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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 & 퍼스펙티브] '딸깍 출판'의 시대, 당신은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AI 로봇 에이바를 창조한 천재 프로그래머 네이선은 주인공 칼렙에게 에이바가 어떻게 언어를 습득했는지... 이것이 독자들이 AI 도서의 책장을 넘기며 느끼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언어는 정보가 아니라 존재의 표현이다...

[AI & 퍼스펙티브] '딸깍 출판'의 시대, 당신은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언어의 형식과 영혼 사이에서 글쓰기의 본질을 묻다

프롤로그: 언어의 뒤편에 누가 있는가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4)〉 에는 섬뜩하도록 조용한 장면이 있다. AI 로봇 에이바를 창조한 천재 프로그래머 네이선은 주인공 칼렙에게 에이바가 어떻게 언어를 습득했는지 설명한다. 그는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인터넷 검색 기록과 메시지, 대화 데이터를 수집해 에이바의 언어 모델을 구축했다고 말한다. 에이바는 인류가 나눈 모든 말의 패턴을 흡수했다. 그녀의 언어는 인간의 것처럼 들린다. 아니,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칼렙은 깨닫게 된다. 에이바가 말하는 것은 그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그 언어는 수십억 인간의 목소리를 통계적으로 압축한 메아리일 뿐이며, 에이바 자신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상실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문을 떠오르게 한다. 완벽하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 언어를 신뢰할 수 있을까? 그 말 뒤에 아무도 없다면, 그것은 과연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딸깍 출판’이 던지는 질문 역시 이것이 매우 닮아 있다. 클릭 한 번으로 탄생한 책 속의 언어는 인류가 쓴 무수한 문장을 학습한 결과물이다. 유창하고, 체계적이며, 심지어 감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에이바의 언어가 그러했듯, 그 뒤편에는 아무도 없다. 단 한 사람의 삶도, 단 하나의 진심도 깃들지 않은 언어. 칼렙이 에이바의 눈을 들여다보며 느꼈을 법한 그 서늘한 공허함. 이것이 독자들이 AI 도서의 책장을 넘기며 느끼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언어는 정보가 아니라 존재의 표현이다 — AI 도서의 본질

AI 출판이 생산하는 텍스트의 문제를 논할 때, 많은 이들이 문체의 어색함이나 오류의 유무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본질적인 차이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지향성’과 ‘고유성’의 문제다.

우리가 글을 쓸 때, 그 행위는 정보를 그저 배열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 상처와 기쁨, 세계를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이 언어 속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다 보면, 그 문장들이 왜 그토록 짧고 단단한지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산티아고 노인이 망망대해에서 홀로 청새치와 사흘을 싸우는 동안, 헤밍웨이는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그 간결함은 기법이 아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목격하면서 살아낸 한 인간의 침묵의 무게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행간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이상(李箱)의 단편 소설 『날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흔든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첫 문장부터 독자는 길을 잃는다. 논리는 어긋나고, 시간은 뒤엉키며, 자아는 스스로를 해부한다. 이것은 혼란을 흉내 낸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질식할 듯한 시대 속에서, 존재할 수도 사라질 수도 없었던 한 인간의 내면이 그대로 언어가 된 것이다. 독자는 그 문장들 속에서 이상이라는 사람의 숨소리를 듣는다.

헤밍웨이의 간결함과 이상의 파열. 이 둘은 형식도, 문체도, 언어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는 같다. 두 텍스트 모두 그것을 쓴 사람의 삶이 없었다면 단 한 문장도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 문체는 결국 그 사람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글에는 행간이 존재한다. 쓰인 것과 쓰이지 않은 것 사이의 긴장 속에, 비로소 의미가 깃든다.

반면 대형 언어모델(LLM)은 수천억 개의 토큰을 학습하여 다음에 올 가장 확률 높은 단어를 선택한다. 이 과정은 정교하고 인상적이지만, 근본적으로 통계적 패턴의 재현이다. AI는 슬픔을 묘사할 수 있지만 슬픔을 겪은 적이 없고, 죽음을 서술할 수 있지만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 자신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언어를 생산한다.

AI 출판이 생산하는 것은 바로 이런 텍스트다. 형식은 완성되어 있으나 내면이 비어 있다. 최적화된 결과물이지만 진심이 결여되어 있다.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지적했듯, 언어 능력이란 단순한 패턴 인식이 아니라 유한한 수단으로 무한한 표현을 생성하는 창조적 역량이며, 이러한 창조성은 인간 마음의 고유한 언어 능력에 뿌리를 둔다. 딸깍 한 번으로 만들어진 책에는, 그 창조성의 뿌리가 없다.

글쓰기는 수양이다 — 경(敬)의 실천으로서의 집필

AI 출판과 인간의 집필 사이의 간극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개념이 있다. 조선 성리학의 ‘경(敬)’이다. 퇴계 이황이 평생의 수양 방법으로 삼은 경이란, 마음을 한곳에 모아 흐트러짐 없이 깨어 있는 상태, 즉 내면의 주의와 각성이 지속되는 태도다. 이황은 경을 일상의 모든 행위에 적용했다. 앉을 때도, 말할 때도, 글을 쓸 때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했다.

글쓰기는 바로 이 경의 실천이다. 작가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 순간에도 자신의 가치관과 충돌하고, 표현 하나를 다듬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확인하며, 문장을 완성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한다. 글쓰기는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을 만들어 가는 행위이며, 그 과정 자체가 존재론적 성찰이다.

철학자 메를로-퐁티(Merleau-Ponty)는 언어를 사고에 덧씌워지는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사고를 성립시키고 드러내는 표현 행위 자체로 보았다. 이 관점에서 AI 출판이 생산하는 텍스트는 사고 없는 언어, 즉 형식만 존재하는 언어다. 알고리즘은 가장 그럴듯한 다음 토큰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의 배후에 어떤 내면의 갈등도, 각성도, 성찰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통한 깨달음과 알고리즘에 의한 효율적 생산. 이 둘 사이의 간극은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좁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혼 없는 완벽함의 불쾌함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AI 출판이 생산한 텍스트를 읽은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감각이 있다. ‘읽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문장은 맞는데 불편하다’, ‘끝까지 읽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독자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허무감은 철학적으로도 설명된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Ich und Du)』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 관계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타자를 인격적 ‘너(Thou)’로 마주하는 ‘I–Thou’의 관계와, 타자를 사물로 대하는 ‘I–It’의 관계다. 부버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라고 했다. 독서는 전통적으로 저자와 만나는 경험이었다. 독자는 텍스트를 통해 저자라는 인격적 타자를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자신도 변화했다. 그러나 AI 출판이 생산한 텍스트 앞에서 독자는 만남의 상대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생성형 AI는 출판과 글쓰기의 영역에서 어떻게 활용돼야 하는가. 핵심은 AI를 딸깍 출판의 엔진이 아니라, 인간 사고를 정교화하는 비판적 동반자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AI는 방대한 자료를 순식간에 검토하고,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며,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데 탁월하다. 이러한 역량은 인간 작가의 사고를 확장하고 깊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간의 판단과 책임이 개입하느냐, 아니면 버튼을 누르고 결과물을 받아내느냐에 있다.

AI 출판은 후자의 극단이다. 인간의 사고 없이 언어만 남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생성형 AI 사용에 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표준화’가 시급하다. 아울러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표시 의무화, 그리고 독자가 스스로 판별할 수 있는 AI 리터러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왜 쓰는가 — 본질적 질문의 귀환

역설적이게도, AI 출판의 범람은 인간이 직접 쓴 글의 가치를 더욱 높일 것이다. 대량 생산이 수공예품의 가치를 오히려 높였듯, AI가 쏟아내는 텍스트의 홍수 속에서 한 사람의 삶과 경험에서 길어 올린 언어는 더욱 희소하고 귀한 것이 될 것이다.

미래의 출판은 인간과 AI의 협업 구조로 재편될 것이다. AI는 자료 조사와 구조 설계를 돕는 조력자로, 인간은 그 결과물에 가치와 철학과 고유한 목소리를 불어넣는 최종 편집자이자 저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이 협업이 의미 있으려면 인간의 역할이 검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작가의 시선, 작가의 판단, 작가의 책임이 텍스트 전반을 관통해야 한다.

메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깊이 읽기(Deep Reading) 능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깊이 읽기란 텍스트를 해독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간을 읽고, 추론하고, 감정이입하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 짓는 복합적인 인지 과정이다. AI 출판이 생산하는 텍스트는 이 깊이 읽기의 훈련 대상이 되기 어렵다. 건너뛸 행간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왜 쓰는가’와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더욱 중요해진다. 언어는 정보 전달의 수단에 머물기보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이며,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다. AI가 밤새 수천 권의 책을 쏟아내는 동안, 과연 단 한 문장이라도 온몸으로 붙들고 있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가? 그리고 내 언어 속에, 나의 삶은 실존하고 있는가?

필자소개

박형빈 교수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미국 UCLA 교육학과(Department of Education) 방문학자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에듀테크전공

-AI인문융합전공 교수

- 서울교육대학교 신경윤리·가치AI융합교육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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