 이번 행사에서 ‘AI 모델’보다 ‘데이터 운영 구조’에 방점을 찍었다. 발표의 중심에는 SK이노베이션 E&S 사례가 놓였다. 국내 최초로 아마존 세이지메이커(SageMaker) 통합 스튜디오를 도입해 데이터와 AI 모델 개발 환경을 하나로 묶고, 3계층 레이크하우스 구조 위에 메타데이터 챗봇을 결합해 현업 부서가 직접 데이터를 탐색·분석할 수 있는 셀프서비스 환경을 구축했다는 설명이었다. 데이터팀에 요청서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현업이 자연어 기반 인터페이스를 통해 데이터를 바로 호출하고 활용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발표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 조직 구조 변화에 가까웠다. 대부분 기업에서는 데이터 분석 조직과 현업 부서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누가 데이터를 관리하고, 누가 접근 권한을 가지며, 최종 해석 책임은 누가 지는지를 둘러싼 충돌이 반복된다. SK AX는 메타데이터 챗봇을 이 간극을 줄이는 인터페이스로 제시했다. 데이터 구조와 용어 체계를 AI가 중간에서 번역해 주면서, 현업이 직접 데이터를 읽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논리다. 결국 이 회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AI 모델 성능보다 기업 내부의 데이터 권한 구조에 가까웠다.
지난 14일 SK AX가 OpenAI와 엔터프라이즈 AI 사업 협력 서비스 파트너 계약을 체결한 점도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다. 특정 거대언어모델(LLM)에 종속되기보다, 여러 모델을 연결하는 멀티 LLM 게이트웨이 위에 데이터 플랫폼을 고정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모델은 바뀌어도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와 운영 구조는 유지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생성형 AI 시장에서 모델 경쟁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SK AX는 모델 자체보다 ‘기업 데이터 통제권’을 더 중요한 자산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LG CNS는 이번 행사에서 생성형 AI를 실제 경영지표(KPI)와 연결하는 산업별 적용 전략과 상용화 중심 AI 운영 체계를 강조했다. [사진=최지훈 기자]
▲LG CNS, ‘AI KPI 설계’ 전면에
LG CNS 세션은 기술 설명보다 화두 자체를 바꾸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발표 첫 문장은 “이제는 AI를 도입했는지가 아니라, AI가 실제로 무엇을 해내고 있는지가 핵심”이라는 메시지였다. 제조·여행·제약 산업 사례를 차례로 제시하며, 생성형 AI를 어디에 붙였는지가 아니라 어떤 비즈니스 지표를 움직이도록 설계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AI 프로젝트를 기술 시연이 아니라 경영지표 관리 문제로 끌어내린 셈이다.
발표자의 직책도 눈에 들어왔다. 이상원 ‘Launch Center Leader’라는 명칭 자체가 이 회사의 조직 방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AI를 연구개발(R&D) 단계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장 출시와 상용화 단계까지 책임지는 조직 단위로 운영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기업 AI 프로젝트 상당수가 개념검증(PoC) 단계에서 멈춰서는 상황을 감안하면, LG CNS는 기술 개발보다 ‘현업 안착’과 ‘운영 전환’을 더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직책 이름 안에 이미 “끝까지 출시한다”는 책임 구조가 들어가 있는 셈이다.
리테일·소비재, 제조·산업, 헬스케어·생명과학을 가로지르는 산업 포트폴리오 역시 같은 방향으로 읽힌다.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산업 경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LG CNS가 팔고 있는 핵심 상품은 AI 모델 자체보다 ‘비즈니스 지표 설계 방식’에 가까웠다. 어떤 KPI를 AI로 움직일 것인지, 어떤 데이터를 연결해야 손익과 생산성이 변하는지를 정의하는 역량이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기술 회사라기보다 KPI 운영 체계를 설계하는 전략 컨설팅 기업에 가까운 접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SDS는 이번 행사에서 브로드컴의 VMware 인수 이후 커진 기업들의 인프라 전환 수요를 겨냥해 ‘탈(脫) VMware’ 전략과 AI 전환형 클라우드 인프라 재구성 방안을 소개했다. [사진=최지훈 기자]
▲삼성SDS, ‘탈 VMware’ 시장 정조준
삼성SDS는 이번 행사에서 가장 노골적인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브로드컴의 VMware 인수 이후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라이선스 비용 부담과 계약 구조 변화에 대한 불안이 커진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삼성SDS는 Nutanix 기반 하이퍼컨버지드 인프라(HCI)와 AWS 서비스를 결합해 VMware 환경을 이전하는 실제 구축 사례와 운영 방식을 소개했다. 겉으로는 클라우드 전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발표 전체를 관통한 주제는 ‘누가 인프라 주도권을 가지는가’에 가까웠다.
핵심은 단순한 마이그레이션이 아니었다. 삼성SDS는 “어차피 가상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 라이선스 비용을 줄이는 데서 끝나지 말고 AI 운영에 맞는 인프라로 재구성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비용 절감이라는 방어적 의제를 AI 전환이라는 공격적 의제로 바꿔버린 셈이다. 기존에는 VMware 대체 논의가 주로 비용 문제에 머물렀다면, 삼성SDS는 이를 AI 학습·추론 워크로드까지 연결되는 차세대 인프라 전환 문제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발표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전 및 현대화(Migration & Modernization), 하이브리드·멀티클라우드(Hybrid Cloud & Multicloud)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클라우드 이전과 AI 전환, 멀티클라우드 전략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구조 변화로 읽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삼성SDS의 계산은 명확하다. VMware 비용 구조 변화에 불만을 가진 기업들이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잠재 시장이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삼성SDS는 단순 구축 사업자가 아니라 “AI 시대용 인프라 재설계 사업자” 위치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코엑스에서 열린 ‘AWS 서밋 서울 2026’ 행사장 내 AWS 전시 공간 전경. AWS는 이번 행사에서 생성형 AI, 클라우드 전환, 데이터 운영 전략 등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들과 AI 인프라·운영 생태계 확대 방향을 공유했다. [사진=최지훈 기자]
▲GS네오텍, ‘AI 평가·운영’ 틈새 노린다
GS네오텍의 위치는 행사장 안에서도 결이 달랐다.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기업들처럼 대규모 컨설팅 조직을 앞세우지도 않았고, 특정 기능만 제공하는 단일 솔루션 업체와도 다른 방향을 택했다. 발표에서는 자연어 기반 AX 빌더 ‘aiDea’, 노코드 생성형 AI 플랫폼 ‘MISO’, AI 응답 평가 솔루션 ‘Prompt Lens’, 보안 운영 플랫폼 ‘Security Lens’, 클라우드 비용 최적화 플랫폼 ‘CloudXper’ 등 다섯 개 자체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제품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AI 모델 자체보다 그 위에서 작동하는 ‘운영 계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 있다. 기업이 어떤 거대언어모델(LLM)을 선택하든, 어떤 클라우드를 쓰든 상관없이 그 위에서 응답 품질을 평가하고, 보안 상태를 진단하며, 운영 비용을 최적화하는 구조다. 생성형 AI 시장에서 모델 성능 경쟁이 빠르게 평준화될수록 오히려 이런 운영 미들웨어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AI 산업의 승부가 모델 자체에서 운영 통제권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먼저 베팅한 셈이다.
그중에서도 ‘Prompt Lens’의 포지셔닝은 눈에 띄었다. 핵심 메시지는 “AI 응답 품질을 데이터로 측정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기업이 생성형 AI를 도입한 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성능 자체보다 결과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에 가깝다. 답변 정확도가 실제로 개선됐는지, 환각(Hallucination)은 얼마나 발생하는지, 업무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수치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GS네오텍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했다. “AI가 잘 작동하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는 기업들의 불안을 평가·관측 도구 시장으로 연결하려는 전략에 가까웠다.
두산 전시 부스에서 AI 기반 통합 관제 시스템이 시연되고 있다. 두산은 CCTV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업자·장비 움직임과 위험 상황을 실시간 분석하는 산업 현장용 AI 안전·관제 기술을 공개했다. [사진=최지훈 기자]
▲AI 전쟁, 이제는 운영 체계 싸움
다섯 회사가 그린 전선은 서로 정면충돌하지 않았다. 두산은 제조 현장이라는 수직 산업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 SK AX는 데이터와 AI 모델을 연결하는 플랫폼 계층을 노렸다. LG CNS는 어떤 KPI를 움직일 것인가라는 ‘지표 설계 방법론’에 집중했고, 삼성SDS는 VMware 이후의 인프라 재편 시점을 파고들었다. GS네오텍은 그 위에서 AI 운영·평가·보안·비용 최적화를 담당하는 미들웨어 계층을 점유하려 했다. 같은 생성형 AI 시장 안에 있었지만, 각자가 노리는 층위는 달랐다.
이 분화 자체가 지금 한국 엔터프라이즈 AI 시장의 단계를 보여준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장의 중심은 “AI를 해봤는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은 실제 운영 환경 안에서 어떤 영역을 누가 장악할 것인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운영 단계로 들어간 시장은 필연적으로 더 잘게 나뉜다. 제조 운영, 데이터 거버넌스, KPI 설계, 클라우드 전환, AI 관측·평가 같은 세부 영역마다 별도의 플레이어가 생겨난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생성형 AI 시장은 기술 시연 단계가 아니라 실제 운영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며 “기업 고객 입장에서는 한 번 내부 운영 체계 안으로 들어온 솔루션을 쉽게 교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승부는 기술 데모보다 반복 매출과 유지율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누가 가장 오래 고객 시스템 안에 남아 운영 표준처럼 자리 잡느냐가 핵심이며, 그 결과는 앞으로 12개월 동안 각 회사의 실적 곡선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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