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위협받는 시민권]
①잠식당하는 일할 권리
정부 대응은 거북이 걸음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지부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I 확산으로 노동 현장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노사정이 협의체를 만들어 대책을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인공지능(AI)에 의한 고용불안이 가시화되면서 정부가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차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 미국 공장부터 도입하기로 하면서, 금속노조는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고용영향 평가와 대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발 고용불안이 임단협 쟁점으로도 부상하고 있는 데 비해, 정부 차원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는 인공지능 확산과 탈탄소 전환 등에 따른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 수립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구체화된 정책은 나온 것이 없다.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은 청년 일자리 대책이다. 류성민 경기대 교수(경영학)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사무직 일자리 상당수까지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며 “인공지능을 활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유지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청년들이 실무에 필요한 인공지능 활용 능력이나 일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훈련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정부도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을 일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앞으로 고용불안이 더 확산할 경우에 대비해, 고용안전망 확충 필요성도 제기된다.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옮길 수 있도록 교육 훈련 및 소득 보전 비용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길은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 혁신으로 인한 직무 이동에는 재교육과 재배치, 지역 이동, 소득 공백 등의 비용이 수반되는데,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그는 “고용보험 등 기존 제도만 활용할 경우, 프리랜서 등 노동법 사각지대 취약층이 배제될 수 있다”며 “실업급여 외에 단기 소득 보전을 위한 ‘일자리전환지원금’을 신설하고 산업전환으로 발생한 실직자를 폭넓게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정책 과제들을 추진하려면 재원 마련 계획도 나와야 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들과 한 정책토론회에서 “추세적으로 노동자들의 위치가 더 불안정해질 텐데, 로봇세 같은 것도 나중에 한번 얘기해야 한다”며 “기업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을 사회가 적절하게 분담하는 방법을 찾는 게 핵심이다. 만일 로봇세가 도입된다면, 부과 방식이 큰 쟁점이다. 로봇의 노동자 대체에 따른 추가 법인세 부과나 기업이 받아온 세제 혜택 축소, 로봇이 생산한 상품·서비스에 소비세를 매기는 방안 등이 거론돼왔다.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풀어내려면 사회적 대화가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려면 노동자들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한 만큼 노사가 서로 주고받는 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사회적 대화의 단위를 다층적으로 설계해 업종과 지역별로 자주 만나면서 기민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는 포식자가 아니라 인간을 보조하는 도구로 쓰이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 기술 패권 경쟁에 불이 붙은 이상 기술 발전 속도를 멈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그러나 기술이 인간을 돕는 도구로 쓰이고, 그 관계가 역전되지 않도록 하려면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달라질 노동과 그에 걸맞은 정책과 제도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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